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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영 May 03. 2022

1. 내 첫사랑은 21살에 시작된다.

스물:아, 어른 되기 싫다고!

나는 촌시러운 년이다. 학창 시절, 또래집단 먹이사슬 계급도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 1등 매장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유, 참을 수 없는 촌스러움. 같은 반 아이들 아디다스며, 나이키며 짹짹거릴 때에도 1년 내내 같은 신발만 신었다면 설명이 될는지 모르겠다. 돈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가정사를 후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의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엄청 말도 안 되는 이유와 가격이 아니면 사게 내버려 두셨다.

그냥 패션이 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고, 아이구 촌년 이왕이면 고급지게 한 번 말해볼란다. 진짜 말 그대로 암 케임 프롬 칸츄리 사이드인(시골에서 온) 것은 아니다. 나는 서울 출생이다. 다만, 그런 유세 덩어리를 사지에 덕지덕지 바를 재주는 없었을 뿐이다. (당시에 나의 외모적 장점은 피부에 여드름이 안 났다는 것이 있다.)

솔직히 외모에 관심을 둬야 하는 필요성도 못 느꼈었다. 왜냐하면 나는 서울에 살면서도 홍대 근처를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가봤다. 이유는 역사수업시간에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당시에는 다른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에 팀플 조원들과 탐구보고서를 쓰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홍대가 인디 패션의 성지인 것을 알게 된 것도 추후의 일이다. 강남이나 성수에 눈썹 문신하러 미용목적으로 가게 된 것도 2020년, 22살이다.


그로부터 1년 전, 내 나이 21살. 코로나 전의 2019년 상반기,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매우 암흑에 가까운 시기다. 대학교 반수 실패해서, 한 학기 다니고 때려 치려던 대학교를 다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휴학 결정 당시에 학교 규정으로는 반학기 휴학이 되지 않았었다. 이 말은 내가 아무런 대책 없이 1년 휴학을 했다는 것이었다. 20살의 미련한 어린양은 반수 성공하면 냅다 대학교 뜰 생각밖에 안 했었던 것이다. 아이고 어리석은 중생이여. 어쩌다 나는 21살의 상반기가 (복학도 없이) 비었다. 강제 무의미 휴학.

그래도 세상은 나에게 의미 없이 놀기만 하는 시절을 주지는 않았다. 청춘이라는 시간에 더하여 고난과 고통은 셋-트 메뉴다. 저렇게 정신머리 없는 대책을 세워 놓고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희희낙락 농땡이 필 줄 알았다니 고등학교 갓 졸업한 20살의 나에게 “대략난감 상”을 주고 싶다. 정말 다행이게도 우리 집은 그런대로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 현명하신 부모님께서는 “저눔새끼 내가 낳아 길렀지, 쯧쯧” 마인드로 절치부심 하시어 나를 표면적으로 용서하셨다. 즉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로 이끌어 아주 자비를 베푸셨어요. 왜 갑자기 동화체냐면 나도 두 분께 K-장녀로서 참으로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하려면 3박 4일 캠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이만 말을 줄이겠다. 아무튼, 21년 1월부터 나는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한다.


저맘 때 동생이 나한테 자주 했던 말은 “언니, 돌았어? 미쳤어?”이다. 우리 자매가 현실 자매 케미가 낭낭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말이 좀 심하다 싶긴 하다. 아니다. 내가 더 심했다. 동생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여성이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일을 꺼내지 않지만, 내가 내 딴에 분위기가 노골노골 편안할 때면 지난 일을 꺼내서 귀빈 속을 뒤집어 놓는다. 괜히 21년 초반 얘기를 꺼내어 긁어 부스럼을 내고 내가 그땐 미안했다며 석고대죄한다. 그럴 때는 동생이 가재미 눈을 뜨고는 본인도 잘못한 점이 있다며 그건 다 지난 일이라며 위로를 하고 언니의 면을 세워 주는 것이, 우리만의 했던 거 또 하고, 했던 거 또 하는 것들 중에 하나이다. 그런 그녀가 당시 92kg의 나에게 다가와 단호히 말했다. “너 살 안 빼면 집에서 나가.”

나는 살을 존나 뺐다.(비속어 사용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살 빼는 방법도 몰랐는데 그냥 동생이랑 무작정 뺐다. 처음에는 안 먹어가며 뺐다가 나중엔 고기 먹고 뺐다. 24살인 지금, 적어도 보증금 마련할 돈은 있는데도 아직도 저 으름장 놓는 동생 얼굴이 꿈에 나온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5~6개월이 흘렀다. 나는 92kg에서 70kg초반으로 생애 처음으로 비만이 아니고 과체중이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성공했다. (참고로, 나는 지금까지 2번 다이어트에 성공했는데, 21살이 처음이고 유튜브 콘텐츠인 “절반만빼자”는 그다음이다.) 나는 21살에 생에 처음으로 백화점 여성복 코너에서 원피스를 사고 내 얼굴에 뭘 찍어 바르는 게 아깝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여성복을 사이즈를 고민 안 하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 몸뚱이에 들어갈까 고민하지 않는 내가 신기하다. 사실 사이즈의 근본적이거나 사회적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나의 정신적인 이유가 컸던 것 같다. 또래 집단이랑 멀어지면 애가 유행 좀 안 탈 수도 있는 거고, 꾸밀 필요성을 못 느끼면 꾸미지 않기로 할 수도 있는 거고 굳이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없으면 검은 바지만 매일 입을 수도 있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아 그러니까 제가 인기가 없었다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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