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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영 Feb 22. 2023

6. 나의 애인에게.

에필로그

네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는 것.

나는 영원히 나로서 행동하는 주체이고, 타인은 존엄성을 가진 대상이기 때문에 대상화 문제가 존재한다.

즉, 타인을 수단으로 대할 것인가, 목적으로 대할 것인가에 따라서 행동의 도덕성이 드러난다.

목적으로만 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모두를 목적으로 대할 수 없다면 박애주의는 허상일 것인가? 수단과 목적으로 대하는 방식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우선, 목적으로만 대한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도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같은 황금률을 예를 들자면, 박애주의는 존엄성을 가진 이웃에게 시간과 노력을 쓰라는 이념일 것이다. 모두에게 시간과 노력을 쓸 수 있다면 박애주의는 현실성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행동하는 주체가 그럴 수는 없다. 차선으로, 수단으로 대하되 목적으로 대할 수도 있다. 타인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그의 노동력에 격려와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그 예이다.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나를 위해 사용하고도 인격적 대우를 해주면 된다.

사랑은 어떨까?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나와 타인이 존재한다. 주체적 행동하는 나와 그 행동에 반응하는 타인이 존재한다. 타인은 존엄성이 있는 인간이고 나의 사랑하는 대상이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나를 위해 사용하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그를 위해 사용하고, 즉 희생하고도 그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서 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간과 노력을 갖는 것이다.

결국은 나는 타인을 소유할 수 없고 그렇기에 타인의 시간과 노력이 다하면,


나와 너는 분리된다. 서로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는 시간과 노력이 부재한다면, 나와 너는 다르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타인은 나의 모든 순간들을 소유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지나간 그리운 순간들을 붙잡는 이유이다. 모든 시간과 노력이라도 주고 싶었는데 -어쩌면 나의 존재까지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언제나 능동자인 나에 의해 실패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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