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쉰넷.
지천명(知天命)에 도달한다는 나이지만,
나는 아직 하늘의 명령을 깨닫는 데 실패한 듯하다.
오십이면 으레 한 번쯤 펼친다는《논어》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 여전히 좋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다.
재미는 나이를 무색하게 한다.
오타 아이의 섬세한 마음, 기시 유스케의 예리한 추리, 야쿠마루 가쿠의 감각적인 문장,
하라 료의 촘촘한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의 따뜻한 스토리, 기리노 나쓰오의 날카로운 시선,
마리 유키코의 소소한 일상까지….
나는 이 작가들의 세계 속에서 나이를 잊는다.
하루를 잊고, 세상을 잊고, 때로는 나 자신조차...
장르는 다르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늘한 감정선, 마쓰이에 마사시의 조용한 울림 역시
내 마음을 드문드문 건드린다.
그 외에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본 작가의 책을 자주 들춰본다.
그들은 내게 ‘살아 있음’과 ‘느낌 있음’을 동시에 알려준 이들이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삶의 균형을 되찾곤 한다.
《논어》를 읽는다고 해서 하루가 달라지지는 않지만,
한 편의 소설을 덮고 나면 문득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 선택의 순간,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이상하리만큼 새롭게 다가온다.
결국 지천명이라는 것도, 책 읽는 방식도,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마음이 움직이는 곳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다.
《논어》든, 히가시노 게이고든, 오타 아이든,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여도 상관없다.
나는 오늘도 책을 들고 웃는다.
그리고 조금 더 나다운 삶을 생각한다.
하늘의 명령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더라도,
재미와 의미가 함께하는 하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쉰넷 나이에도, 아직 철들지 못한 나는
그 단순한 진리에 만족한다.
― 林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