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여행가 안젤라 Sep 23. 2020

나만의 카운슬러(counsellor)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

빨강 머리 앤에 나왔던 ‘필립스’ 선생님을 기억하시나요?

우리의 밝은 ‘앤’ 덕에 아마 대부분은 그 선생님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필립스 선생님은 제 받아쓰기가 엉망이라면서 틀린 글자들을 여기저기 고쳐 놓고선 그 석판을 높이 들어 올렸어요. 아이들이 다 보도록 말이에요. 아주 창피해서 혼났어요.”[빨강 머리 앤_루시 몽고메리]


저에게는 필립스 선생님이 있었어요.
시계 보는 법을 처음 배우던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나이는 몰랐지만 엄마, 아빠 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 선생님이셨어요.
지금이라면 교구용 시계를 갖고 설명하거나, 영상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시겠지만, 그땐 칠판에다 선생님이 직접 시계를 그려가며 가르쳐 주셨어요.


커다란 동그라미 속에 숫자와 시곗바늘이 그려지더니 금세 시계가 완성됩니다.


시계 보는 법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난 후 선생님은 분침을 바꿔 그려 가며 우리에게 정답을 이야기하게 하셨어요.

자신의 이름이 지명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의 바늘이 몇 분을 나타내는지 대답을 하는 것이죠.


몇 명의 아이가 순조롭게 대답을 마치고, 제 차례가 되었어요.

떨렸지만 금세 몇 분 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바늘은 정확하게 5를 가리키고 있었거든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25분입니다” 하고 대답했어요.


“그래, 맞아”

“정답이야”

라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저에게 돌아온 말은

틀렸어 였어요.



부끄러워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어요.

왜 틀렸다는 것인지 저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갸우뚱거리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시계를 잘 보라고 하시더군요.

“잘 봐!”

“시곗바늘이 숫자 5를 지나갔지?”

“이런 시계는 없어. 그래서 틀렸어!”

선생님은 본인의 기발한 위트에 잔뜩 신이 난 듯했어요.

하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어요.
내가 내뱉은 답이 틀린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틀려버린 오답이 된듯해서요.


지금의 저라면 함께 웃을 수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의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아이를 제물 삼아야 했던 걸까요?

이제 와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죠.


그 날의 기억이 분명 저에겐 지워졌다 여겼는데, 둘째 아이에게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 주다 불현듯 그 기억이 되살아났어요.
채 사그라들지 않은 불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일을 적기 시작했어요.



어른들의 사소한 말장난 하나에도 상처 받을 수 있는 아이를 보게 되었고, ‘그때의 내 마음이 내 나이만큼이나 작고, 어렸구나!’, ‘어른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은 같지 않다’, ‘말로써 상처 주지 않는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등의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기억을 되돌려 글로 적어 보는 일은 마음속 누군가를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은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며, 나만의 카운슬러(counsellor)인 거죠.


가끔씩 나도 모르게 기분 나쁜 감정에 휩싸일 때면 ‘어쩌면 감정이라는 게 없는 게 편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감정이 없을 수 없는 ‘인간’이기에 글을 쓰는 작은 노력을 해 보려 해요.

세상에 ‘그런 시계’는 없을지 몰라도, 가끔씩 필립스 선생님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그런 순간’들은 항상 있기 마련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평범함이 보호색이 될 수 있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