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ing machine
Playing machine
음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 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것과 안 들어간 것...
사람의 목소리를 하늘이 준 악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와는 달리 연주(instrument)라 함은 사람의 목소리가 배제된 상태의 음악을 뜻한다. 이렇게 연주를 업으로 하는 수많은 음악가 혹은 연주가 들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그들도 모르게 연주하는 기계가 되어 버린다. 아무리 복잡한 악보라도 64분의 1음표(?)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그들의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전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복잡한 연주가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음악이라는 정의에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견해도 있어 대표적인 얼터너티브 음악의 경우, 그 모토를 '3개의 코드로만 연주 가능한 음악을 만들자.'로 하고 복잡한 연주가 아닌 누구나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고 흉내 낼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좀 더 빠르고 좀 더 정확하고 좀 더 현란한 연주를 추구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로 단지 악보를 잘 연주하는... 그야말로 'Playing machine'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것을 뛰어 넘는 소수의 연주자들을 우리는 명인(vitruso)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대중음악에서의 연주자와 클래식에서의 연주자와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연주자로서만 활동할 뿐 그 스스로 음악을 작곡하는 경우는 드물다.(없다는 이야기가 아님) 대신 대개의 경우 몇몇 작곡가의 곡에 대해 깊이 있는 곡 해석과 출중한 기량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사실 나는 클래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내 견해가 틀릴 수도 있으며 이에 대한 독자들의 반론을 언제든지 환영한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연주자들은 대개 자신이 스스로 작곡자인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스스로 연주기법을 마스터 하거나 도제식으로 실력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 들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연주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으며 그들 역시도 연주뿐 아니라 작곡까지도 교육받고 있다. 물론 아주 유명한 곡들을 연주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바로 그가 만든 음악이다. 대중음악 연주자들은 그가 작곡한 곡을 연주함으로써 대중과 소통하고 그의 존재가치를 증명한다.
대중음악에서는 copy band라 하여 자신의 곡이 아닌 남의 곡만 연주하는 그런 경우와 session man이라 하여 남의 곡을 전문적으로 레코딩하여 주는 연주자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완벽한 연주를 한다 하여도 대가 혹은 명인의 반열에 올려놓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면에 있어서 Jazz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중간자적인 위치에 존재한다. 재즈 연주자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곡뿐 아니라 명곡들의 연주와 그의 해석에 따라 그의 실력이 좌우되기도 하는 것이다.
대중음악에 있어서 연주자들은 주로 rock과 blues, jazz분야에 주로 포진하고 있는데 오늘은 rock 연주자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극찬하고 메탈음악의 확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드림 시어터도 그야말로 Playing machine들의 집합체이다. 존 페트루치(기타), 존 명(베이스), 케빈 무어(키보드), 마이크 포트노이(드럼), 크리스 콜린스(보컬) 이렇게 5명으로 구성된 연주 기계(후에 키보드와 보컬은 수시로 바뀐다)들은 그들의 우상인 Rush, Judas Priest, Metalica의 음악을 그대로 카피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pull me under, another hand등의 히트곡을 내놓은 그야말로 90년대 최고의 연주 밴드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중 존 페트루치와 존 명은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체계적으로 음악을 전공한 음악도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수 회 다녀갔던 그들은 공연에서 객쩍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무려 2시간 30분간 17곡의 대곡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환상적인 공연을 보여줬다 한다.(으으... 나도 가고 싶었다. 특히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전곡을 연주하였다 한다. 이건 아무 공연에서나 하는 게 아닌데...)
이렇게 연주를 통해서 먹고 사는 이들의 특징은 스캔들이 별루 없다는 것이다. 대개의 스캔들의 주인공은 목소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 손으로 먹고 사는 이들은 그럴 틈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당구도 하루만 건너면 표가 나는데, 그리 복잡한 연주를 하려면 어디 딴 데 신경 쓸 틈이나 있겠는가?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미지는 단지 허상일 뿐...
베이시스트인 존 명은 한국인 2세로서 링킨 파크의 디제이인 디제이 조 한과 함께 국내에서 유독 팬이 많다. 그는 6현 베이스를 구사한다. 베이스는 보통 4현이지만 Marcus miller같은 베이시스트는 5현짜리를 쓰며 6현을 쓰는 베이시스트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존 명은 자기가 이 분야에서의 교과서가 되길 원한다. 그는 쉼 없이 노력하고 또 연습한다.
그는 음악전문지(롤링 스톤지인지 아닌지 가물가물)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음악적 상상력을 극대화해서 펼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래가 몇 분이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요.”, “아무리 긴 곡도 즉흥연주가 없이 모두 악보가 있으며, 전부 머리로 기억할 때까지 연습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그들의 위치를 표현해 주는 의미심장한 멘트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직 명인의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치열한 연습을 통해서 테크닉을 향상시키고 악보에 충실하도록 노력하는 단계인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명인이라고 부를지 모르나 그들은 그들 자신을 결코 완성되지 않은 연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발전을 촉진하고 음악적 능력의 확장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할 때에야 비로소 연주하는 기계에서 명인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는 당구에서도 명인과 playing machine이 존재한다. 흔히 토비욘 블롬달(2007년 8월 현재 세계 랭킹 1위)에게 '당구치는 기계'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레이몽 클루망(벨기에 사람으로서 세계대회 100회 우승을 달성한 살아있는 전설로서 그 공적으로 벨기에 왕에게 작위를 수여받았다)에게 기계 따위의 불경한 말을 붙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브롬달이 진정한 명인이 되기 위해선 그 '기계'란 말을 하루 빨리 없애야 할 것이다.
당구나 음악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명인과 기계는 존재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은? 일단 '기계'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 일단 기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무엇인가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게 되고 그 한계를 뛰어 넘어야 거장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거장들을 존경하며 지금도 거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연주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