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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연 May 06. 2020

이사 연습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17살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소라게 마냥 나는 이곳저곳으로 거처를 옮겨 다녔다. 3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끝낸 후 염원하던 서울에서의 대학교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나의 집은 기숙사에서 하숙집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이 알아보신 하숙집에서 하숙집 아주머니의 따뜻한 밥을 먹으며 졸업을 했고 첫 번째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이직을 했고 익숙했던 동네와 하숙집을 떠났다. 부모님이 대신 내주신 보증금으로 부동산 아주머니의 강력 추천이었던 회사 근처 오피스텔을 구해 한참을 살았다. 그렇게 10여년이 넘는 긴 시간, 나는 줄곤 집을 떠나 혼자 살았다. 혼자살기의 베테랑이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을 시간인데, ‘이게 진짜 혼자 산다는 거구나’라고 실감한 건 불과 얼마 전의 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하고 난 후의 일이다.


 이사를 결심한 건 작년 10월쯤의 일이었다. 회사 동기들이 하나 둘 오피스텔 생활을 접고 아파트로 들어가거나, 원룸에서 투룸으로 바꾸는 등 거처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이사를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내게는 거처를 옮길 특별한 계기나 명분이 없었고 무엇보다 혼자서 새로운 집을 구해 이사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해외지사로 전보가 결정된 대리님과 이른 송별회를 겸한 식사자리를 가졌다. 해외지사를 지원하고 먼 타지로 거처를 옮기기로 한 대리님의 결단이 멋있어 보였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셨냐고, 나는 회사에서 ‘가라!’라고 하지 않는 이상 절대 먼저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을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리님은 해외나 국내나 이사만 하면 되는건데 뭐가 어렵냐며, 이사하는 동기들 많던데 이사 생각은 없냐고 되물으셨다. 나는 손사례를 치며 이사할 이유가 없는 걸요. 집 알아보는 것도 어렵고. 몇 년 후에 인사이동이 나면 그때 이사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때까지는 그냥 여기 있을래요. 대리님은 다 듣더니 딱 이 말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내가 살 곳과 머물 시간은 내가 정하면 되는거야.”


 대리님의 마지막 어퍼컷은 제대로 들어갔다. 머리를 한 대 맞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내가 있을 곳과 머무는 시간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왔다. 어떤 일을 계기로, 누군가의 도움으로, 별 고민이나 노력 없이 내가 있을 곳을 정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것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문득 앞으로 그런 계기나 도움이 없어도 나는 내 의지로 지금 있는 곳을 떠날 수 있을까 싶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나는 그런 계기나 도움이 없다면 언제까지나 한 곳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집을 옮기는 일만이 아니라, 나중에 성장을 위해 지금 있는 곳을 떠나야할 때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의지만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수동적인 내가 바뀔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나의 뜻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가 있을 곳을 구해보기로 했다.


 한달 후, 대리님은 한국보다 더 따뜻한 곳으로 떠나셨고 나는 혼자 힘으로 구한 전세집으로 이사했다. 집 구하기, 전세금 대출, 계약서 작성, 이사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려니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원하는 조건의 집을 발견하면 전세금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겨우 전세자금에 맞는 괜찮은 집을 찾았더니 이번에는 계약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용달 트럭 사장님들과 견적서를 주고받으며 최저가 업체를 찾아다녔고, 이사 전날에는 야근 후 자정 직전에 전세집에 들어가 증거용 사진을 찍었다. 이삿짐을 풀어놓는 그 순간까지,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이 끊이질 않을 만큼 힘들었다. 순도 100%의 혼자살이의 어려움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처음으로 층간소음에 시달렸고 휴대폰을 보디가드 삼아 윗집에 용기 있게 찾아가 따졌다. 얼마 전엔 곰팡이 핀 벽지를 새로 갈아 달라고 집주인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힘든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내 힘으로만 구한 집이다 보니, 처음으로 집에 정이란 게 생겼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는 걸 보면 확실하다. 냉장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남았고, 내가 좋아는 색깔과 물건들로 집이 채워졌다. 시키지 않아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집을 보면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된 기쁨. 그 기쁨은 혼자살이의 힘듦을 잊을 만큼 꽤 크다.


 이사한 지 오늘로 4개월이 지났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집에 머물지는 잘 모르겠다. 변화가 필요하면, 혹은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는 훌쩍 어디로든 떠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살 곳과 그 곳에서 머물 시간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하면 되는 거니까.




“Now I found the strength

to make a change

I finally found where I feel I belong”

- Alessia Cara <I Ch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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