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T 2018 , 혼자 떠나는 길.
2018년 3월 27일.
긴 준비 기간과 그보다 긴 마음의 준비 기간을 거쳐 드디어 인천 공항에 도착 했다. 비행기는 11시 20분발이었지만 혹여나 있을 일에 대비해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서 오히려 시간 여유가 있다.
출국 수속을 다 마치고 쌀국수로 허기를 달랜 뒤 9시쯤 검색대를 통과해 라운지에서 시간을 좀 보내며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전화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여권, PCT 퍼밋, 캐나다 엔트리 퍼밋, 신분증, 국제 면허증 등등 각종 서류를 잘 챙겨 넣은 가방을 메고 이렇게 비행기를 보고 있자니 살짝 두근거린다. 언제나 '공항'과 '비행기'는 우리를 두근거리게 하지만 오늘은 그 느낌이 좀 다르다. 보통의 여행에서의 낯설음이 '설레임'이라면 이 길을 나선 이후의 낯설음은 '긴장'과 '두려움'이었다.
처음엔 항공편을 어찌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가장 저렴한 것이 중국 항공이었는데 각종 문제 가많아 고민하다가 국제적인 평가로는 우리나라 국적기들보다 훨씬 좋다는 싱가폴 항공을 예매했다. 한국어 가능한 직원도 있고, 기내식도 한식이 있었으며 좌석도 넓고 깨끗했다. 심지어 3좌석 중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옆 좌석이 텅텅 비어 있어서 여유있게 9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태평양을 날아 LA 공항에 도착, 6개월 걸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걸어서 간다니까 더 묻지도 않고 힘차게 입국 도장을 꽝~! 하고 찍어주었던 입국 심사대 아저씨의 격려를 받으며 입국 심사대를 통과, 비행기에 싣느라 비닐로 꽁꽁 싸맨 뒤 테이프까지 왕창 둘러두었던 가방의 껍질을 벗겨내고 먹거리, 장비들을 담은 박스를 카트에 끌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미리 한국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LA공항에서 샌디에고까지 가는 방법은 꽤 여러가지가 있었다. 비행기, 카풀(예약 사이트가 따로 있었습니다).. 등등..
그렇게 이것저것 알아보다 AmTrack을 알게 되었다. LA의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샌디에고의 Santa Fe 역까지 가는 해안선(일부) 기차였다. 사전에 어플을 다운받아 예약을 해 두었고 이제 LA 공항에서 열차를 탈 수 있는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이동해야 한다.
(김포나 인천 공항에서 서울역으로 이동하는 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항을 나오면 기둥마다 초록색으로 목적지가 적힌 정류장 안내판이 있고 그 앞에 서서 기다리자니 FlyAway 버스가 온다. 혹시나 몰라 한번더 목적지를 확인한 뒤 짐을 트렁크에 싣는 직원에게 맡기고 올라탄다. 어라, 그런데 왜 돈을 안 받지?
버스 요금은 유니온 스테이션에 내려 FlyAway 티켓 박스에서 카드로 구입해 버스 직원에게 건네 준다. $9.75를 카드로 결제.
사전에 카드를 아멕스로 만들어 두어서 다행히 결제 완료. 카드는 아멕스와 함께 마스터/비자 카드를 준비 해 왔다.
예약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역에 도착해서인지 열차 승강장 번호가 나오는 전광판에서 내가 예약한 열차의 정보가 확인이 안 되었다. 통로와 매표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홀을 이동하며 이것저것 체크하던 직원을 발견하고 다가가 문의하니 예약 했다면 그 티켓으로 전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목적지와 승강장을 확인 후 열차를 타러 이동했다. 헌데 혼자서 큰 배낭 메고 커다란 박스까지 들고 이동하고 있자니 지나가는 남성분이 승강장 까이 오르는 길에 짐을 들어 주신다. 그리곤 고맙다는 인사를 등으로 받으며 생~ 사라지신다. 목적지 없이 허공을 멤도는 고마운 마음이 다시 내 맘으로 돌아와 종전보다 더 큰 감동으로 뻐근하게 자리 한다.
그리곤 도착한 열차, 한번 더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확인하니 이용 가능하며 열차 뒤쪽으로 가면 짐 싣는 공간이 있다고까지 알려 주신다. 차갑고 무뚝뚝할 것이라는 미국인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짐을 짐칸에 넣어두고 열차에 착석~! 검표하시는 분이 티텟 확인 후 이런 종이를 건네준다.
