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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Feb 01. 2024

명문대 합격 현수막의 슬픔

분절

며칠 전 아버지와 저녁 식사 중에 이런 말이 나왔다. 

"수고(포항 해양과학고, 옛날 이름이 수산고) 총동문회 가면 엄청 화려하다카대?"

공업도시긴 하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여전히 수산업이 발달한 포항에선 수고를 나온 졸업생들의 힘은 굉장하다. 이들의 힘이 안 닿은 곳이 없다. 물론 내가 체감할 순 없다. 다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들이 졸업 후 진출하게 되는 수산업계에 먼저 진출한 이른바 '빵빵한 선배'들이 많고 그들의 힘이 강하다는 건 알 수 있다. 


수고는 소위 일진들이 가는 학교라고 불렸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어릴 때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 가는 건 고지식한 경상도 아저씨들 말로 치면 '똥통 학교'에 가는 일이었다. 깊이 생각은 안 했어도, 나 역시 어린 시절엔 얼추 그 말을 어렴풋이 믿곤 했다. 얼마나 편견이 심했는지, 당시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선 "졸업 때까지 임신을 안 하면 장학금을 준다"는 유언비어까지 널리 퍼졌었다. 하여튼 이들이 양아치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인식만큼은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물론 어디를 가나 양아치는 있다)


그런데 고지식한 경상도 아저씨들은 수고 졸업생들과 일한다. 이들이 없으면 포항의 경제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이 포항 죽도시장에 가는 수산물을 관리할 것이며 각종 어업에 다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수고 졸업생만 그런 게 아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안 간 많은 학생들은 포항의 여러 산업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자영업을 비롯한 상업 외에도 바다를 이용한 관광산업에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아빠와 대화하며 마지막 내 말은 이랬다.

"포항 경제에 나 같은 애들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되네?"


내가 다니던 학교 바로 앞에는 현수막을 거는 게시대가 있었다. 주로 학교를 빛낸 입상, 수상, 실적 등을 걸었다. 입학 때부터 봐 온 대입 현수막도 그중 하나였다. 나의 대입이 끝난 2015년 초, 주요 대학 합격 현수막이 붙었다. '몇 명'이 합격했는지보다 '몇 곳'에 집중했다. 한 학생이 여러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선 좀 더 있어 보일 수 있게 만들기 쉬웠다. 당시엔 수능을 망쳤다며 우울해했지만, 나 역시 현수막에 포함되긴 했다. 물론 이름이 붙은 건 아니고, 지역거점국립대학 00명 합격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런 현상이 우리 학교만의 일은 아니었다. 옆 학교도 그랬고, 그 옆 학교도 그랬다. 아니, 내가 살았던 포항의 모든 학교는 입시철에 그런 현수막을 걸었다. 대학을 오고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봐도 그건 비슷했다. 하긴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우리에게 서울의 좋은 학교를 가길 권했고, 안 되면 지역거점국립대를 가길 희망했으니 학생들의 합격 소식은 그들의 자랑이자 학교 전체의 자랑이었을지 모른다.


학교를 빛냈던 그들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학교의 자랑이었던 녀석들은 서울로 떠난 뒤 다시 포항의 아들과 딸이 되었을까 아니면 매 선거마다 정치권이 분석하는 서울의 2030이 되었을까? 중고등학교 때 공부 좀 한다던 놈들은 결국 다 고향을 떠나 산다. 그리고 대도시의 인프라 속에서 풍부한 기회를 제공받아 성장한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만나보지 못했던 세상을 만난다. 


이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고향에 돌아간다는 건 대도시의 경쟁에서 밀려남을 뜻한다. 조금이라도 서울 가까운 곳에 붙어 있어야 이들에겐 성공이 보장된다. 성공은 별 게 아니다. 괜찮은 직업을 가진 채 괜찮은 삶을 살며 내가 누려 온 대도시의 인프라를 꾸준히 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년간 쌓아온 모든 역량과 에너지를 사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뛰어난 학업 성취도와 좋은 학벌, 경험은 지역이 배출했으나 지역 경제에 이롭지 않다. 결국 지역이, 학교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녀석들은, 그래서 현수막에 붙어있던 녀석들은 지역을 돌보지 않는다. 


당연히 나쁜 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지난 10년 넘는 기간 동안의 한국 사회가 만든 맥락이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뛰어난 역량이 분배되지 못한다는 건 거시적인 관점에선 공멸의 길로 가는 걸 테니 말이다. 또한 지역이 배출했고, 배출하려는 인재들이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된다는 건 지역 소멸과도 무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분절이라고 생각한다. 제법 좋은 공부를 한 학생들은 수도권에 몰려 자신들의 리그를 펼치고 있고,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지역에 정착한 이들은 실제 지역 경제를 돌아가게는 해도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기에는 어렵다. 현상은 계속해서 더 빨리 발생하고 격차는 더 벌어지는데, 문제는 해결될 조짐이 없다. 지역을 떠나 공부를 한 학생들은 분명 좋은 교육을 받는다. 이런 학생들이 지역에 돌아올 계기는 없을까? 또 지역에 남아 실질적인 일을 하는 학생들에게도 편견이 아닌, 특화된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학생들과 지역의 비전을 만들어 갈 새로운 해법은 없을까?


총선이 코앞이다. 시장마다 명함에는 다들 지역을 살리겠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적임자라 한다. 학교 앞은 또 서울대며, 고려대며, 지역거점국립대며 대도시로 가는 학생들을 자랑스레 걸어둔다. 무심하게 남발되는 명함과 명문대 합격생을 자랑하는 현수막 속에서 지역은 점점 더 힘 없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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