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HARI ] PCT 2018 Day 1~3

마법같은 트레일 매직

by SHARI PCT Thru Hiker

30 March 금 : 1일째

날씨 맑음. // CS고도:1035m

PCT Southern Terminus 0km~Camp Site 18.3km // 이동거리 18.3km


출발점 너머로 보이는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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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40분, 멕시코 국경의 캄포를 출발했다. 6L의 물과 5일 치의 식량을 담은 가방은 무겁지만, 이제 막 시작했다는 흥분과 함께 비로소 실감이 났다. 4278km의 시작이다. 일주일 혹은 한 달을 잘 걸을 수 있을까? 아니면 길의 끝까지 잘 걸어 캐나다로 갈 수 있을까? 그 결과를 알 수 없으니 일단 걸어 볼 수밖에.


길은 출발점에서 벗어날수록 초지가 늘어난다. 주변에 집의 수도 점점 적어진다. 그럴수록 긴장감은 늘어간다. 오늘 하루라도 무사히 잘 걸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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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를 알리는 다양한 표식들. 공통점은 가운데 화살표 모양의 나무가 새겨진 점이다. 그늘 하나 없는 길이지만 늘 인터넷으로만 보던 PCT 표식들을 보고 있자니 더 없이 신기한 마음에 아직은 더운 줄을 모르겠다. 사막이라곤 하지만 '사하라'처럼 완전 모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황야'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오는 배경이 아마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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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 보호가 철저한 미국에서 외부인 출입 금지입에도 PCT 하이커에게 길을 내어준다는 고마운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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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iles 에서. 아직 덥지 않아 신이 났다. 캐나다까지 남아있는 마일의 숫자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막 구간. 이따금 부는 바람에 즐겁기도 그 때까지 뿐, 오전 10시가 지나니 뜨거워진 땡볕에 더위를 먹을 것 같다. 가벼운 것을 최고로 치며 칫솔 손잡이마저 잘라서 가져간다는 Ultra Light 하이커들이 왜 우산을 준비물로 추천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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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벌써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다. 오늘 하루를 쉬어 갈 수도 혹은 해가 질 때 까지 오침을 즐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길 위에 내리쬐는 햇빛을 가릴 것은 없다. 길은 스위치 백(지그재그로 산을 올라가는 방식)이 많아서 한국의 산 처럼 급경사를 올라 곧바로 산이나 언덕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저 언덕을 넘을 것 같은데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언덕 하나를 넘어가니 이것도 나름대로 곤욕이다. 정오가 조금 지나서야 다른 하이커들이 쉬고 있는 작은 나무 그늘 옆에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 한 시간 반쯤 전에 물을 부어 불려놓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다른 네 명의 하이커는 그늘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다. 도저히 더워서 못 가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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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표지판이 없는 갈림길에서 먼저 걸은 누군가가 남겨준 흔적이 도움이 된다.


점심을 먹으며 나는 남들보다 느리니 부지런히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가다 보니 Trail Angel(Trail을 걷는 하이커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주는 사람들) House에서 함께했던 하이커 2명이 18.3km에 있는 CS(Camp Site)에 텐트를 치고 있다. 잠깐 쉬면서 고민해 봤는데 이제 겨우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하우저 크릭(다음 캠핑 가능 장소)까지 두 시간 더 걷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아직 이 길 위에서 이 무게의 배낭을 메고 걸을 때의 내 컨디션이 어떤지 파악이 안 되었으니 나도 그들 곁에 자리 잡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에 눕자마자 마음보다 몸이 더 지쳤는지 그대로 뻗어버렸다. 잠결에 수다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누가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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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자다 깨다 일어나보니 점점 인원이 늘어나 3명이 머무를 수 있다는 이곳에 8명이 모였다. 무거운 짐을 지고 더 가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기에 환영인사를 나누며 다닥다닥 텐트를 설치하고, 잠깐의 수다를 떨다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Trail Angel House에서부터 이곳까지 나흘동안 한국인 심지어 동양인은 단 한 명도 보지 못 했다는 것이다.



