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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영 May 03. 2022

2. 너는 25살, 어른

2019년 여름, 나는 너를 만났다. 내가 처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해. 네가 한국으로 처음 왔던 해.


그 즈음의 나는 외부인과의 접촉을 단절한 채 집에만 있었다. 학교 복학하는 것도 심란했고 학교를 다시 가면 감량속도도 불투명해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멘탈리티가 좋지 못했던 것도 한 몫 했다. 적어도 그 때의 나는 남들을 만나고 다닐 만큼은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도 고민이 있었는데 갑자기 영어에 꽂여서는 십 수년간 배운 영어가 공중 분해되는 것이 아까웠다. 그런데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뭐 한국인이 한국말만 쓰는 환경에 처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보통 한국인이 입시영어교육비에 연간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하는 것도 일반적이므로 똔똔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영어학원을 가야한다는 결론이 나야하는데, 아쉽게도 그 때의 나는 돈도 생각머리도 없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펜팔을 했다. 인터넷으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채팅하고 언어도 배우고 그런 것이다. 나는 러시아 사람과 헝가리 출신 영국인 등과 소통을 하며 보통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K-pop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아이고 편견이다. 내가 펜팔은 시작한 이유는 비틀즈, 오아시스, 그리고 내 사랑 웨스트라이프에 대해 떠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올드 브릿 팝송의 시대는 지나고 케이팝 열풍 엑소와 그 당시 신진 그룹 BTS가 막 인기를 구가하던 때였다. 나는 막 90년대의 애비로드에서 왔는데 친구들은 2019년 광화문에서 케이팝 메들리를 부르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평행선이면 상관이 없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 주제를 얻지 못할지 언정 피차 서로 창피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고역은 우리 소수의 친구들이 나에게 각자 최애를 영업 했을 때에 시작한다. 나는 얼굴만 아는 아이돌이 많다. 한국에서 살면 이런 일이 흔하다. 미디어는 금주에 아이돌이 데뷔 했다며 보여주는데 나는 크게 관심을 갖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우리 외국에서 온 덕후 친구들은 그 아이돌의 데뷔 일화, 퍼포먼스, 탄생 설화까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일단 나는 그들의 정보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나는 그 정보의 격차에 지쳐 잔다고 하고 다음 대화를 기약한다. 후에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생각해본 적 있다. 결론은 나나 그 애들이나 똑같다. 원체 공통의 주제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다. 비틀즈의 헤이 주드가 얼마나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얘기 하고 싶은 나나, 특정 아이돌의 비범한 군무를 꼭 보라고 링크를 남겨주는 걔네나 참 일관되게 자기 할 말만 한다. 안타까울 노릇이다.

그렇게 내가 펜팔에 지쳐갈 때 쯤 스크롤을 내리다 잘생긴 남자의 사진을 보았다. 당시에 우리가 쓰던 앱은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오프라는 것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공대 석사생이랑 재밌는 대화도 해봤고 누군가가 약속된 오프장소에 나오지 않는 상황도 겪어보았다. 그런데 잘생긴 남자. 그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가 궁금해졌다. 나는 그에게 자기소개를 남겼고 그는 답장을 했다. 우리는 책 이야기로 친해졌던 것 같다. 벌써 4년 전 일이니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동시 접속인 사람들의 리스트를 훑기 시작했다. 그 중에 익숙한 한국의 지역명과 함께, 햇살처럼 웃는 사진이 있었다. 전에 캣콜링을 당했던 적이 있어서 남자의 사진에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던지라 사실 조금 망설였었다. 그럼에도, 메시지를 남겼던 것은 그 사진 속 모습이 티 없이 맑았기 때문이다. 곧, 그에게 답장이 왔고,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는 미국 서부 출신이라고 했으며 그 곳의 엄청 더웠던 기후에 대해서 얘기 했다. 나는 그의 밝은 성격과 햇살 같은 웃음이 그가 살던 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한다고 했고, 나는 휴학생이고, 유튜버이기도 하다고 소개 했다. 사실 면대면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이 대화가 효율적이고 유익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서로의 성격, 생활 패턴 등등에 대해 무지 하다는 사실이 어떤 상황에서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그래서,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은 뒤, 서로 시간이 날 때에 “hi”, “how are you?”과 같은 간단한 안부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의 짧은 대화 같은 것을 했다.


당시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사진처럼 밝은 사람이었고 나의 짧은 영어가 아쉬울 만큼 좋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으른이다. 으른.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것.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맞장구 쳐줄 줄 안다는 것. 소통을 기반으로한 펜팔 커뮤니티앱에서 이야기가 잘 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니 얼마나 모순인가. 웃기다. 그런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피해가며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내가 길게 우리의 만난 이야기를 읊는다고 해서 미화하거나 극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조잘거리면서 내가 얼마나 뻘짓을 했는지 시시콜콜하게 웃으며 이야기 하고 싶다. 글은 영원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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