그럼 아래 그림처럼 좌석 위쪽에 꽂아 두면 된다. 티켓 검사도 중복되지 않게 기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비어있어야 할 좌석에 사람이 앉아 있으면 그 좌석 승객만 검표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무사히 탑승 및 승차권 확인까지 마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힘 빠지고 배고프고 목까지 말라온다. 하지만 뭔가 너무 착착 진행되어 '더 이상 도망갈 궁리 하지마, 넌 아무 문제 없이 갈 수 있거든'이라고 말하며 등을 떠미는 듯 해서 자판기 하나 있는지 주변을 둘러 볼 틈이 없었다. 마실 물 하나 사지 못 한채 숨 한번 돌리지 못 하고 열차까지 온 것이다. 일행이 있었더라면 '기차 정보 확인하고 있어, 가서 마실거랑 먹을 것 좀 사 올게'하며 짐을 맡기고 작은 스토어라도 다녀왔을텐데. 혼자인 길의 곤란한 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지쳤지만 안도하지 못하는 나를 태운 열차는 해안가를 끼고 샌디에고를 향해 달려간다. 다른 때 같았으면 창밖 풍경을 즐겼을 텐데, 오늘은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도착한 샌디에고의 Santa fe 역. 시간은 12:54분. 열차에서 내려 의자에 앉기까지도 지나가는 분들이 짐을 들어주신다. 고맙다는 말에 쿨하게 손 한번 들어 인사를 받고는 일행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비행기도 연착되지 않았고, 암트랙 역까지 가는 버스도 오래 기다리지 않았고, 열차도 바로 도착했다. 덕분에 30일날 트레일을 출발할 때까지 신세 질 분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1:20분의 시간 여유가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여기까지 24시간....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면서도 '자면 안돼. 정신 줄 놓지 마.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며 정신을 가다듬고 따끔거리는 눈을 비벼 졸음을 쫒아본다. 그러다 깜빡 잠들어 시간을 놓칠까봐 아예 모든 짐을 다 들고 약속 장소인 역 앞으로 나가 박스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다 멀리서 눈이 마주친 외국인 여자. 그녀도 큰 배낭을 메고 있다. 이런이런..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 인 것 같다.
서로 인사하며 통성명 뒤, 혹시 모르니 두 곳으로 나눠 서서 기다렸다가 각자를 챙겨주기로 했다. 잠시 후, 우리를 픽업 해 주러 노란색 수술을 단 차가 역 앞에 도착, 샌디에고 공항의 1, 2 터미널을 들러 총 4명을 더 픽업해서 오늘 머무를 곳에 도착했다.
너무도 가슴 설레게 하는 PCT 마크가 새겨진 깃발이 현관문 앞에 당당하게 걸려있다.
'아.... 이런 멋짐이라니...'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집의 부부가 이미 PCT를 걸었고 PCT를 걸을 하이커들을 출발전~출발 지점 이동까지 자원봉사처럼 도와 주시는데 우연히 해외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어 이 곳에서 2박 3일간 신세를 지게 되었다. 잘 곳과 먹을 것이 해결된데다 해외 하이커들(미국 기준)이 필요한 것을 준비할 수 있는 다양한 도움을 주시기도 한다.
많은 하이커들이 쉴 수 있게 커다란 천막이 있고 그 중 아무데나 들어가 저렇게 자리를 잡으면 된다. 날이 따뜻해서 따로 냉/난방 시설이 필요 없었고, 우리에겐 침낭도, 우모복도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저녁 식사도 준비 해 주시고,
이 곳에 모인 많은 (예비)하이커들은 각자 접시에 먹을만큼 담아서 알아서 자리 잡고 잘 먹는다. 나 역시도 뭐, 이런거 가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하는 것 눈치껏 보며 따라 한다. 함께 식사하던 부부는 저녁 식사 동안 모여 앉은 하이커들이 어느정도 식사를 하자 간단한 대화 시간을 갖는다.
주 내용은 이 길 위를 걸으며 주의를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정보와 당부이다.
- Leave No Trace(흔적 없이 떠나기).
- 히치 하이킹을 했을 때 태워준 사람에게 고맙다(세워주고, 태워줘서), 미안하다(냄새가 너무 많이 나니까)라고 예의 바르게 말 할 것
- 선의를 받았다면 성의를 표할것(트레일에는 많은 이들이 하이커를 도와줍니다. 가능한 만큼 도네이션).
- 하이 시에라 구간에서 거친 계곡을 만난다면 절대 혼자 건너지 말고 다른 하이커를 기다리거나 그 곳에서 캠핑한 뒤 다음날 새벽 일찍 건널 것.
- 길을 걷다 다른 하이커에게 이상이 생기면 물어 봐 줄 것.
등등등...
