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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Mar 21. 2023

공부=놀이

모든 인간은 욕구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에 모두가 흥미와 관심사를 생득적으로 찾아 나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아이를 끌고 나가려다보니 아이가 원하는 흥미와 관심사를 차단시키고 부모의 니즈를 충족하길 바란다.


어릴 수록 쉽게 따라오겠지만 그렇게 끌고간 아이들이 스스로의 흥미로, 힘으로, 동기로 해나가는 걸까.

나중에 중도탈락하게 되거나

부모의 바람대로 사회적으로 촉망받는 직업을 선택했음에도 마음이 힘든 사람으로 살아간다거나

직업적으로는 멀쩡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도성 하나 없게끔 자란다면...

과연 부모의 주도로 이룬 업적들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아직 초1의 엄마라 그런가

나는 아직도 이상주의에 젖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주변에는 몇년의 사교육으로 아이가 또래보다 빠르다고 자랑하는 엄마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사실 팔땡과 비교하여 딱히 빠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빨라봤자, 까짓거 초1이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지금 속도 차이가 의미있는건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팔땡과 그 아이들의 차이점은 명확히 알고 있다.

팔땡이는 공부와 놀이의 개념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공부=하기 싫은 것. 끔찍한 것. 지루한 것.

이라는 생각이 전혀 잡혀 있지 않다.


주변 친구들이 나는 공부가 정말 싫어 라고 할 때에도 팔땡은 여전히 나는 공부가 좋아 재미있어! 새로운 걸 알게되면 너무 신나! 라고 한다.


누군가가 억지로 떠밀어서, 시켜서, 공장에서 찍어내듯 배우는 공부가 아니다보니 아이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본 기억이 없다.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었고 덕분에 팔땡이는 공부=놀이라는 개념을, 공부=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전 팔땡이가 구구단을 다 외는 같은 반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들은 나는 팔땡에게 설명했다.

그냥 줄줄 외우는 구구단은 의미없어.

나는 네가 엄청 느리게 하더라도 원리를 깨우쳤음 좋겠어. 2곱하기 2가 왜 4가 되는건지, 3곱하기 3이 왜 9가 되는건지.

빠르게 9단까지 줄줄 읊는 것보다 네가 엄청 느리게 단 한 문제를 풀더라도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는게 더 가치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친구들의 속도에 니가 꼭 맞출 필요는 없어.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가 있으니 아직 잘 못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아~


그리고 팔땡은 놀이로서 떠듬떠듬 곱셈 원리를 적용해 계산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2자릿수 곱셈 암산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다.

아이는 빠르게 곱셈하는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대로 한 문제를 풀더라도 원리를 생각하며 풀어냈고 마치 놀이처럼 문제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속도대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꼈고 이에 재미를 느껴 계속 엄마, 아빠에게 문제를 더 내보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팔땡이는 놀이처럼 느긋하게, 여유있게, 천천히, 틀리든 말든 과정을 거쳐 두자릿수 곱셈 암산까지 가능하게 됐다.

그리고 최근엔 두자릿수 나눗셈 암산 역시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터득하여 놀이로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팔땡은 피아노도, 수영도, 한자도, 한글도, 인라인도, 줄넘기도 사교육 하나 없이 꽤나 해내고 있다.


아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굳이 막지 않는다.

부모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지 않는다.

타인의 속도보다 빨리 가기 위해 부모가 속도를 내라며 채찍질 하지 않는다.


만화책을 읽겠다니 하루종일 읽게 두었다.

한달 두달 세달 네달 그리고 일년

만화책만 주구장창 읽던 아이는

만화책을 통해 글밥과 어휘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켜 지금은 해리포터 수준의 그림 하나 없는 고학년 문고를 술술 읽어 낸다.

이또한 부모가 들이민 책이 아니라, 독서에 자신이 붙은 아이가 서점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고학년 문고를 턱턱 골라잡고 술술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렇듯 아이가 흥미를 가진 것이 있다면

하루종일 피아노를 치든, 수영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인라인을 타든 막지 않았다.


다른 중요한 공부를 하겠다고 학원을 가야해서, 공부를 해야해서, 책을 읽어야 해서

부모의 니즈에 맞추어 아이의 흥미를 제지하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실컷하게 내버려두자

아이는 놀이처럼 공부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그냥 두면 놀기만 하고 공부는 안해요.

라는 말 사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놀이 속에서도 공부는 얼마든지 된다.


학교 공부만 공부가 아니다.

아이는 친구와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학습하고

흙과 풀을 만지며 자연을 탐구하고 감각을 배워간다.

만화책을 읽으며 그림에 어마어마하게 노출이 되고, 어려운 어휘를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피아노를 스스로 조작해봄으로써 강제로 주입한 연주가 아닌, 기술은 떨어져도 연주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음악의 참 의미를 찾는다.

하루종일 물에 뛰어들어 놀면서 수영에 대한 감각을 기른다.

뿐만 아니라 인형놀이, 숨바꼭질, 술래잡기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다.


아이의 흥미를 방해하고 부모의 니즈대로 조작하려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분명 자신의 흥미를 따라 몰입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캐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애는 마냥 놀게 두면 정말 놀.기.만 하거든요? 한다면 잘 생각해 보라.

놀기만 했어야 할 나이에 이미 부모가 부모의 니즈를 위해 아이의 흥미를 막은 적은 없는지.

어쩌면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서 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항상 경계하고 있다.

나의 조급함이 아이에게 독이 되진 않을지.

부모로 인해 공부는 놀이가 아니다. 공부는 끔찍한 것이다. 라는 생각을 심어주진 않을지.


아직까지 공부를 싫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놀이라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팔땡이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가 빠르게 끌고 가서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 보다

아이가 느리더라도 공부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임을, 더 큰 의미에서 세상 모든 것이 공부 즉 학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를 믿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자율성을 존중해 준다면 아이는 분명 자신의 방법대로 속도대로 세상의 많은 이치들을 터득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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