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장미와 우리의 민주 열사들
제24회 2.28민주운동 학생문학상 대상작(행정안전부장관상)
어린왕자의 장미와 우리의 민주 열사들
용인외대부고 3학년 김리나
‘어린왕자’를 아시나요? 아니, 자그마한 행성에서 장미를 키우고 있는 노란 머리의 어린왕자 말고요. 우리나라의 작가 조세희가 쓴 「어린왕자」라는 소설 말입니다. 조세희의 「어린왕자」는 1983년 소설집 『시간여행』에 실렸습니다. 물론 소설의 제목과 소재는 생택쥐페리의 유명한 동명 소설에서 착안되었습니다. 이 짧은 소설은 원고지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한 작가를 조명합니다. 뭔지 모를 ‘이상 기후' 속에서 글이 막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 작가에게 어느 날 어린왕자가 찾아옵니다. 어린왕자는 비에 젖은 생택쥐페리의 소설을 보고 작가가 떠올린 환상입니다. 어린왕자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소혹성 388호와 ‘거짓말을 하는 왕이 사는’ 소혹성 389호를 소개합니다. 소혹성 388호에는 재난이 닥쳤습니다.
“지금쯤 그가 쓸 수 있는 말은 네 개나 세 개로 줄어들었는지 몰라.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그 정도의 말로는 ‘우리는 정말 행복합니다'라는 글밖에 쓸 수 없을 거야.”
할 수 있는 말이 사라지고 있는 재난. 곧 표현의 자유가 박탈된 대한민국이 그 시절 겪은 재난입니다.
「어린왕자」를 읽을 때마다 글의 무게라는 것을 느낍니다. 철자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는 그 묵직한 느낌 말입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유명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을 때는 이해하기 힘든 문구와 맥락 때문에 몸을 베베 꼬며 인터넷 해석을 찾기에 급급했지만, 이 「어린왕자」는 똑같이 애매모호하면서도 절 쉽게 매료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왕자」는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닥쳤던 ‘이상 기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아직 상륙하지 않았던 ‘냉해’와도 같은 그 시절은 경제 대국으로 가는 볕 아래 고인 끔찍한 그림자였습니다. 조세희 작가는 어린왕자의 아이 같은 순수함 뒤에 숨어, ‘우리는 정말 행복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묘사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비춥니다.
소설 「어린왕자」뿐 아니라 그 어두운 그늘을 들쳐 업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그날의 사람들. 조세희의 「어린왕자」는 철자 하나하나에 그 사람들의 눈물과 땀을 담아 그렇게 묵직했던 것일까요. 아직 살아 숨 쉬는 그날의 이야기를, 그 시대를 기억하는 증언을 나는 나의 눈과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1987년 당시 중학교 3학년. 아버지의 형은, 그러니까 나의 큰아버지는 연세대학교 학생이었습니다. 큰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몸에 남아있는 최루탄 가루가 날려 아버지는 매일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높은 직급의 군인이셨지만 하나회에 가입하지 않은 나의 할아버지는 그런 큰아버지를 야단쳤습니다. 위험하니까요. 그래도 큰아버지는 한 손에는 쇠파이프를, 한 손에는 주먹밥을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병원 앞에서 보초를 서기도 하셨고요, 연세대 학생이라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는 명절날 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생생한 그날의 열기가 내 코끝에 닿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민주 항쟁은 좀처럼 제 발을 동여매고 절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나도 민주화 운동에 관해서는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는요. 미국에서 열리는 역사 대회에 나갔었습니다. 주제는 자유였기에 저는 한국의 역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고민 끝에 6월 항쟁을 꼽았습니다. 그 뒤로 정말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1987년 1월부터 6월까지 매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등 과거 기사를 뒤져가며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열심히 리포트를 썼습니다. 박종철 군이 경찰 고문 탓에 사망했을 때, 그와 관련한 기자회견이 정확히 언제 열렸는지 찾느라 반나절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절실했던 그날의 외침처럼 나도 절실해지고 싶었습니다.
대회는 내가 먼저 10분가량 발표를 하면, 심사위원들이 3~4개의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큰 강당에서 마이크가 없었기 때문에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이었습니다.
“박종철 군의 죽음이 왜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킨 겁니까? 한 학생의 죽음이 민주화 운동에 왜 이렇게 중요한 도화선이 된 겁니까?”
머리가 띵 했습니다. 내게는 당연하게 다가왔던 인과관계를 그들이 질문합니다. 안 그래도 긴장했는데. 수십 명 되는 관중 앞에서 목소리를 덜덜 떨며 더듬더듬 나오지 않는 영어를 쥐어짭니다. “어… 그야, 국가가 한 국민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몇천만 명 중 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들, 동생, 친구, 선배를 죽인 겁니다. 우리 언론은 그전까지 정부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신문 한 면에 그 젊은이의 죽음이 보도된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의 2.28 민주화 운동부터 현재까지, 쌓이고 쌓인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이 되었을진 의문입니다. 또 다른 질문이 날아옵니다.
“이 한국 역사가 미국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은 뭐죠?”
결국 이 역사가 미국에 중요한 이유를 묻는 것이군요. 역사의 본질을 건드려야 하는 질문 같습니다. 그러게요. 저기 저 아시아에 손톱만큼 작은 나라의 역사적 순간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주주의는 눈을 멀뚱히 뜨고 있으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이 자유를 찾기 위해 독립 전쟁을 했듯이, 전 세계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나왔듯이, 수십 년간 한국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습니다. 수백 년간 왕정이 이어진 이 지구에서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손으로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여기저기 터지는 최루탄 가스와 몽둥이를 맞아가며 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 세계에 주는 교훈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민주화 운동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원작에는 바오밥나무가 등장합니다. 조세희 작가도 그것을 똑같이 차용했고요. 바오밥나무는 그 뿌리가 완전히 자라기 전에 얼른 삽으로 뽑아버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작디작은 어린 왕자의 소혹성은 굵은 뿌리에 갇혀 폭발해 버리거든요. 앗,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어린 왕자의 행성에는 아주 소중한 장미꽃도 자라거든요. 어린 왕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예쁜 장미꽃 말입니다. 이 장미꽃과 바오밥나무의 싹은 비슷하게 생겨서 뽑을 때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지구라는 소혹성도 바오밥나무로 들끓습니다. 빨리 뿌리 뽑지 않으면 이 행성은 폭발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1960년부터 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독재라는 바오밥나무가 자랐습니다. 그 뿌리는 뽑기 힘들 만큼 땅속에 깊이 박혀있었죠. 정부가 곳곳에서 피어나는 장미의 싹을 바오밥나무라고 규정했을 때, 389호 소혹성의 그 왕처럼 거짓말을 외쳤을 때, 민주 열사들의 뿌리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우리의 민주 열사들은 진짜 바오밥나무를 뽑아낸 다음 민주주의의 장미를 대신 심었습니다.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자라난 그 꽃은 우리의 민주 정신에 깊숙이 뿌리내립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탄탄하게 다져놓은 이 토지 위에 4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서 있습니다. 나는 이 토지를 일궈놓은 그날의 발걸음과 눈물을 영원히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