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대학원 방학을 맞아 포항에 온 첫날이다. 우연히 외삼촌을 비롯한 친척 어른이 모여 있는 저녁 자리에 갔다.
부모님을 포함해 친척 어른들은 전부 경상도 토박이다. 그렇다. 국민의힘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고 더불어민주당을 '남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나머지 정당은 소위 '안 될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그 자리에는 50대 중후반인 외삼촌이 있었다. 외삼촌은 언론을 배우는 내게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에서의 일상을 이야기하던 중, 손석희 전 앵커를 언급한 순간이었다. 외삼촌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이윽고 내 눈치를 보신 건지, "나도 참... 손석희를 옛날엔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전라도 편'을 들기 시작하니까..."라는 말을 쭈뼛쭈뼛 꺼냈다.
'전라도 편'. 웃겼다. 그냥 외삼촌도 어쩔 수 없는 경상도 아저씨구나 싶었다. 손석희는 대체 언제부터 전라도 편이 된 거고, 경상도는 전라도와 대체 언제부터 전쟁을 한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광주 출신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나는 뭐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건가? 사실 이 웃긴 이야기를 넘어 이해가 안 되는 건 외삼촌의 배경이다. 외삼촌은 오래전 포스코의 하청 업체 중 한 곳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노조로도 활동했다. 시위도 했다. 근데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 이게 진짜 의아하다.
오랫동안 포항을 중심으로 경상도의 정치 문화를 나름대로 관찰해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시장 아줌마들은 울었다. 유승민 의원이 유세를 하면 야유를 보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더 할 정도다. 가난하게 살거나 노동자 집단도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 전라도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선거 방송에서 전라도에서 민주당 지지자가 90% 득표율을 보이면 "우리는 그래도 70%인데, 저기는 90%"라며 혀를 찬다.
왜 그럴까? 내 생각이다. 우선 경상도에 사는 서민층 어른들은 국가의 복지 혜택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성장보다 복지를 외치는 이른바 진보 정당인 민주당이 좋아 보일리가 없다. 두 번째, 이들에겐 박정희의 향수가 가득하다. 전두환을 욕하는 경상도 어른은 많다. 그런데 박정희를 욕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가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인물인 셈이다. 그래서 그의 딸과 그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열광한다. 이들을 배신하는 게 민주당보다 더 싫다.
사실 경상도 어른들에게 굳센 정치 철학 따위는 없다. 허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 정당의 후보로 나왔을 때 긴가민가한 어른들이 많았다. 정통성은 없어 보이는데, 그래서 능력도 모르겠는데, 안 뽑자니 이재명 대표가 당선이 되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경상도에 대입해서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라도도 비슷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정치적 명분은 있다는 점이다.
지역에서의 선거 흐름이 보수는 경상도, 진보는 전라도로 나뉠 때마다 나는 우리가 휘둘리고 있다고 느낀다. 표심에 기민한 정치인들이 언제까지 경상도, 전라도로 나뉘어 선거를 할까. 내가 정치인이라면 사람이 더 많은 수도권을 위한 인프라와 정책을 앞으로 더 내세울 게 뻔하다. 오히려 경상도와 전라도를 비롯한 모든 비수도권이 긴장해야 할 건 수도권으로 집중된 인프라와 정책을 어떻게 지역으로 끌고 올 것인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