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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Dec 06. 2020

파리의 에펠탑은 핏빛으로 빛난다

파리 에펠탑을 찾아가는 길, 안내표지판 하나와 마주했다.


Memorial National de la Guerre d' Algérie


'국립 알제리 전쟁 추모 공간' 정도로 번역되는 안내 표지판.


알제리는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이어진 투쟁 끝에 프랑스한테서 독립을 쟁취한다.

1830년부터 132년 간 이어진 식민지배의 마침표였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식민지가 아니라, 유럽 본토 프랑스와 똑같은 '자국 땅'이라고 생각했다.

알제리 입장에서는 독립전쟁이었고, 프랑스 입장에서는 반란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테러가, 알제리에서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이 기간 1000만 명가량이었던 알제리 인구 중 무려 200만 명이 희생당한다.

프랑스는 희생자를 25만에서 40만 명으로 말하고 있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기존 정권이 무너지고 5 공화국(드골 정권)이 들어서는 등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프랑스와 알제리 모두의 아픔이 배어있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프랑스가 이 역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파리의 에펠탑 인근에 있었다.


에펠탑을 가는 길, 우연히 만난 표지판.
알제리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




1899년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며 세워 올린 에펠탑.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세계적 랜드마크다. 


그런데 이 에펠탑을 짓는 데 사용한 주 재료 철이, 알제리에서 왔단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자국 영토'에서 왔을 테고.

그런 에펠탑과 인접한 곳에, 알제리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라니. 아이러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세계적인 목탑이, 알고 보니 한반도의 오래되고 귀한 나무들을 죄다 베어가 만들었다면. 

그리고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면.

감정이입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식민지배를 당했던, 평생 약자의 역사만 체화하며 자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한국적 맥락과 비교해 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날 에펠탑에서 대화를 나눈 중년 남성이 있었다. 우연히도, 알제리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에게 "저 옆에 너희 나라(알제리) 관련 무슨 공간이 있던데 알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몰랐다. 가봐야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알제리 전쟁의 역사적 배경을 모를 때라 별다른 생각 없이 장소를 이야기했었다.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닐 텐데, 괜히 알려줬나 싶기도 하다.


에펠탑을 생각하면, 자꾸만 그때 그 알제리인이 같이 생각난다.


프랑스 파리 낭만의 밤을 환히 빛내는 에펠탑. 역사적 아픔이, 붉은 핏빛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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