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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파리쓰 Jul 29. 2022

사회생활 N년차 공무원

나이 먹어가며 달라진 점

 





 * 두 달간 개인적인 일과 업무들이 패스츄리럼 겹겹이 쌓여 글쓰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 핑계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전한다. 그간 가벼운 글을 한 번씩 올릴까도 하다가 재미가 없을 듯하여 서랍에 넣어두고 이제야 글을 올려본다. 혹시라도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셨다면 감사인사를 살짝 드리고 싶다. 



쉼표, 그 후



그동안의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니 요즘은 어쩐지 뒤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문득 예전의 어떤 기억이 떠오를 때 '아, 예전에는 내가 그랬었지', '그랬었는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제 미래를 꿈꾸고 쫓아가는 가 아니다 보니 흘러간 과거를 자꾸 떠올리려고 하는 것 아닐까.


아이를 보고 있어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넘어질 텐데도 마구 흔들며 까부는 아이를 볼 때에도 '나도 이런 때가 있었지' 한다. 꼬꼬마이던 시절에는 동네 구멍가게에서(30원이었는지 50원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신호등 사탕 하나만 사서 좋아하는 색으로 하나씩 순서대로 골라먹어도 그렇게 행복했는데.


꼭 어린 시절까지 안 더라도 20대 초반 풋내기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때가 십몇 년 전이 아니라 얼마 전 일인 것 같고 그때에 비해 지금 마음가짐이 특별히 어른스러워진 것 같지도 않은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게변한 점이 꽤 많았다.


※ 특정 직업을 과시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는 글입니다.
※ 전 세계 79억 명 인구 중 한 명의 개인적 경험에 의존한 내용이므로 일반화하지 마시고 개인의 견해로 봐주세요.
※ 읽는 분들의 공감과 응원, 건전한 표현과 토론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되기에 언제나 환영합니다.




즉흥적으로 가능했던 과거의 나


즉흥적으로. 지금은 직장을 다니고 가정이 있기에 생활 반경이 제한적이라 나의 루틴은 계획 아닌 계획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출근, 퇴근, 연가(연차), 공휴일, 명절 정도가 기준이 되어 거의 모든 일정에 정해져 있는 흐름이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것이 즉흥적으로 가능했다. 마음이 그만큼 가벼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퇴근하고 그 피곤한 와중에도 나는 야간 드라이브 명소를 찾아 훌쩍 떠나고는 했다. 당시 내차는 USB에 노래를 담아서 포트에 꽂아야 노래를 재생시킬 수 있었는데,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듣고 싶은 순서를 신중히 정해 저장매체에 담아오는 과정도 설레었고 노래를 들으며 도로를 달릴 때 상쾌하고 편안기만 했다.


와의 급만남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던지, 좋은 일이 있어서 나누고 싶다던지 할 때 이유불문 '지금 나올래?' 하면 얼마든지 OK 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역시도 오케이 했었고.


요즘 누군가에게 즉흥적으로 만나자고 해본 적도 없지만 이제는 각자 삶의 영역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 횟수도 줄어들고 부르면 그들이 나올까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기 한. 나 역시 급만남 요청이 들어오면 '나 오늘은 얼른 퇴근해서 애기 목욕시켜줘야 해.'가 아마도 답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유 없는(나만을 위한) 연가나 조퇴 없다. 이유라면 아이와 가족, 아니면 병원 진료 정도로 한정되어 있지 않을까. 




일에 매몰되어 있던 예전의 나


나는 일을 상당히 좋아한다. 예전에 사기업에 다닐 때에는 일거리를 줄줄이 소시지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집에 와 일을 할 정도였다.


그 덕에 요즘 흔한 해외여행도 한번 가보지 못했다. 요즘에는(코로나 이전) 바빠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도깨비 여행이라도 다녀오려 노력했. 나 하나 없다고 회사에 아무 영향도 없는데 그때는 뭐가 그리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물론 당시에는 해외여행 지금처럼 마음먹으면 바로 떠나는 문화가 아니기는 했다.


