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간인 박씨 Dec 21. 2022

집은, 주인이 정해져 있지.(2)

합리적 의사결정 이론에 따른다면야,

모든 선택지의 효용을 계산해서 최종 결정을 해야 하지만


인간만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모든 최적의 방안은 알 수도 없고

그 결과가 최고의 결정이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추운 윗동네 전원주택에서의 경험과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 조건이

세 번째인 우리 집을 매매할 때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됐다.


1. 난방과 단열이 잘 돼있을 것

2. 집에 텃밭이 크게 있거나, 마당이 넓어 유휴 부지가 있을 것

3. 너무 오래된 집이나, 방치된 곳은 리모델링비가 되려 더 드니 비교적 신축 주택

4. 읍내보다는 오히려 인근 도시를 더 자주 나가기 때문에 고속도로 진출입이 가까운 마을


시골에는 매물 자체도 많지 않고,

흔히 말하는 것처럼 넘처나는 빈집이나 농가주택을 쉽게 매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


예상과는 다르게 시골 어르신들은 당신과 가족들이 오랜 시간 살아온 터와 집을

당장 비어있다고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금의 시골집들은 비어있어도 '빈' 집은 아니다.


귀촌 전 너튜브나 공인중개사 블로그로 적당한 조건에 맞는 매물을 찾아 

그 '집'에 맞춰 온 것이 아니고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곳 일대로 장소를 한정해 

집을 구하다 보니 선택지가 더 한정적이었다.


매물이 도시에서 처럼 네*버 부동산이나 직*방에 바로바로 업로드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야 하는 상황.


''이 매물을 보러 가야지'가 아니라 무작정 부동산에 가서

느정도 예산 내에서 이런저런 조건을 충족하는 주택매물이 있나요? 하고 

묻고 다녔다. 


이때 몹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인중개인들이 함께 동행해서 집을 보는 것이 아니라, 

메모지에 주소를 적어주고 알아서 가보라고 했다. 

현 세입자가 있는 곳도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놓을 테니, 가서 자유롭게 

보고 맘에 들면 연락을 다시 달라는 방식.


본가가 이사할 때마다 부모님을 따라 부동산을 다니던 내가 보기에는 재밌는 광경이었다.


실제로 부동산에서 소개받은 집들을 보러 다닌 건 주말을 낀 열흘정도였는데,  

집은 주인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실감할 만한 일이 생겼다.


일요일 아침 비몽사몽한 상태로 미리 받아놓은 메모지를 들고 나서며

드라이브 삼아 두 집 정도만 구경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나가, 

두 집을 구경하고도 '집 구하는데 한참 걸리겠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당 안에 소 축사가 있는 집, 야외화장실 변기가 

노출된 집 별의별 집이 있어 몹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때 부동산 사장님께 집을 내놓을 사람이 온다는 데 

바로 올 수 있냐는 급작스러운 연락이 온 것이다. 


그 길로 매도인들을 만나, 속전속결로 함께 집을 구경했다.


비교적 신축으로 전 주인이 직접 거주하려고 설계해 튼튼한 구조에,

마을과 조금 떨어진 거리, 

주택 바로 옆에 있는 전(밭) 40평

집을 따듯하게 유지하고 있는 화목난로까지.


집에서 나오며 며칠 고민해보겠다고 한 말이 무색하게도

점심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매도인들에게 전화해 계약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오전에 갑작스럽게 만나, 

집을 구경하고 각자 점심식사 후 계약서를 쓰기 위해 

오후에 다시 부동산에서 만난 매도인과 매수인은

부동산 사장님이 써준 계약서에 도장 날인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하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 부동산 사장님이 계약서에 오타를 발견하시고는

그냥 번거로우니 두 집끼리 직거래를 하라며 

중개를 철회해 

다시 매도인 집으로 방문하여 직거래 계약서를 쓰는 

하루 만에 발생한 신비한 일들.


(시골집들은 왕왕 지인끼리 소개받아 공인중개사가 아니라, 

법무사에게 맡겨 직거래로 진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매도인의 이사 일정으로, 내년도 상반기까지는 

윗마을 전원주택에서 지내야 하지만


내년도 겨울부터는 따듯하게 어깨를 펴고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 


잔금일 및 입주가 좀 남아있어 

기대감에 마음이 조급해 질 때도 있지만

틈틈이 동네를 방문해보고 조망은 어떤 지, 어떤 시간에 어느 방향에서 햇볕은 잘 드는지

리모델링은 어느 범위까지 할 건지를 즐거운 고민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네 번째 집은 본가의 세컨하우스 


이 집 역시 주인은 따로 있다고, 3년 간 비어있던 곳이 

엄마의 결단으로 단번에 계약이 진행된 곳.

본가의 세컨하우스는 국지적으로 지역이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품 대신 비교적 온라인을 이용해서 알아보기 쉬웠다.


세컨하우스의 조건은

1. 텃밭과 담장

2. 별채와 창고가 크게 있을 것

3.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

 

삼고초려를 할 때마다 다양한 플랫폼에 올라온 시골집들을 부모님에게 소개했고,

그렇게 어느 정도 매물의 수준이나 가격대가 감이 잡혔을 때쯤

우연히 사과군 인근 지역에 조건이 좋은 매물이 올라왔다.


엄마는 내려와보지도 않고 여기가 좋겠다며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 무서운 추진력에 놀라 일단 우리라도 먼저 매물을 확인해볼 테니 진정하시라 말려

주말에 방문해 확인하고, 그다음 평일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도 내가 대리로 진행했으니, 잔금까지 부모님이 직접 집을 보신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이 역시 일주일 만에 벌어진 신비한 일들.


일견 글로 쓰니 대책 없을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된 세컨하우스 구하기는 

당사자들이 몹시 만족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이다.


세컨하우스에서 보는 겨울 정경



내려와 계실 때는 나도 부담 없이 뵈러 갈 수 있고,

연고 없는 지역 인근에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 마음의 위로가 되는지라 

문득 올라오는 향수병을 단박에 치유해 주는 힘이다.




이렇게 장장 3년에 걸친 자리 잡기가 

내년도 이사를 끝 마치면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잘 마무리될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은, 주인이 정해져 있지.(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