31 March 토 : 2일째

날씨 맑음 // CS고도:971m

Camp Site 18.3km ~ Boulder Oaks Campground 42km // 이동거리 23.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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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새벽 4시 20분 기상, 5시 출발.

다들 물이 부족한 관계로 아침 일찍 일어나 뜨거운 태양이 나타나기 전 이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느릿느릿 체력이 올라오는 탓에 제일 꼴찌가 되었고,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서 Trail Angel House에서 본 사람들을 지나치면 인사도 하고, 혼자 밥도 먹는다. 오늘 아침은 일본 재난 식품으로 판매되는 동결건조식이다. 찬물을 부어도 조리가 되어서 일본 등산객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출발 전 가지고 있던 물을 미리 부어두어서 적당한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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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 Morena Camp Ground에 도착했다. 보통 4월 중순~말경 이곳에서 PCT의 시즌 오프닝 행사 등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날짜가 맞지 않으니 잠시 쉬면서 바람도 좀 쐬고 부족한 물을 물통에 채워가는 곳으로만 생각했다. 정수기로 열심히 물을 정수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나를 부른다. 어젯밤 같은 곳에 텐트를 쳤던 두 명의 하이커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곳에서 하루 쉬었다 가기로 했단다. 서로 안부를 빌어주고 그들은 레스토랑으로, 나는 다시 트레일 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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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는 가축과 동물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문을 만들어 두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 스스로 열고 닫아둔다. 그 한쪽에 누군가 PCT 표식을 붙여두어 길을 안내 해 주고 있었다. 이 스티커가 없었다면 이 철문을 열고 지나가도 되는 것인지 한참을 망설였거나 다른 하이커가 지나가고 나서야 눈치를 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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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걷다가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구하고, 해가 지기 전에 텐트를 치고 그곳에 머물러야겠다 생각하며 도착한 Boulder Oaks CG(Camp Ground). 놀랍게도 Trail Magic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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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을 걷다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먹을 것이나 마실 물, 의약품 등을 발견했을 때 마법처럼 눈 앞에 나타난다고 트레일 매직이라한다. 심지어 대가도 받지 않는단다. 맥주, 피자, 브라우니, 샌드위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신기한 것은 나는 미안하고 고마워 어찌할 줄 모르겠는데 다른 이들은 다른 것은 없냐며 요구한다. 가뜩이나 트레일 매직이란 문화도 아직 낯선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낯설다. 이들은 왜? 어떻게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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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출발 전부터 세계 곳곳의 선배 하이커들이 공유해준 정보들뿐 아니라 그곳에 다녀온 국내 하이커들의 블로그에 공개된 정보 공유 역시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내가 ‘시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을까.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바로 곁의 지인들이 진심을 담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금전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 물품을 선뜻 건네준 사람, 이미 많은 장비를 지녀서 웬만하면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가려는 내 성격을 알기에 그곳에서 필요할까 싶어 샀다며 건네는 센스있는 소품까지…. 트레일 매직의 마음도 나의 지인들처럼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의 안부를 기원하는 것일테지만 일면식도 없는데다 다시 만날 일 또한 없을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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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건 페이스북으로 인사만 건넸던 한국분이 혹시나 싶어 들렀다며 맥주를 사 들고 캠핑장에 찾아오신 일이다. 길을 걷는 것도 걷는 것이지만 이 마음을 다 어떻게 갚아야 할 지…. 감사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맥주는 함께 텐트를 치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다른 하이커들과 나눠 마셨다. 그들은 내 덕분에 맥주를 얻어 마신다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1 April 일 : 3일째