당시 하루 일과 중 업무에 쏟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업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때 나를 안쓰럽게 지켜보던 선배가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 생활이 분산되기 때문에 힘이 조금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의 십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일에 중독되는 성향인 나는 주말근무, 야근을 좋아하지 좋아하지 않는다. 금은 가정과 아이가 있기 때문에. 물론 공무원으로 이직하게 된 유 중 하나가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기대치이기에 사회 초년생일 때보다 지금이 일에 매몰되는 정도가 덜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다.




점점 바뀌는 관심사


1. 술과 클럽 VS 집돌이


나는 회사원이던 시절 회식을 많이 하는 부서에 속해있었기에 직장 내 술 문화에 익숙하다. 또 대학시절에는 그 생활대로 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술을 잘 마시고 못 마시고를 떠나 여럿이 모여 떠들며 술을 마구 들이붓는 시대에 살아왔다고 하는 것이 름 어울리는 표현일 것 같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서울의 클럽(나이트클럽 아님 주의)에는 '클럽데이'라고 하는 날이 있었다. 흐릿한 기억에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이었나 싶은데 이 날은 클럽 한 군데서 결제해서 팔찌를 차면 제휴된 클럽들 간에 모두 입장이 가능했다. 중학교 때부터 국내에서 유행하던 노래를 잘 듣지 않고 미국 음악을 즐겨 듣던 나에게는 클럽에 가서 쿵쾅쿵쾅 귀를 울리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그날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춤은 잘 못 춰 유감이다. 춤을 잘 췄다면 멋지게 놀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착각을 잠시 해본다.)


지금은?

집이 최고다. 집이 제일 편하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시끄럽기만 하다. 밖에서 일 보고 외식하는 것보다 집에 와서 밥 먹고 쉬는 게 가장 편하다. 명절 및 공휴일에는 집 나가면 고생이다. 집이 최고다.



2. 춤, 외국어 배우기 VS 부모 되는 수양


지금은 삼포세대니,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다느니, 노동의 수입만으로는 인생역전을 하지 못한다는 등의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데 내가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과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젊은 층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책으로 나 역시 소장하고 있다. 그때는 젊음의 아픔이 당연하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자기 계발이 하나의 트렌드였는데, 지금처럼 나 자신이 느끼는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술 내지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개발이 유행이었다.


그때의 나는 회사 선배들과 함께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외국어 회화학원, 토익학원까지 다녀 자기 계발에 힘썼다. 스스로에게 더욱 노력해보고자 춤(?)을 배우기도 했다.


지금은?

퇴근 후에는 열심히 가정생활과 부모 수업에 힘쓰고 있다. 지금은 이것이 나에게 있어 최고의 자기 계발이 아닌가 한다. 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내가 함께 자라고 있음을 느끼고 그 속에서의 배움을 알게 된다.



3. 안지 오래된 친구 VS 마음 맞는 회사 친구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조금 슬프다. 전에는 학창 시절 친구가 평생 친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대학에 가서도 초중고등학교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고, 마음이 아무리 잘 맞아도 대학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진짜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거나 직장(또는 이사)으로 인한 물리적 거리가 생기더니, 마음이 점점 멀어지고 연락이 끊기기 시작했다. 평생 친구라고 생각했던 녀석이제는 안부를 묻기에도 민망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매일 동네에서만 만나고 시시콜콜 대화하던 좁은 사회에만 있다가 사회로 나와 활동범위가 넓어지니 나의 성격과 경험에 맞춰져 가치관이 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꼬마 때 친구와는 대화가 잘 안 통한다고 느껴지는 날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연락이 뜸해진 친구도 아마 나처럼 반갑지 않은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닐까.


슬프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대화가 더 잘 통하고 서로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즐겁게 어울리게 된 것 같다.


어쩌면 학교 친구들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아는 상태에서 선택한 관계라기보다는 상황에 맞춰져 어울렸던 친구들이었기에 인정하긴 싫지 아무리 친했다 하더라도 성향이 맞지 않았다면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성년 즈음에는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반면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업무나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고 그다음에 선택한 관계기에 더 잘 지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마음속에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 대상이 어렸을 때 꿈꿨던 달콤한 신호등 사탕이 아닐 뿐. 나는 오늘도 마음속 로또 한 장을 품고 월요일에 멋지게 사표를 던지는 달콤한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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