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0일 (에세이)
안 행복해. 고작 한두 계절 같이 보낸 게 다인데 마음이 거기에 멈춰 서서 한 발짝도 떼지를 않았다. 몸과 시간은 계속 움직이는데 맘은 왜 그러는 건지. 나도 내가 이해가 안 가는데 넌들 나를 이해해주겠어. 과자 부스러기를 좇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뒤돌아 추적해봤지만 너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뒷모습도 잡히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너의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 정확히 그려지는데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니. 통증 수준으로 답답했다. 그냥 죽었다고 치자. 어쩌면 걔는 정말 죽어버린 건지 몰라.
비참하기 싫어서 불행으로 멋을 부렸다. 어차피 불행할 거 완벽하게 모조리 망치면서 끝내주게 근사해져야지. 대개 결말이 비극인 아트하우스 영화 따위를 골라 그럴듯한 장면들을 흉내 내곤 하였다. 막 미셸 윌리엄스나 이자벨 위페르쯤이 연기하는 처연한 주인공들 말야.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는 멍한 표정에 입술만 파르르 흔들리는 그런 얼굴. 내가 지어낸 배역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때는 내가 진짜 폼으로 불행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불쑥 어찌할 방도 없이 네가 떠올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볼 때. 거울 앞에서 단장을 할 때. 스마트폰을 두들길 때. 집 근처를 걸을 때.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버스가 너랑 같이 있던 어디 어디를 지나칠 때.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지겹게 마주하는 상황들. 내 생활에 가루로 흩뿌려져 모아서 버리기도 힘든 너의 단서들.
매번 롤러코스터를 탄 듯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눈물이 바닥을 그림자색으로 물들였다. 고개 밑으로 빼꼼히 쳐다보며 지금 우느냐고 물어봐주는 너를 상상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네가 없어서. 대답 없는 물음을 길게 늘어놓으니 미련이 또아리를 틀고 뱀으로 변해 하악질을 했다. 무서워 죽겠는데 행여 더 멀어질까봐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신발이 바닥에 붙어 꼼짝 안 했다. 다리의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 하고 짧게 신음이 나왔다. 나는 실로 불행하구나. 그것은 절대로 하나도 멋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