날씨 맑음. // CS고도:1802m

Boulder Oaks Campground 42km ~ Mt. Laguna Campground 66.7km // 이동거리 24.7km


트레일에서의 두 번째 아침, 세 번째 날인 4월 1일은 한국에서 만우절이다. 그 만우절 아침을 거짓말 같은 선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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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생각지도 못한 트레일 매직들을 만나고 일어나니 하이커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저녁 먹었던 테이블에 누군가 부활절 달걀처럼 삶은 달걀에 색색을 입혀 PCT라고 적어서 두고 갔다. 아침부터 이런 선물이라니…. 어제오늘 마음을 두들겨 맞는 기분이다. 달걀을 한 개 까먹고, 텐트를 접는데 입김이 나온다. 매쉬 텐트는 가벼워서 좋은데 아무래도 보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새벽에 절실하게 느꼈다. 좋은 침낭을 가져오길 잘 한 것 같다. 걷고 있는데도 쌀쌀하다. 종일 바람이 많이 부는데 그늘에서 바람을 오래 맞고 있으면 금방 체온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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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걷는다고 걷고 있는데 다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가버리니 죽자고 쫓아 갈 수도 없고, 그네들 두 걸음에 세 걸음씩 쫓아가도 내가 늘 마지막에 도착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격려하며 꾸역꾸역 잘 해내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첫 날 처럼 6L의 물을 지고 가지 않아도 되었다. 사용하고 있는 어플리케이션에 중간중간 물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데 오늘도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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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부터 몇번이나 마주치고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눴던 두 명의 하이커가 물가에서 간식을 먹고 있다. 내 바로 앞서 걷던 하이커도 그들과 합류하기에 나도 인사를 건넨 뒤 배낭을 내리고 물을 받아 정수하고 나서 간식을 먹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마운틴 라구나 캠프 그라운드에 간다 하여서 함께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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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이름이 Mt.Laguna이더니, 키가 큰 나무들이 울창한 지역으로 들어섰다.

샌디에고에서 첫 날 나와 함께 차를 타고 트레일 앤젤의 집에 도착했던 하이커 아저씨. 이 분은 나와 같은 날 샌디에고 공항 1터미널에서, 그 날 제일 마지막으로 차에 탔는데 모두들 그가 이 길을 걸으려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했었다. 아무런 짐도 없이 맨몸이었던 거다! 알고보니 항공사에서 짐을 분실했던 것. 순탄치 않은 시작이라 다들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당사자는 아마도 멘붕이었을 것이다.그래도 다행히 2일 후 짐을 받아 트레일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한참 쑥~쑥~ 잘 간다 했더니 PCT와 CG 갈림길에 주저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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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 갈림길. 제일 아래가 지금까지 걸어온 PCT이고 왼쪽 위의 길로 들어가면 C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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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하루를 잘 걸어 마운틴 라구나 캠핑장 도착. 캠핑장은 한 구역 당 $25였는데 다른 하이커들과 함께 사용하기로 해서 10명이 각자 $2.5씩 냈다. 참 효율적이다. 같이 걸었던 세 하이커들은 레스토랑에 햄버거를 먹으러 가고 나는 한국식으로 3분 미역국에 동결건조 쌀을 넣어 고추장을 똑~똑~ 숟가락 위에 덜어가며 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지친 몸에 온기가 돌며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 첫 날 18.3km 둘째 날 23.6km 그리고 오늘 24.8km. 특히 오늘은 오르막도 많고 더 힘들었다. 곰이 나올 것 같은 숲을 지날 땐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두 사람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쫓아갔다.


텐트를 치고 나니 너무 춥다. 그늘이라 추운 것인지 Camp Ground가 산속이라 그런 것인지 엄청 춥다. 물을 받으면서 팔 다리와 얼굴만 겨우 씻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온 몸이 아프다. 다리며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 욱신욱신 쑤시다 못 해 발은 뼈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다. 이런 고통도 있다는게 신기할 지경이다. 고통으로 자면서 계속 뒤척였다.


잠결에, 내가 아직도 한국의 집에 있고 이 트레킹이 닥쳐올 일이라 생각하며 고생할 생각에 끔찍해 하는 꿈을 꿨다. 눈을 떠보니 텐트 속 침낭 안에 누워있다. 순간 울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울컥 든다. 사실 친구랑 같이 오거나 연인이랑 같이 온 사람들, 아니면 여기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난 이들이 서로 공유하고 대화하는 모습이 부럽다. 몸도 힘들지만 특히 이 순간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의 이 시간들을 누가 함께 이야기하고, 온전하게 공감할 수 있을까. 오늘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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