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학교에 다녀와서도 교복을 좀체 벗지 않는다. 맞춘 교복을 찾아와 집에서 처음 입어보았을 때는 셔츠와 재킷, 넥타이까지 매야 해서 어색해했다. 평소 운동복 스타일을 입고 다녀서 재킷은 물론이고 셔츠조차 거의 입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개학 첫날, 불과 하루 만에 교복에 적응해서 옷 갈아입을 시간이 충분함에도 학원은 물론이고 저녁밥을 먹을 때에도, 식사 후 숙제를 할 때에도 내내 교복을 입고 있다가 씻고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야 겨우 교복을 벗는다. 교복 바지와 재킷을 딱 한 벌만 맞췄던 터라 자주 빨 수도 없는데 나는 교복에 때가 탈까 봐 노심초사다. 교복을 좀 벗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자고 통사정을 해도 귀찮다며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들의 등짝을 스매싱하지 않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독서모임에 갔다가 교복을 벗지 않는 아들 이야길 했더니 다들 소싯적 경험을 한 마디씩 했다. 그중에서 친척 집을 방문할 때 교복을 입고 갔었다는 지인의 말에 갑자기 어릴 적 찍었던 가족사진이 생각났다. 대뜸 엄마에게 전화해 그 가족사진을 사진 찍어 보내달라 했더니 엄마가 찾아봐야 한다며 투덜대면서도 금방 문자로 사진을 보내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찍게 된 가족사진이었다. 90년대 사진관에서 주로 쓰던 회색, 핑크색, 연보라색 같은 채도와 명도가 낮은 색들이 점점이 어우러진 커튼을 배경으로 부모님과 남동생, 나와 언니 5명이 처음으로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이다. 사진 왼쪽부터 아빠, 엄마, 남동생이 순서대로 앉아있고 아빠와 엄마 사이에 내가, 엄마와 남동생 사이에 언니가 서 있다. 높낮이가 다른 의자에 앉혔는지 아빠와 엄마, 남동생에 이르기까지 앉은 모습이 우하향 그래프 모양으로 각도가 상당히 가파르다. 아빠는 회색 양복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있는데, 넥타이는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무늬로 유화 채색 느낌인데 정형화된 넥타이 패턴은 아니어서 아빠의 취향이 넥타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 같다. 왼쪽으로 7:3 정도 가르마로 약간 긴 듯한 머리카락이 아빠의 젊음을 말해주고 있다. 엄마는 원피스 정장 차림에 금목걸이를 하고 입술도 빨갛게 화장을 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무릎 위로 훌쩍 올라간 스커트 덕에 훤히 드러난 종아리는 놀랍도록 통통한데, 나는 이처럼 두꺼운 엄마의 다리를 본 적이 없다. 엄마의 통통한 다리도 엄마의 젊음을 대변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엄마 옆에 앉은 남동생이다. 아빠와 엄마의 얼굴 1.5배, 내 얼굴의 2배 크기는 되어 보이는 남동생의 얼굴은 무표정하기까지 해서 단연 씬스틸러로 낙점이다(사진 구도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듯함).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해본 커트 머리일 때 찍힌 나는 남성스러운 스타일과 다르게 내 인생 최고의 야리야리한 몸매일 때다. 옆에 서 있는 언니는 하얗고 토실토실한 살결에 앞머리를 5:5로 나누고 머리를 단정히 묶은 모습이 모범생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 남매 모두 교복차림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 남매는 학교도 안 가는 주말에 교복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으러 간 걸까? 아빠, 엄마는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정장 차림으로 차려입고서 애들은 왜 교복을 입으라고 한 거지? 우리 남매가 먼저 교복을 입겠다고 했을 리는 없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 보니 아무래도 입힐 옷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생 때도 사촌 언니나 친언니에게서 옷을 물려 입었던 나는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 되면서는 사복 입을 일이 더욱 줄어 옷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언니나 동생도 딱히 옷이 더 많은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아이들 차려 입힐 옷도 없는 데다 교복은 약간 정장 스타일에 가까우니 교복을 입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셨을 것 같다. 교복을 입고 찍은 덕분에 언제 찍은 사진인지도 명확하게 나온다. 언니는 여고 교복을 입고 있고 나와 남동생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으니 남동생이 중1, 내가 중3, 언니가 고1 때 찍은 것이고 그럼 1995년인가 보다. 여름 교복을 입고 있으니 6~8월 사이인 것 같고. 요즘은 예전 일들이 언제 적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교복이 단서가 되어 주니 좋은 점이 있네. 그 시절엔 카메라가 흔치 않아 교복 입고 찍은 사진이 거의 없는데 가족사진으로나마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부모님이 너무 젊어서 놀랍고, 사진사가 사진을 너무 못 찍어서 놀랍다.
교복 입던 시절로 추억여행을 갔다 돌아오니 갑자기 교복 입던 시간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인생에서 고작 6년만 교복을 입을 뿐인데 싶다.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엔 오히려 지금보다 교복이 더 비쌌어서(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물가 대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교복 블라우스만 2벌이었지 재킷과 치마는 단벌이라 엉덩이나 팔 부분이 때 타서 닳아서 반질반질하던 기억도 새록새록 생각났다.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 부모님의 촌스럽고 젊은 시절을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래, 아들아! 교복 마음껏 입으렴. 니 인생에서 교복을 입는 시기는 앞으로 6년뿐일 테니까. 너의 교복 입는 시절이 너의 엄마인 내가 젊은 시절이겠구나. 교복 입던 시절이 너에게 그리운 날들로 남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