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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na Dec 10. 2019

이 죽일 놈의 인종차별

참다 보면 울화통 터지고 못 참으면 일이 커져요

자신의 나라를 떠나 해외에 살게 된다면

피할 수 없이 겪게 되는 불쾌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곧 인종차별이다.


특히 동양인 여자로서 해외에 나가 산다는 것은, 겪고 싶지 않고 겪지 않아도 될 기분 나쁜 경험들을 마주하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백인 우월주의 사상에 젖은 백인들한테 차별당할 수 있음은 물론이오, 동양인을 무시하는 흑인들도 많고 또 아랍권이나 중동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에 기본적으로 여자를 밑으로 보고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항상 해외에 살면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고, 위험한 큰 일을 겪지 않으면 그냥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소소한 인종차별 해프닝쯤은 웃어넘길 줄 아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와 남편이 현재 살고 있고 정착하려고 하는 캐나다의 N주는 백인들의 인구 고령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이다. 어느 나라나 대부분 그렇듯이, 캐나다 젊은이들은 기회가 많고 살기 좋은 대도시에 살기를 희망해 대도시로 많이들 빠져나가는 추세이고, 그에 따라 조용한 휴양 지역인 N주는 갈수록 더 인구가 줄어들며 남아있는 사람들도 고령화되게 된 것이다. 한 지역의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그 인구마저 고령화가 되어간다면 그 지역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죽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국가는 그 지역을 살리기 위해 젊고 실력있고 건강한 해외 인재(?)들은 많이 끌어들이고 그들의 이민을 받아들여 더 젊고 건강한 사회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캐나다 이민정책의 큰 흐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N주를 비롯한 캐나다의 많은 소외된 외곽 지역에 이민의 문턱이 낮아진 이유이다. 특히 그 지역에서 노동력이 현저히 부족한 산업과 직군에 더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를 원하기에, 캐나다로의 이민을 원하는 타국의 젊은 청년들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캐나다에서 요구하는 자격과 실력과 요건이 맞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국가나 연방정부의 정책이 그러한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서,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도 그 정책에 다 동의하고 찬성하며 이민자들을 적극 환영하는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이 N주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조용하고 한적한 백인 중심의 고령화된 지역이었다. 우리보다 앞의 시대에 살았으며 지금의 젊은이들보다 상대적으로 타인종과 타문화를 직접 겪을 기회가 적었던 나이 많은 백인 노인들.... 그들이 과연 타인종 타문화의 급격한 유입과 갑작스레 늘어난 이민에 대해 온전히 호의적이기만 할까?


뭐 솔직히 그들이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해도 좋다. 그것이 그들이 속으로만 갖고 있는 이념이나 가치관일 뿐이라면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행동이나 언행으로 밖으로 드러나, 이민을 온 이민자들과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날 때이다. 이민자들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남의 나라에 살러 들어온 처지이기에, 원래 있던 주민들과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트러블 없이 살아가고자 하지만,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모욕과 차별이 주어진다면 마냥 참고 있긴 어려운 게 또 현실이기도 하다.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해외의 어느 곳에도, 이민생활의 애환은 녹아있다








내가 미국과 캐나다에 살면서 겪어본 인종차별에는 크게 두 종류의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는, 못 배워먹은 사람들의 대놓고 티 내는 인종차별

두 번째로는, 조금 배워먹은 사람들의 은근히 드러내는 인종차별이 그것이다.



첫 번째 유형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본들의 인종차별적인 언행과 행동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으며, 제대로 못 배워먹은 인간들 이기에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건지도 모르고 산다. 이들은 타인종 사람들 중에서도 혼자 있거나 힘이 약한 여자들을 주로 타깃으로 하며 그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주는 것을 즐긴다. 이들은 내가 혼자 거리를 걸을 때 혹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주로 마주칠 수 있는 인간들이다. 

이들의 유형은 대략, 혈기왕성하며 불량끼가 도는 청소년들, 나이 많은 노인들, 젊은 남자들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대로변 옆 보행자길을 혼자 걷고 있는데 옆에 지나가는 차가 속력을 줄이며 창문을 내리더니 젊은 백인 남자가 얼굴을 드러내며 "유후~ 하이~ 헤이걸" 하며 희롱한다. 무슨 밤늦은 시간에 걷는 것도 아니고 환한 대낮에 걸어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길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지 뭘 하는지 여하튼 그들만의 친목모임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의 옆을 지나가는데 지들끼리 나를 보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낄낄거리고 모욕한다. 이번에는 버스를 탔는데 한 백인 할아버지가 대놓고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며 자기 혼자 뭔가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난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왜 그런 눈빛을 받아야 하나 억울하고 열 받아 나를 그만 쳐다보라는 경고성 눈빛을 몇 번 보내며 나도 그 눈빛을 맞받아치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내리는 순간까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관찰하며 불쾌한 눈빛을 보낸다. 