단 본인들은 도네이션을 받지 않는단다. 트레일을 걷다보면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를 돕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대신 해 달라고 한다. 아니면 PCT를 관리하는 자원 봉사 단체인 PCTA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만의 생각에 빠졌다. 열차에 탈 때부터 이들을 만날 때 까지 낯선 이들이 베푸는 친절에 마음이 따뜻해져 코끝이 찡~했는데 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 진다. 그리곤 Grey Wolf라는 트레일 네임을 쓰는 자원봉사 하이커가(이미 PCT 걸으심) 이곳에 머물며 바쁠 동안 도와 준다길래 나도 그를 도와 설겆이를 끝낸다. 이런 작은 보답만으로 그 마음을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그리곤 다음날.
이들 부부의 창고에 마련된 우체국 박스에 한국에서 가져온 갖가지 물건들을 나눠 담는다. 6개월치의 식량은 아니고, 오기 전 인터넷으로 조사 했던것에 기초해 구간별 지도, 이동 거리 플랜, 식단, 의약품 등등을 담은 소포 박스를 만들어 중간중간 기점으로 보내 둘 예정이다. '특급우편'느낌의 Priority Mail은 배송료가 비싼대신 '추적'이 가능하며 박스를 뜯지 않을 경우 1회에 한해 원하는 다른 곳으로 한번 더 보낼 수 있다. 중간중간 받았던 소포들은 그렇게 다음 혹은 그 다음으로 보내어 적절히 식량 배급을 받았다.
박스마다 번호를 매겨 두었고 그 번호에 맞춰 식단을 표시 해 두었기 때문에 대충 몇 번 박스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수 있어서 현지에서 박스를 픽업했을 때 내용물이 필요치 않으면 다른 마을로 보내기도 했었다.
6개월충 초반 3개월 정도를(바운스 포함) 예상하고 한국에서 준비 해 온 10개의 메일박스.
일반 소포들에 섞여 하이커들이 보내는 박스도 많기 때문에 막상 현지에서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해서 가져간 테이프를 얇게 잘라 나만의 시그니처를 만들었다. 실제로 PCT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 경우도 많고 하이커들도 많아 박스 찾기가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이 사진을 보여주자마자 우체국 직원들이 바로 '아!'하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박스는 우체국에서도 구할 수 있는데, 우편 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박스는 무료다.
오후에는 아웃도어 샵에도 데려다 주셔서, 나중에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여러 모델의 신발도 신어 보고 장비와 옷 등을 구경하며 다른 하이커들이 무엇을 구입하는지 유심히 지켜 보았다. 또 휴대폰 매장에도 데려다 주셔서 이 곳에서 6개월 동안 사용할 AT&T 유심도 구매하였다.
그리고 출발 전날 밤.
다음날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같은 천막 안의 하이커들이 다 나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준비해야 해서 짐을 한번 패킹 해 봤다. 첫 구간의 물 공급이 원활하지 못 하다해서 경험자에게 물어보니 6L라고 말하길래 물도 일단 6L를 챙겨 넣었다.
'헉~ 나..... 들 수 있을까.....?? 걸을 수 있을까.....??'
시험삼아 들어 본 배낭은 겁이 덜컥 날 정도로 무겁다. 참고로 이 곳에는 PCT를 걸었던 또 다른 하이커가 있는데 이날 밤, 초보 하이커의 배낭을 전부 뒤집어 엎고는 필요 없는 물건들에 대해 조언 해 주며 배낭 무게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며 내 시야를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드디어 출발의 날 아침!!!!
집을 출발해 PCT 시작점인 Campo의 멕시칸 보더로 이동한다. 많은 하이커들이 같은 날 출발하기에 이 '이동'에만 따로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아침부터 집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이 울프가 출발 명단을 보며 차를 배분 해 주어 그의 지시대로 차량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도심, 점점 황량해 지는 외곽을 바라보며 미쳤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밝아오는 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설레임과 두려움에 흥분해서 탁탁탁 손발을 떠니 같이 차에 탄 친구가 '잘 할거야, 괜찮아'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등을 토닥여 준다.
'으으으으~~~ 그렇겠지?' 애써 웃으며 대답한다.
PCT 퍼밋을 확인하는 테이블.
출발 전 수 없이도 보았던 PCT Southern Terminus.
'야잇~!!! 드디어 만났구나~!!!!! 아이고~!!!!'
만감이 교차한다. 출발 전 개인 인증샷과 함께 출발하는 사람들의 단체 샷을 남긴 뒤, 이제 각자 알아서 각자의 길을 갑니다. 2650mi. 4300km.
기다려라, 캐나다~!
웃으면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