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04
잡글이다.
언론사 입사 시험에선 작문의 글감으로 나의 경험을 사용한다. 지난 시간 동안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는지, 또 무엇을 감각했으며 그래서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는지를 쓰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대학원에서 처음으로 작문을 접했다. 글이라곤 끄적여 왔으나, 이제까진 하등 유치한 것들 투성이었으니 말이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대체로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꺼낸다. 당연한 이야기다. 태어나며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제일 많이 보고 듣고 감각했으니 말이다. 또 나의 감각에서는 그들의 삶이 가장 애처롭고 고맙고, 때론 밉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수업 때였다. 작문을 가르쳐 주시던 교수님이 우리를 꾸짖었다.
"어떻게 언론인이 되겠다면서 고작 작문에 쓰는 글의 소재가 엄마와 아빠가 될 수 있나?"
교수님에 따르면 언론인은 세상을 감각하는 사람이다. 언론인이 감각해야 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넓다. 때로는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지하철역의 노숙자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웬만한 이야기가 아닌 한, 엄마와 아빠로부터 감각한 이야기는 결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글이 될 수 없다. 기껏해야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살아왔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정도가 될 뿐이다. 그게 과연 타인에게도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이 될 것인가? 지나가는 사담 정도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우리 사회가 고민할 정도의 이야기가 되기는 어려운 이야기다.
교수님은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글을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글'이라고 평했다.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다.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들은 맞지만, 한편으론 삶을 살다 보면 겪는 무수한 일들로 이들과 마찰을 겪는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나의 작문은 부모만을 붙잡고 늘어선다면, 그만큼 보잘것없는 글도 없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글을 씀에 있어 유아기를 벗어난다는 건, 그래서 세상을 봄에 있어 유아기를 벗어난다는 건 다른 의미로 진정한 독립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가족이 견지하는 사고와 관념이 아닌, 내가 접하고 배우고 감각하는 세상을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 때 진짜 독립하는 게 아닐까. 경제적 독립만큼이나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교수님이 감상에만 젖은 글도 쓰지 말라고 했다. 이를테면 눈물 짜는 이야기, SNS 헛감성 글 같은 구름에 달 가는 펑퍼짐한 이야기들 말이다. 사실 언론사 작문에 그런 글 쓰는 애들은 없지만, 또 내가 여태 그런 글을 많이 휘갈기진 않았지만, 이렇게 또 생각을 하다 보면 "그때 교수님이 말한 '유아기를 벗어난다'는 게 이런 게 될 수도 있지 않나?"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