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03
잡글이다.
오랜만이다. 그만큼 바빴다. 밤을 새는 날이 많았다. 대학원 학생으로서 과제를 해야 했고, 독립언론의 PD이자 부서장으로 편집과 취재, 온갖 일을 했다. 거기에 입사를 준비하는 언시생으로 나름(?) 꾸준히(??) 공부도 이어갔다.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11월 마지막 목요일에는 대학원 특강에 손석희가 왔다.
'손석희'라고 말하는 게 무례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일선에서 다 물러나 있는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도통 감을 못 잡겠다. 아저씨라 부를 순 없으니 이른바 '미국식'으로 이름을 불러 본다.
손석희에게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후배들 중에 저 놈 참 언론인으로서의 싹수가 있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손석희는 세월호 때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소셜네트워크가 인기를 끌 때였다. 후배 기자들 대부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에 글이나 사진을 남겼는데, 한 후배가 일절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궁금했던 Son이 그 후배에게 "넌 SNS 안 해?"라고 물었단다.
돌아온 답은 "할 시간이 없는데요"였다. 그때 Son은 제법 언론인으로서의 싹수가 있는 후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그 이야기를 갖고 와도 전혀 무리가 없다. 나도 인스타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바쁜 사람은 인스타고 나발이고 할 시간이 없다(라며 이 글을 인스타에 올리는 나). 적당한 자기 홍보가 필요한 삶이고 사회지만, 언론인들이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선 좋은 기사가 안 나온다. 언론인은 SNS에 자기를 홍보하는 대신,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실과 정보를 발굴해 작성해 내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SNS 한 토막 할 시간 없는 언론인들이 마냥 좋은가?라고 물으면 갸우뚱하기도 하다. 언론인도 결국 사람인데, 휴식과 삶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우리의 주간 교수이자 취재와 글쓰기를 가르쳐주시는 모 선생님께서는 언론인이야 말로 미혼, 비혼, 이혼이 많은 직업이라고 하는데, 한편으론 나의 삶을 송두리째 갉아먹어가며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 하는 게 멋진 인생 같지는 않다. 후대에 무언가를 남기긴 할 테지만...
돌아와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쁘다, 그럼에도 견뎌낸다"이다. 무언가를 이뤄내려면 하는 수 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몰리고 밀리는 일들의 연속에서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주저앉아 울고만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눈물을 닦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다 나의 일이다. 때때로 화도 나고 짜증도 나 미칠 지경이지만 어쩌겠는가. 이루고 싶은 멋진 일이 있다면 어느 선까지는 견딜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동료와 친구가 고마울 따름이고 추억할 여행지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브런치에 많이도 갖다 인용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갖다 쓰는 영원이형의 말이다.
"연꽃은 진흙 위에서 핀다"
아름답고 멋진 무언가가 뿌리내린 곳은 참 손 대기 싫고, 발 담그기 싫은 곳일 수 있다. 그치만 연꽃이 포근한 모래 위나 촉촉한 흙 위에서 자랄 수는 없는 것처럼, 좋은 언론인도 온실 속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만약 고상한 온실 속에서 탄생했다면 진짜 확신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런 건 기레기거나 기자가 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한 거라고.
여전히 바쁘고 밀린 일들이 많은 연말이지만, 이 글 한 번 쓰고 분위기를 환기시켜 본다.
내가 연꽃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언론인은 연꽃이라고 생각하고 이 진흙 밭 위에서 뒹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