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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윤 Feb 20. 2023

영어 공부를 망치는 은밀한 유혹

우린 이미 글렀다, 그러나 아이들만은 망치지 말자

골프는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할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샷을 공중에 띄워야 한다. 특히 드라이버로 공을 티 위에 올려놓고 치는 티샷은 스윙궤도의 최저점을 지나 채의 헤드가 올라갈 때 공이 맞는 어퍼 블로우(upper blow)로 쳐야 공을 멀리 보낼 수 있다.

 티 샷(tee Shot)은 어퍼블로우(upper blow)로 쳐야 (이미지: florida today)

그런데 upper blow로 치면 오히려 공이 뜨지 않고 엉망이 되는 채가 있다. 바로 우리가 연습장에서 가장 많이 연습하는 7번 아이언 같은 미들 또는 숏 아이언이다. 미들 아이언부터는 칠 때에 다운 블로우(down blow)로 쳐야 한다. 백스윙에서 헤드(골프채에서 공을 때리는 무거운 머리 부분)를 떨어뜨려 스윙을 할 때에는 퍼 올리지 말고 공부터 맞히고 그다음에 채가 스윙궤도의 최저점을 지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공을 띄우려면 퍼 올리지 말고 내리 쳐야 한다. 아이언은 그렇게 치라고 설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필드에 나가 보면 아마추어 골퍼들 중에 다운 블로우로 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운 블로우로 치면 공이 있던 자리 앞으로 디봇(클럽 헤드가 잔디를 퍼 올린 자국)이 생기기 마련인데, 대부분은 공 뒤로 땅을 팬 자국을 남긴다. 뒤땅을 치는 것이다. 영어로 fat shot. 공 뒤의 땅을 두껍게 때린다는 것이다.

뒤땅을 잘 치면 이렇게 스시를 만들 수 있다. (이미지: 헤럴드 경제)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날까? 바로 우리의 심리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을 띄우려면 채가 올라가면서 공을 맞혀야 뜨지 헤드가 내려갈 때 맞으면 어떻게 공이 뜨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다분히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언이 골프공을 멀리 보내는 원리는 그렇지 않다. 클럽 페이스가 공을 먼저 맞히면 페이스의 각도(로프트라고 하고 7번 아이언 기준 약 34~36도)를 타고 공은 위로 날아가게 되어 있다.


원리를 머리로 알아도 우리 몸은 원리에 입각해 움직이지 않는다. 원리를 아는 것과 그것을 진짜로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원초적인 우리의 감각은 공을 띄우기 위해 퍼 올리는 샷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골프장 잔디는 일명 조선잔디(겨울에는 누렇게 변하는 잔디)라서 잎이 도톰하다. 보통은 잔디를 바싹 깍지 않기 때문에 조선 잔디의 경우 공이 위에 떠 있다. 그래서 공을 퍼 올려쳐도 - 공 뒤 땅을 치더라도 - 어떻게든 클럽에 공이 맞아 날아간다. 매우 관용적이다.


한편, 미국에서 열리는 PGA 투어의 골프 코스나 우리나라의 고급 대회 코스들은 대부분이 속칭 양잔디다. (양잔디는 관리에 돈이 많이 든다.) 서울 시청 앞 잔디가 바로 버뮤다그래스, 즉 양잔디다. 이런 골프장에서는 다운 블로우로 스윙을 하지 않으면 절대 공을 멀리 보낼 수 없다. 실력이 다 들통나는 환경이다. 제대로 다운 블로우로 맞히기만 한다면 우직끈 소리를 내며 돈가스 모양의 뗏장을 퍼 내는 멋짓 경험을 하게 된다.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공이 클럽 페이스에 촥- 붙는 느낌이라고 할까?        

돈가스인가? (출처: 불분명)

영어 공부 얘기하는데 웬 골프채로 돈가스 날리는 소리?


우리는 영어 습득의 원리를 아는가?


언어는 생각(추론, 추측, 감상, 평가, 공감 등)하는 과정이 축적되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깨달아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다. 


영어를 한다는 건 암기한 걸 기억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유혹에 항상 넘어가는가?

'영어는 역시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해. 보캐뷰러리만이 살 길이야. 그러니까 단어를 외우자'

보카 33000 따위의 책이 팔리는 나라다.  

'문법, 즉 어순과 규칙을 공부해서 거기에 단어를 꽂아 넣으면 문장을 완성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문법이랑 단어를 모르는데 어떻게 독해가 돼?'


물론 극히 상식적이고 그럴싸한 생각이다. 비법이 있고,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외우고 패턴을 연습하면 될 일을 어느 세월에 독서를 하고 모국어 습득의 원리에 따라 영어를 익혀? 시간이 어딨다고.


뒤땅을 쳐도 보기 플레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90타 이하로 줄이기는 어렵다. 양잔디 가면 실력 다 들통난다.

시험 영어 공부해서 고득점은 가능하다. 진학도 하고 졸업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영어 실력을 기를 수는 없다. 토익 950점짜리가 회사 면접에서 영어로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하는 건 뒤땅 쳐도 어느 정도 점수가 나오는 구장에서만 놀았다는 것이다. 학교 같은 데서 말이다.


우리는 IBM 됐다고 치자. 이미(I) 버린(B) 머리(M).


그렇다고 여러분 자녀조차 그렇게 만들지는 말자. 아이들에게는 다운 블로우를 연습시키자. 원리에 입각해서.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당신 자녀는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 영어 1타 강사를 찾아다니게 된다. 수능 영어 일타 강사가 1시간 강의를 하는 동안 영어를 한 마디도 안 하고 강의를 하면서 연봉 100억을 버는 나라다. 영어 못하는 사기꾼이 바보들의 돈을 털어가는 악순환에 돈을 보태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우리의 돈은 소중하니까.


영어에서의 다운 블로우는 Reading이다. 보다 자세한 얘기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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