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거리며 글쓰기(에세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등장하는 찰스 호수는 단단히 얼어있다. 그 덕에 두 사람은 헤엄치지 않아도 물 위를 유영한다. 그리고 수면에 나란히 누워 사랑을 속삭인다.
"I could die right now... I’m just so happy.”
그들은 안다. 몇 달만 지나도 비정한 봄볕이 둘 사이의 호수를 갈라놓을 테고 두 사람은 곧바로 심연으로 침수하리라는 것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금같이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나누는 순간은 없어질 거라는 걸. 죽음의 공포를 제쳐 둘 만큼 그들은 이 찬연한 밤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다.
사랑은 자주 눈에 비유된다. 차가운 얼음결정이 어떻게 그렇게 사랑과 닮아있는지. 어째서 그 추운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지. 생각해 보면 눈만치 사랑을 간명하게 나타내는 자연물이 없다. 반짝거리며 내리기에 손바닥을 펼쳐 붙들려다가 푸석하고 예리한 모양에 따갑게 찔리는 것도, 소금 알갱이 만한 작은 것들이 기특하게 소복이 쌓여 어느새 포근해지는 일까지. 사그라드는 모습도 매한가지다. 그토록 우리를 기쁘게 하더니 필연히 녹아버리고 만다. 도탑게 쌓였던 눈들은 녹다가 얼기를 반복해 유리처럼 딱딱해져서 볼썽사납게 깨어지기도 하고 자리를 잘못 잡은 어떤 눈은 흙먼지와 뒹구르며 질척이기도 한다. 어느 얄미운 눈은 있던 줄도 모르게 도로 땅으로 스민다. 대체로 결국 사라져 버린다.
눈마저 떠나간 겨울은 참혹히 얼어붙는다. 달뜬 마음으로 우산 없이 맞은 눈에 이제사 감기로 앓는다. 좀처럼 멎지 않는 기침에 애써 웅크려봐도 옆구리며 등허리가 식어 이불 위를 뒤척인다. 불가피한 이별에 드러누운 나는 꿈을 꾼다. 흔해 자빠진 유치한 소원을 담아. 설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북극으로 가는 꿈을.
낙원 속 우리는 분홍색 뺨을 부비며 웃고 있다. 소일거리로 커다란 빙하 속 고요히 잠든 썩지 않는 추억들을 돌보기도 한다. 매일 내리는 눈으로는 손 시린 줄 모르고 꼭꼭 눌러 담아 서로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먹인다. 그렇게 가본 적 없는, 아마 가볼 일 없을 북극을 꿈꾼다. 눈과 얼음이 영원히 녹지 않는 북극을. 행복에 겨워 죽어도 여한이 없는 밤들을.
P.S.
지금 우리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켜 신화 속 주인공이 될 기회도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필요도 없는 세상에 태어나있다. 게다가 나는 감히 그럴 능력조차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게 내가 이 우주에 티끌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이란 걸 깨닫고 나서부터 로맨스를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사랑이 개인의 유토피아를 꾸리는 최선책이라 무분별하게 믿어버린 것이다. 연애가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큼은 나를 의미 있는, 유일한 존재로 만들어준다고. 그런 희박한 순간을 가능케 한다고. 그치. 내가 간과하였다. 착실하게 작동하는 시계침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추앙하는 이들은 전부 패배자로 남는다. 나는 내 소질들을 수단 삼아 나와 닮은 미련한 바보끼리 서로 기대고 지지하는 일을 희망한다.
*본 에세이는 북크루(@bookcrew.insta)에서 주최한 <책장 위 고양이, 백일장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