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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wovewove Sep 01. 2020

오래된 일기 -3

2018년 4월 10일 (에세이)

우리 집 안방에는 나보다도 오래된 아주 기묘한 불상 하나가 있다. 텔레비전 옆에 세워둔 그 작은 것은 여느 집에나 다 있는 평범한 쇳덩이처럼 보이지만 한때는 날마다 동전을 한 움큼씩 뱉어내는 신통한 영물이었다. 덕분에 나와 형제들은 어릴 적 군것질이 하고 싶거나 만화책이라도 빌려 보고 싶을 때면 빈주머니를 뒤적거릴 필요 없이 그 불상을 뒤집어 동전을 꺼내기만 하면 되었다. 가산을 불릴 정도로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때 우리는 몇백 원 몇십 원도 요긴한 애들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나이만큼 욕심도 커졌다. 우리의 필요는 더 이상 동전 몇 개로는 메우지 못할 거대한 구멍으로 번졌다. 첫째와 둘째는 머리가 굵어져 아쉬울 게 없었지만 천더기 막내는 얘기가 달랐다. 막내는 더 많은 돈이 떨어질까 싶어 악착같이 불상을 마구 흔들어도 보고 바닥에 던져도 보았지만 도무지 소용없는 짓이었다. 별안간 그것의 그 신묘한 힘조차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내 막내도 더는 그 불상을 살피지 않았다.

나이 든 어미는 일전에 우리가 닳도록 만진 탓인지 도금이 벗겨져 쇠 냄새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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