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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연 May 30. 2020

친절의 무게

 존경하는 한 교수님은 가끔 수업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다. 그 교수님의 수업을 몇 번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그 이야기가 시작되면 평소보다 수업이 일찍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책상 정리를 시작하곤 했다. 나도 그런 학생들 중 하나였다. 그때면 이미 정신은 교실 밖으로 나가 있었기에 대부분의 이야기는 전공지식과 함께 기억 속에서 날아간 지 오래다. 그래도 한 이야기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교수님은 항상 휴대폰을 한 번 보신 후, 코 중간까지 내려온 안경을 다시 고쳐 쓰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한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는 무게가 있는데, 그 무게를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말과 행동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내가” 아니라 그것을 받는 “타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볍게 건넨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힘들었던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말과 행동에는 늘 조심해라. 가볍게 상처내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묵직하게 감동과 위로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해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낯선 이에게도 친절한 사람이 되어라. 살아보니 친절은 대부분 누군가의 마음에 묵직하게 남더라.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저녁을 먹으러 단골식당을 찾았다. 그 날 따라 유난히 손님들이 많아 매장 안은 시장통이 따로 없었고, 서빙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누가 봐도 근무 첫 날인 듯 허둥댔다. 한참 뒤에 나와 일행을 발견한 아르바이트생이 테이블로 물을 가져다 주며 주문을 받았다. 주문을 끝낸 후 나는 고갤 들어 메뉴판을 건네며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건냈다. 습관처럼 건넨 그 말에, 그녀는 살짝 놀란 후 수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다섯 글자가 힘들었을 그녀의 하루에 힘이 되었구나 직감했다. 이 날 이후 내가 건넨 사소한 친절보다 더 큰 감사 인사를 받을 때면,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교수님의 말씀처럼 가능하다면 낯선 이에게도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도 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러다 대학생에서 취준생으로, 취준생에서 사회인으로 바뀌면서 이 이야기는 기억 속 한 구석에 조용히 가라 앉아 한동안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다시 생각난 건,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방황하던 2017년의 끝자락에서였다. 자발적 백수가 된 1년 간, 나는 쉴 틈없이 도전했다. 실패할 때마다 자존감은 끝을 모르고 바닥을 향해 떨어졌고,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나는 악바리처럼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했다. 그럼에도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처참하게 실패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게 낫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들었을 때, 나는 동생이 있던 유럽으로 도망쳤다. 도망친 듯이 간 그 곳에서 나는 한국에서의 일은 잊고 즐겁게 여행만 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머리와 달리, 마음에서는 이 1년 간 줄곧 느꼈던 초조함과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일정이 틀어지는 것도, 날씨가 흐린 것도, 동생과 싸우는 것조차도 모든 게 다 내가 두고 온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예상치 못한 한 겨울의 폭우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세상에 이젠 날씨까지 나를 버린다며 온갖 우울한 생각들이 폭우와 함께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숙소에서 쉬겠다는 동생을 남겨두고 나는 미뤄뒀던 빨랫감들을 챙겨 근처 코인 빨래방으로 향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우울한 생각들에 잡아 먹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인 빨래방에 도착했지만 그 흔한 영어 하나 없이 모두 불어로만 적힌 안내문을 맞이하자 막막했다. 세재까지는 겨우 구입했는데, 딱 하나 비어 있는 세탁기는 뭐가 문제인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세상에 이젠 세탁기까지. 정말 되는 게 없구나.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던 나에게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셨다. 세탁기를 켠 다음, 내가 들고 있던 고체 세제를 부수어 통 안에 넣어 주셨다. 그 다음 눈짓과 손짓으로 빨랫감을 넣으라고 알려주셨다. 눈치껏 잘 따라오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어 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세탁기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고, 먼저 빨래를 끝낸 할머니는 나갈 채비를 하셨다. 그리곤 작은 가방 안에서 예쁘게 포장된 사탕 몇 개를 건네 주셨다. 혼자 남은 빨래방에서 세탁기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사탕을 먹었다. 흔하디 흔한 과일 맛 사탕을 입에 넣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느낀 평화였다. 걱정과 불안, 초조함으로 휘몰아치던 마음에 조금씩 바람이 잦아들고 빗방울이 가늘어졌다. 긴 장마 끝에 오랜만에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본 기분이었다. 할머니의 엄지 척은 ‘잘하고 있어’라는 응원처럼, ‘괜찮아 질거야’라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이 날 이후로, 조급함과 불안함은 비워내고 그 자리에 여행에서 느낀 소중한 순간들을 채워 넣었다. 여행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이 악물고 도전하던 악바리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가 기억 저편에서 떠올랐다. 낯선 이의 작은 친절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컸고, 교수님의 말씀처럼 친절은 가슴에 묵직하게 남는 거였다.


 지금도 나는 교수님이 하신 이 이야기를 생각한다. 내가 건네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상처 낼 만큼 가볍고 날카롭지는 않은 지 조심하려고 한다. 또 가능하면 낯선 이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물론 아직도, 그렇지 못한 순간이 더 많은 듯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참 더 이 이야기를 떠올릴 듯하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눈을 보며 미소 지어준 행동 하나가 그 사람에겐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기를.




“마음 가득 따뜻한 사람이 되고파요

이렇게 놀라운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

내 많은 사람 곁에 있어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고 지나쳐가니 속상해도”

- 최유리 <모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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