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얼숲 Nov 03. 2023

대천에서 로또 자랑하던 아저씨

잡글 02

잡글이다.


몇 주 전, 친구들과 대천에 놀러 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그래도 대천에 왔으니 조개구이라도 먹자며 친구 하나가 잘 아는 조개구이집으로 향했다. 그날 나와 같이 놀았던 친구는 총 셋이다. 언론사를 준비하며 대학원에 다니는 나와 삼성전자에 입사한 녀석, 토스에 다니는 녀석 그리고 IT 업계를 꿈꾸며 지금은 쿠팡에서 관리직(정확히는 모르겠다)을 다니는 녀석이었다. 


한참 조개구이를 흡입하다 별안간 '중산층'이라는 키워드가 우리의 대화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사실 뭐 내 친구들이 그런 사회적 이슈를 잘 감지하는 놈들은 아니라 내가 주로 떠들긴 하지만, 이야기가 시작되면 한 마디씩 거들긴 한다. 이번엔 지난 잡글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를 꺼냈다. 어쩌면 우리도, 특히 삼전과 토스에 다니는 녀석 둘은 사실상 중산층 이상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가 내 주장이었다. 


"아니, 우리 정도면 사실 사회에서 상위 10%가 아닐까. 더 이상 서민이 아닐지도 모른다." 

괜히 나무라거나 꼽 주려던 건 아니다. 그래도 괜찮은 대학을 나와 어느 정도 돈을 받는 기업에 가게 될 나와 친구들의 미래를 예견해 본 것이다. 수많은 비정규직, 계약직, 단순노동자에 비하면 어쩌면 우리가 가난이나 서민 타이틀을 가져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좀 더하면 우리의 노력도 운이 잘 작용했다는 걸 느끼고 살자는 마음이었다(난 아직 아니지만...).


이야기 도중 잠깐 밖에 나가 바람을 쑀다. 불쑥 웬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우리에게 불이 있냐고 물었다. 아까 우리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담배를 아무도 안 펴서 불이 없다고 하자 남자는 쭈뼛거리며 우리 옆에 서 있었다. '뭐지...?' 하고 있는데 말을 붙였다.


"아까, 그 뭐 상위 10%... 연봉 이야기 하는 거 한참 들었어요."

남자의 말에 이상한 경계심이 들었다. 남의 식탁에서 나온 돈 이야기에 쫑긋했던 그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의심스러웠다. 나는 자연스레 이런 주제에는 토스 다니는 녀석이라며 앞으로 내밀었다. 대충 제일 잘 번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도 쑥스럼이 좀 있는 성격이라 자기를 드러내진 않는다. 남자가 어디 다니냐고 묻자 우리가 토스 다닌다고 말했다. 그제야 남자가 '아... 그 돈 잘 버는 데...?'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귀금속 업계에 다닌다고 했다. 세 번째로 크다는데 전혀 모르던 기업이었다. 남자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귀금속은 내가 아예 모르는 분야였다. 아주 잠깐 혹시 모를 미래의 취재를 위해 들어볼까 싶었다가 금방 접었다. 왠지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게 뻔해 보였다. 자신이 얼마나 버는지, 요즘 귀금속 업계가 어떤지, 차가 뭐고 서울 어디에 살며 주식 현황이 어떤지 등 돈 이야기로 가득할 게 뻔해 보였다.


자리를 피해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토스 녀석도 들어왔다. 둘이 앉아 참 이런 상황이 싫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이야기했던 건 돈이 아니라 사회 속 우리의 모습이었는데, 남들 눈엔 그저 돈 이야기로 비친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윽고 친구들도 들어와 앉았다. 몇 분쯤 지나 남자가 들어와 우리 테이블을 스쳤다. 내 옆자리 친구에게 뭘 보여주고 돌아갔다. 뭐냐고 물으니 '로또 2등 당첨'이라는 안내문이라고 한다. 나도 친구도 놀라지 않았다. 뻔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가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대천에서 밥 먹다 만난 처음 본 사람들에게 로또 2등 당첨을 자랑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가만히 남자를 보았다. 올리브색 경량패딩에 아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약간 두툼한 살집에 더벅머리였다. 남자는 혼자 조개를 구우며 폰을 보고 있었다. 같이 온 여자친구쯤 되어 보이는 여자는 우리가 라면에 소주 한 병을 비울 동안 오지 않았다. 한동안 우리에게 모종의 자랑을 하던 그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폰만 보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우리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을 드러내던 그에게서 일종의 씁쓸함을 느낀다. 그에게 돈과 직장과 로또는 여행지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자랑이자 위안이었을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언론에는 하루가 다르게 익명과 모자이크로 자신을 가리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엔 이렇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많다니... 보이는 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보이고 싶은 사람은 많은 세상. 대체 왜 사람들은 자신을 고백하고 있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아우디 타고 필기시험 보러 간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