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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ul 08. 2023

공부가 힘든 아이들

사교육을 하며 열심히 달리는 아이들을 곁에서 자주 보곤 한다.

초등1학년인데 중3 영어를 하고 있다는 아이들.

초등3~4학년 수학을 하고 있다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를 보며 엄마들은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는 나는 아이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안쓰럽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아이들은 발달상 두뇌가 덜 자라있다.

발달시기에 맞춘 두뇌 기능의 발달로

극소수의 영재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는 추상적 추론이 불가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해 보는 등의

사고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뇌가 덜 발달된 아이들에게

제 연령에 맞지 않는 공부를 들이미는 것이,

선행을 열심히 달리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공부가 되기는 할까

의문이 든다.


초등 1학년 아이들이 아직 한글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법학용어를 영어로 접하고 단어를 외운다.

벌써 소숫점 나누기를 나가고 있다고 한다.

문제부터가 이미 난해하여 문해력이 부족하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라 수학 문제를 풀어내기가 불가능 해진다.


문제가 제 수준을 넘어서 점점 어려워질 수록

아이들은 힘들다, 학원을 다니기 싫다

호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껏 잘 따라와준 아이를 보고

부모는 쉬이 그만 두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가 알아서 공부를 하길 바란다.

아이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가지고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동기란 것이 그냥 오는 것인가.

동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자율성이다.

자율성이 허락될 때,

자율적으로 스스로가 원했을때,

아이는 스스로의 동기로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율적으로 뒀더니 공부를 안한다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

인간이기에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 다르고, 가지고 있는 관심사도 다 다른데

어찌 모두가 공부를 향해 달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분명한건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자율성이 보장될 때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고, 그 방향을 향해 나가겠다는 목적의식이 생기게 된다.


사실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아이에게만 독이겠는가.

반대로 우리를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는 아이의 생명 유지를 위해 자율성에 침해를 당하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그저 24시간 아이의 시간에,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주기 위해 극단으로 몰리는 상황을 겪는다.


나는 자고 싶은데 못자고 밤새 우는 아이를 달래야 하고,

나는 먹고 싶은데 잠시도 떨어지려하지 않는 아이때문에 라면 한젓가락도 제대로 못먹고 아이를 케어한다.

집안이 개꼴이라 치우고 싶지만 울어대는 통에 우리는 등에 아이를 짊어지고 천근만근한 몸을 이끌고 집안일을 한다.

나의 먹고, 자고, 쉬고, 싸고 싶은 모든 욕구가 묵살당해버리고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한채 수년을 살아 나간다.

그리고 그 시기 엄마들은 흔히 육아우울증이라는 심리적 고통을 경험한다.

심리적 고통 뿐이겠는가.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갑상선 질환까지 덤으로 얻어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우울증이란 나의 욕구가 환경에 의해 계속해서 좌절될 때, 여기서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반복적으로 느끼게 될 때 찾아온다.

그리고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엄마들은 이미 자유를 억압 당했을 때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아이를 육아하며 충분히 느껴보았으면서, 아이에게 다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대물림하고 있다.


공부 잘 하던 멀쩡한 아이들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육아우울증으로 아파트에서 수도 없이 뛰어 내릴까 고민하는 엄마들과 별반 다를바 없어 보인다.


단순히 공부를 시켜서 뛰어 내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시간을 타인에게 일분일초 관리 당하고, 이건 뭐 창살없는 감옥이다.


아이는 분명 극단으로 가기 전, 부모에게 호소했을 것이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거나

짜증이 늘어 나는 등의 형태로.

(아동, 청소년의 우울은 무기력 형태보다 짜증의 형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부모를 회유해 보았지만 먹히지 않으니 무기력을 학습해 버려

어떠한 짓을 하든 나는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구나를 깨닫고 어느샌가 입을 닫고 우울한채로 수동적 공부를 해나간다. 그리고 수동적 인생을 살아나간다.


공부의 중요성?

나도 너무 잘 안다.

특히나 우리 나라가 전쟁 이후 이렇게 빨리 성장하게 된 데에는 교육의 힘이 컸기에 국민들이 교육과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도 잘 알고 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우리나라는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고, 직접 경험하고 곁에서 목도했기에 어느 국가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겨 아이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달리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공부는 인간을(사회적으로 일컫는,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성공으로 이끌었을 뿐, 자신의 마음 안에서,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성공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아니 오히려 실패로 이끌었다.

OECD국가 중 전체 자살률, 아동청소년의 자살률 순위만 보아도 그것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여기서 공부가 내면을 망친다 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지 않길 바란다.

자유의지에 의한 공부가 아닌,

아이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억지로 부모의 방향과 속도와 방법에 맞춘

공부가 아이를 망친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잘 알면 니가 직접 하시라구요.


보통 부모가 자신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더 높은 성공을 위해 자식들을 이끄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럴때 답은 하나다.

마음에 안드는 너 인생이나 너가 바꿔보라구요.

아이인생은 지가 맘에 들든 말든 알아서 선택하고 책임지게 두시구요.


아이가 원해서 하는 공부와 사교육,

나는 너무 찬성이다.

그래서 팔땡이 원한다면 나 역시 사교육에 몸담글 생각도 충분히 있다.

다만, 아이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시키니까 꾸역꾸역 따라오는 아이들을 보며

습관을 잡아준다,

하니까 되더라,

아이가 다 소화해 낸다

며 당장의 결과만 보고 억지로 끌고 가지 않길 바란다.


중3 영어를 하는 초딩은,

초4 수학을 하는 1학년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것 같은가?

현행의 여기저기에 구멍이 뻥뻥 뚫려

정작 겉핥기식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100프로 이해하지 못하고

60~70프로의 이해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 조작기에 막 입문한 뇌를 가지고

12세 이상이 되어야 발달하는 형식적 조작기에 가능한 문제들을 뇌가 억지로 억지로 억지로 짜내가며 하고 있는 거다.


교육자들이 아이들 문제를 왜 저렇게 쉽게 만들어 놓았겠는가.

수백년의 연구 끝에 이 시기에 아이들이 버겁지 않게 이해할 법한 문제를 그 시기에 맞춰 넣어둔 것들이다.

학원처럼 1~2주 단기에 나온 문제들이 아니라 많은 저명한 이론가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수많은 연구진들이 모여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합의된 수준.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아이의 뇌에는 과부하가 오게 마련이다.


건강한 성취감을 느끼는 좋은 방법은 대단한 일을 해낸 경험이 아니라, 아주 소소한 일을 해결한 작은 경험들이 여러번 반복될 때이다.

그리고 자신의 교육수준에 맞춰 해나갔을때 아이들은 성취를 느낀다.

중3 문제를 해결하고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문제를 풀며 성취는 커녕 실패와 좌절을 경험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인생 100년 참 길다.

20살에 대학으로 증명해내고,

20대에 직장으로 증명해내는

그 결과로 속단하지 말길 바란다.


단기적인 결과로

당장의 눈 앞에 아이가 잘 따라오니

꾸역꾸역 시키는 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잘 생각해 보자.


자유의지를 박탈했을 때,

인간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오히려 극단의 반대 행동을 선택한다.


공부에 부정정서를 갖고,

학교에 반발심을 가지고,

부모가 시키는 것의

타당한 이유도 없이 그저 반대로 엇나가려 하게 된다.


아이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자신의 시간은 자신이 사용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경험할,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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