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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Dec 20. 2023

연꽃이 피는 곳은 진흙이다

잡글 03

잡글이다. 

오랜만이다. 그만큼 바빴다. 밤을 새는 날이 많았다. 대학원 학생으로서 과제를 해야 했고, 독립언론의 PD이자 부서장으로 편집과 취재, 온갖 일을 했다. 거기에 입사를 준비하는 언시생으로 나름(?) 꾸준히(??) 공부도 이어갔다.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11월 마지막 목요일에는 대학원 특강에 손석희가 왔다.

'손석희'라고 말하는 게 무례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일선에서 다 물러나 있는 사람을 

뭐라고 부를지 도통 감을 못 잡겠다. 아저씨라 부를 순 없으니 이른바 '미국식'으로 이름을 불러 본다.


손석희에게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후배들 중에 저 놈 참 언론인으로서의 싹수가 있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손석희는 세월호 때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소셜네트워크가 인기를 끌 때였다. 후배 기자들 대부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에 글이나 사진을 남겼는데, 한 후배가 일절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궁금했던 Son이 그 후배에게 "넌 SNS 안 해?"라고 물었단다. 


돌아온 답은 "할 시간이 없는데요"였다. 그때 Son은 제법 언론인으로서의 싹수가 있는 후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그 이야기를 갖고 와도 전혀 무리가 없다. 나도 인스타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바쁜 사람은 인스타고 나발이고 할 시간이 없다(라며 이 글을 인스타에 올리는 나). 적당한 자기 홍보가 필요한 삶이고 사회지만, 언론인들이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선 좋은 기사가 안 나온다. 언론인은 SNS에 자기를 홍보하는 대신,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실과 정보를 발굴해 작성해 내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SNS 한 토막 할 시간 없는 언론인들이 마냥 좋은가?라고 물으면 갸우뚱하기도 하다. 언론인도 결국 사람인데, 휴식과 삶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우리의 주간 교수이자 취재와 글쓰기를 가르쳐주시는 모 선생님께서는 언론인이야 말로 미혼, 비혼, 이혼이 많은 직업이라고 하는데, 한편으론 나의 삶을 송두리째 갉아먹어가며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 하는 게 멋진 인생 같지는 않다. 후대에 무언가를 남기긴 할 테지만...


돌아와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쁘다, 그럼에도 견뎌낸다"이다. 무언가를 이뤄내려면 하는 수 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몰리고 밀리는 일들의 연속에서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주저앉아 울고만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눈물을 닦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다 나의 일이다. 때때로 화도 나고 짜증도 나 미칠 지경이지만 어쩌겠는가. 이루고 싶은 멋진 일이 있다면 어느 선까지는 견딜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동료와 친구가 고마울 따름이고 추억할 여행지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브런치에 많이도 갖다 인용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갖다 쓰는 영원이형의 말이다.

"연꽃은 진흙 위에서 핀다" 

아름답고 멋진 무언가가 뿌리내린 곳은 참 손 대기 싫고, 발 담그기 싫은 곳일 수 있다. 그치만 연꽃이 포근한 모래 위나 촉촉한 흙 위에서 자랄 수는 없는 것처럼, 좋은 언론인도 온실 속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만약 고상한 온실 속에서 탄생했다면 진짜 확신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런 건 기레기거나 기자가 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한 거라고.


여전히 바쁘고 밀린 일들이 많은 연말이지만, 이 글 한 번 쓰고 분위기를 환기시켜 본다. 

내가 연꽃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언론인은 연꽃이라고 생각하고 이 진흙 밭 위에서 뒹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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