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입장권

무단 침입은 금지입니다!

by 빙하



침대에도 입장권이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침대는 다른 곳과 '구분'되어야 할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침대와 그 외 공간을 구분하는지에 대해선 '위생'이 기준점으로 작용하는 중이다.





외출복 입고 올라가지 않기



외출복을 입고 침대에 올라가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밖에서 어떤 오염을 묻히고 들어왔을지 모르는데 그대로 침대 위에 올라가 이불을 덮는다니. 내 기준으로는 신발 신고 올라가는 거랑 다른 점을 모르겠다. 집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깨끗할 수는 없고 사람 사는 곳이면 일정량의 먼지와 오염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거기에 플러스를 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엉덩이를 맞대고 앉는 버스와 지하철의 시트가 과연 얼마나 멀쩡 할까를 떠올려 봤을 때, 역시나 나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기는 셈이다.



가끔 자취하는 동생이 본가에 놀러 올 때면 내 방 침대를 쓰곤 한다. 동생은 내 침대에 시계며, 가방이며 척척 올려놓는데 그때마다 뒷목 잡고 기절하고 싶은 걸 애써 참아야만 했다. 결국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무척 간단한 방법이었다. 동생이 집에 오는 날엔 매트 위에 까는 이불과 덮는 이불을 따로 마련하기.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는 날엔 고이 접어서 다음에 올 때 다시 깔아주거나 세탁기에 집어넣거나 둘 중 하나다.





부스러기 떨어지는 음식 먹지 않기



침대 위에서 뭘 먹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닌데, 특히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들은 더욱 반기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바사삭 소리가 날 것 과자를 침대 위에서 먹는다? 이건 나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일과 같다. 부스러기야 털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 속에 엉겨 붙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비슷한 개념으로 침대 위에서 액체류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바로 옆에 컵을 올려놓을 만한 탄탄한 받침이 없다면 그냥 방바닥에 내려와서 마신다.





손과 발은 닦고 올라가기



손과 발을 닦지 않은 채 집에서 입는 생활복으로 갈아입었다면? 물론 이것도 침대 입장 허가에 대한 결재 반려 감이다. 이는 비단 코로나의 문제만은 아니다. 몇 시간 동안 통풍이 안 되는 신발 속에 갇혀 있던 발과 온갖 것을 만지고 다녔을 손을 외출했던 상태 그대로 침대 위에 올리는 건 누가 봐도 위생적이지 못한 일이 아닌가. 적어도 손과 발은 깨끗하게 씻고 침대 위에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건 내 침대에 국한된 바람일 뿐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본인의 자유다. 난 그저 나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사는 우리 가족이 이를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 그 외 타인에겐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럴 자격도 없고.




남들이 보면 조금 피곤하게 산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사실 나도 가끔은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이걸 꼭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서 회의감 같은 게 밀려올 때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몸이 피곤한 게 낫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못할 짓이다.



웃긴 건 의식이 없을 때도 이런 것들을 철저히 지킨다는 점이다. 한창 술 마시기 좋아하던 20대 초반에 종종 만취 상태로 귀가를 하곤 했는데, 다음날이 되면 엄마가 질린다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었다. 제정신 아닌 채로 들어온 내가 샤워하고 로션도 바르고, 심지어는 얼굴에 팩까지 올려놓고 자더라고. 기억을 떠올려 보면 기껏해야 씻고 있는 장면 한 컷 떠오를 뿐인데, 무의식의 내가 너무나도 잘해주고 있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지켜 습관 내지 청결에 대한 강박증이기에 그냥 앞으로도 쭉 유지할 생각이다. 내가 내버리겠다고 해서 멀어지기엔 이미 너무나도 나와 한 몸이 되기도 했고. 난 나만의 침대 입장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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