이 예시들 모두 첫 번째 경우의 케이스에 해당되며, 아무리 기분 나쁘고 화가 나도 못 배워 쳐먹은 인간들과 내가 뭘 하랴 싶어 대부분 그냥 꾹 참고 넘어가게 되는 일들이다. 친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남편을 만나 "있잖아 나 오늘 무슨 일 겪었는지 알아?" 하고 울분을 토해내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일들. 이런 상황들에서 맞대응하는 것은 웬만하면 좋지 않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를 가슴에 새기며 꾹꾹 참고 그 순간을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 더러운 인간들과 얽혀봤자 나만 피해보고 나만 피곤해지고 나만 그 똥물로 같이 엮여 들어가게 되는 셈이니까


좀 더 생생한 나의 최근 경험담을 들려주고자, 내가 얼마 전 버스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해보겠다. 

어느날 일이 끝나 밤에 퇴근을 하고 버스를 타는데, 살짝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후드를 뒤집어쓴 젊은 백인 남성이 버스를 타면서 나한테 Hi~를 했다. 근데 이건 삐빅! 내 머릿속에서 경고음을 보낼 만큼 뭔가 기분 나쁜 Hi 였다. 친절한 서양애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기분 좋은 인사가 아닌 뭔가 불쾌한 눈빛의 찝찝한 Hi. 대답하거나 상대할 필요가 없어 무시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 남자가 굳이 내 반대편 옆 좌석에 앉는 것이다. 정말 신경 쓰기도 싫고 상대하기도 싫어 내 두꺼운 코트에 달린 커다란 모자를 뒤집어쓰며 시야를 차단하고 핸드폰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내 옆에서 손을 휘적휘적 거리며 나의 시선을 끌고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상대하기 싫어, 내 코트 모자에 가려 안 보이는 척을 하며 무시했더니 뒷자리 사람한테 현재 시간을 묻고는 조용해졌다, '아 제발 조용히 좀 가라!'라고 속으로 외치며 가고 있는데 드디어 그 남자가 내릴 때가 되었는지 버스 벨을 누르고 하차할 것처럼 준비하더니 갑자기 내 앞에 와서 딱 서는 것이었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쏘며 속으로 '뭐야 이놈' 하고 쳐다봤더니, 그놈..... 내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자신의 두 손을 합장하고 입으로는 "니하오~"를 뱉으며 허리를 숙이더니, 열린 버스 문으로 쏜살같이 내리는 것이었다. "아오 저 병X 같은 게....." 욕이 저절로 나왔다. 니하오를 하며 나를 쳐다보던 그 눈에 가득 담겨있던 그 조롱..... 그걸 그렇게 한번 꼭 하고 내려야 속이 시원했냐 이 재활용도 안 되는 병X같은 놈아. 저 깊은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끝없이 차올랐지만, 이런 일을 당해도 그냥 저 덜떨어진 놈을 다시 같은 버스에서 안 만나기를 바랄 뿐 딱히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두 번째 유형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생활할 때 만날 수 있는 부류들이다. 문제는 이 경우에는 이제 그 인종차별주의 자들이 조금 배워먹은 인간들이라, 그들이 하는 인종차별적 언어나 행동이 참 애매하고 모호해 바로 알아차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부류의 인간들은 인종차별을 대놓고 하거나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본인의 이미지와 커리어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평소에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잘 숨기고 지낸다. 그러나 본성에는 인종차별을 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서 본인보다 약한 상대를 만나거나, 본인이 막 대해도 크게 상관없는 상대를 만나면 그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상대방을 조롱하고 모욕주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만약 학교나 직장에 속해 있는데 같은 동료나 친구들한테 이런 인종차별을 당한다면 그래도 신고를 하거나 보호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학교라면 다른 친구들이나 교수, 선생님들에게 알리거나, 학교의 국제학생처 같은 곳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의 경우에도 다른 인종들이 같이 섞여서 일하는 Multi-cultural 문화의 International Company 같은 경우에는 직원 간의 인종차별 문제에 매우 엄격하게 대응하고 그것을 금지하고 있어, 윗 상사나 해당 부서에 그런 이슈를 리포트하면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이나 캐나다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른 동료와 인종차별 이슈를 겪으면 얼마든지 위에 상사나 매니지먼트에 얘기해 볼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다. 많은 외국의 선진 기업들은 대부분 직원 간의 평등한 관계를 강조하고 인종 차별과 배척의 요소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심하면 회사에서 잘리기까지 하는 것이 바로 이 인종차별과 관련된 이슈들이다. 실제로 현재 D호텔에서 일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들은 예전에 회사에서 잘린 직원의 케이스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일이었다. 예전에 한 백인 여자 직원이 프런트에 뽑혔는데 그녀는 타인종 직원들하고는 아예 말도 섞지 않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고, 같이 일하던 일본인 여직원을 철저히 무시하고 상대를 하지 않는등의 만행을 벌여 일한지 두 달도 안돼서 잘렸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직원으로 일하는데 손님들한테 인종차별을 겪을 때다. 이게 참 웃긴게 만약 손님이 직원인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서 컴플레인을 걸면 나는 잘릴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미국 H호텔에서 일할때, 그때도 같이 일하던 동료한테 예전에 일하던 직원이 잘린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직원이 손님한테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컴플레인이 걸려서 (그 직원은 실제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호텔을 그만두고 나가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일하면서 손님이 직원인 나한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나를 모욕하면 나는 어디다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하소연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보호받기가 힘든 게 아직까진 현실이다. 


