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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wovewove Aug 25. 2020

듣기 싫은 소리들.

2020년 8월 25일 (에세이)

요새 노래방에 너무 가고 싶다. 내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다니 신기한 일이다. 난 내 목소리를 잘 싫어했다. 어릴 적부터 누나들이 내 목소리가 듣기 싫다고 자주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나들을 좋아하는 것보다 누나들이 날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단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얘기는 칭찬이 멋쩍은 가족 간의 괜한 조롱이 아니라 꽤나 객관적인 사실일 거라고 짐작한다.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는데 일조한 상처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일 때문에 누나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제는 엄마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엄마는 반찬들을 작은 그릇에 덜어 먹는 사람도 아니고 먹던 젓가락을 식탁 아무 곳에나 올려놓기도 한다. 친구와 통화를 하며 소리를 내면서 음식을 먹는다. 나는 그게 참 보기 싫다. 그렇지만 한 없이 사랑하는 엄마이기에 또 엄마랑 나는 다른 사람이기에 또 당신은 나랑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기분 좋게 밥을 먹는 엄마에게 공연히 투정을 부린다. 밥 먹을 때 소리 내서 먹지 좀 말라고. 반찬 뚜껑에 먹던 수저 좀 올려놓지 말라고. 엄마는 내 잔소리에 이골이 났는지 반응도 안 하지만 나는 매번 열심히 짚고 넘어간다.

엄마 눈에는 내가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일 것이다. 밥 먹을 땐 뭐도 안 건드린다는데 금쪽같이 보살핀 아들 새끼가 자꾸 지랄을 해대니 화가 날 것이다. 적잖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보다 당신의 친구나 아무개들이랑 식사하는 일이 잦다. 나는 모르는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감히 우리 엄마한테 소리 내서 먹지 말라던지 깔끔히 먹으라던지 하는 얘기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못하겠다. 몇 달 뒤면 곧 셋이나 되는 누나들의 딸과 아들들이 자라서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불쾌해하는 꼴을 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변변찮은 아들놈은 엄마에게 미리 상처를 준다. 그 상처가 엄마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지 확인할 바는 없다.

어쭙잖은 소견이지만 살다 보면 필요한 상처도 있다. 내 목소리는 소쩍새처럼 예쁘게 높지도 자정 시간대 라디오 진행자처럼 편안하게 낮지도 않다. 볼륨을 조절하는데도 서툴다. 듣기 좋은 음성이 무언지 연구도 해보고 녹음기로 연습도 해봤는데 별 도움은 안됐다. 이제는 남잔지 여잔지 이도 저도 아닌 내 생김새나 성격이랑 제법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나 혼자 타협했다. 뭐 어떨 때는 이런 목소리가 필요한 상황도 더러 있겠지. 태생이 그런 걸 어쩌라고. 그래도 가끔 누나들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면 다시 한번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나에게 낯선, 적응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한테 흠이 될까봐. 그러면 나를 사랑하는 누구는 속이 상할 거다.

나는 내일도 모레도 아마 엄마에게 작은 상처를 줄 것이다. 엄마를 이해해주지 않는 아무개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잔소리를 정당하게 하기 위한 변명이겠지만 순도 높은 진심이기도 하다. 내 애정 어린 의중과는 다르게 씨알도 안 먹히는 짓일 수도 있지. 여러 가지 걱정을 한 움큼씩 쥐고 다니는 나랑 엄마는 아주 다른 사람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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