물론 정말 좋은 손님들도 있다. 타인종과 타문화에 대해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전적으로 다르다.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케이스들은, 한 번은 일하는데 한 젊은 백인 남성손님이 다가와 "있잖아 너 명찰에 있는 이름을 보니까 한국 사람 같은데 맞니...?" 하며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응 맞아 나 한국사람이야" 하니까, 그 손님은 얼굴에 함박 미소를 띠우며 굉장히 반가워하더니 자기가 한국 가수인 윤하의 Huge Fan이라고 했다. 나도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서 그에게 호응하며 그녀의 노래 중 뭘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니, 그는 신이 잔뜩 나서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윤하의 노래 제목들을 하나하나 열거해주곤 했다. 윤하의 노래라고는 "비밀번호 486"과 에픽하이랑 함께한 "우산" 정도밖에 안 떠오르던 옛날 사람인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며 "맞아 그녀는 참 멋지지? 하하"하고 적당히 맞장구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했지만 어쨌든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과의 대화는 유쾌하고 즐거웠다.

서양인의 입에서 나온 그녀의 이름 "윤하"가 참 반가웠었다 (확실히 윤아 아니었음 주의)


또 다른 기억나는 케이스는, 우리 아버지 정도의 나이 되시는 아주 점잖고 젠틀해 보이는 그러나 눈에는 호기심과 장난기가 반짝거리시는 중년의 백인 아저씨를 만난 일이었다. 밝고 유쾌하시고 하시는 말에도 직원을 존중하는 느낌이 항상 묻어있으셔서, 체크인 시 기분이 좋아지고 더 잘해드리고 싶은 손님 유형 중 대표격인 경우셨다. 그 분이 내 명찰을 보시더니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서 읽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이런 손님의 질문 같은 인종차별적인 질문이 아닐 경우가 높기에 나도 기분 좋게 내 이름을 발음해 드렸더니, 여기는 학생으로 있는 거냐 어떻게 오게 된 거냐 하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호기심을 반짝이시며 질문을 이어가셨다. 셰프인 남편과 함께 캐나다에 왔고 나는 학생은 아니며 여기서 일하며 지낸다고 말씀드렸더니, 와우 참 멋지다고 해 주시며 연달아 Good Luck! 을 기분 좋게 외쳐주셨다.






이런 좋은 손님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제는 반대로 내가 현재 D호텔에 일하면서 격은 대표적 인종차별 케이스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평화로운 어느 날 저녁, 그날은 아직 학생이지만 경력은 오래돼서 믿음직스러운 동료 L양과 일하고 있던 날이었다. 한 중년의 서양인 아줌마가 들어오더니, 오늘 남은 빈방이 있으면 하룻밤 투숙할 수 있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그래서 "아 따로 예약은 안하신 거죠? 방 남아있는거 확인 먼저 해드릴게요" 하고 말하며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줌마가 느릿하고 고상함을 가장한 뭔가 소름 돋는 목소리로 

"저기.... 근데 사람이 얘기할 땐 사람 눈을 보면서 얘기해야지? 안그래?" 하는 것이었다. 

모니터를 내려다보며 오늘 남은 방의 상태를 확인하고 Walk-In으로 이 아줌마의 체크인을 도우려 했던 나는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멍해진 채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 아줌마, 마저 이어서 하는 말이 

"혹시 내가 예약도 없이 그냥 들어와서 기분이 나쁜 거니? 너 지금 뭔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내가 예약 안 하고 와서 그런 거구나 맞지?" 

하며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순간 속으로 '뭐지?' 싶어서 대응할 말을 찾아 고민하는데 내 명찰에 적힌 "In Training"이라는 단어를 보더니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며 

"어머 너 트레이닝받는 중이구나~! 그럼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몰랐네~ 내가 나빴네~ 트레이닝 중인 사람한테 내가 너무 말을 심하게 했네~그렇지? 트레이닝중 인줄 알았으면 내가 안그랬지~

하며 그 고상함을 빙자한 기분 나쁜 말투로 아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불고 다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도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급격히 불쾌해졌지만, 이런 류의 사람은 맞받아치며 언쟁해봤자 나만 피곤해지고 상황만 더 안 좋아질 뿐이기에 그냥 그녀의 말이 맞다는 식으로 "어머 내가 말할 때 너 눈을 제대로 못 봤었나 보네~ 미안해~ 사과할게~"하고 대답했다. 나도 그녀의 간드러진 가식적인 말투를 흉내 내며 말이다. 그러자 갑자기 그 아줌마, 이번에는 옆에 있는 L양한테 몸을 확 틀더니 

"네가 얘 트레이닝시켜주는 애니? 어머 얘 지금 말하는 거 들었니? 바로 이렇게 사과하는 태도 정말 멋지지 않니? 보통 내가 이런 말 하면 다른 직원들은 나한테 맞받아치며 얘기하던데 이렇게 바로 사과하는 애티튜드 좀 보렴~ 이 애는 나중에 매니저까지 올라갈 애야 그렇지 않니?

하며 개소리를 해대는데 진짜 토할 것 같았다. L양도 이 아줌마가 보통 또라이가 아님을 직감하고 "예 맞아요 아주 훌륭한 직원이에요" 하고 받아주며 적당히 응대해주려 했다. 빨리 체크인을 도와 방으로 그녀를 보내버리려 하는데 그 여자가 대뜸 나에게 

"그런데 너 여기 학생인거니? 아님 눌러 살려는거니?" 

하고 물어왔다. 이런 사람의 이런 질문은 인종차별적인 뉘앙스가 담긴 질문일 확률이 매우 높다. 삐빅 삐빅 내 머릿속의 경계 센서가 울려대길 시작했다. 이런 인간들한테는 내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줄 필요가 절대 없기에 "나 여기서 일하며 지내는 거야~"하고 대충 대답댔다. 그때 로비를 지나가던 컨퍼런스 매니저님이 어떤 이상한 아줌마한테 젊은 여직원 둘이 붙들려 쩔쩔매고 있는게 눈에 띄였던지 스윽 도와주러 오셨다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하던지). "안녕하세요 마담 뭐 도와 드릴것 있나요? 하고 매니저님이 자연스럽게 끼어드셨고 그에 따라 이번에는 그 아줌마의 타깃이 그 매니저님으로 향했다. 뭐 호텔이 너무 좋다 직원들이 참 좋다 식의 가식적인 칭찬을 늘어놓더니 대뜸 그 매니저님한테 하는 말 

"근데... 당신은 어느 나라 출신이죠?

매니저님이 본인은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하니까

 "흠.... 이스라엘.... 이스라엘에는 한 번도 가본적도 없네요....

하며 말을 흐리는 것이었다. 여기서 딱 판정이 났다. 삐빅! 당신은 빼도 박도 못하게 인종차별주의자 입니다. 완전한 백인이 아닌 타인종 직원들에게 계속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고, 여기에 계속 살 계획이냐고 물어보는 모습은 아까 내가 언급한 "조금 배워먹은 은근한 인종차별주의자"의 전형에 속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L양이 나중에 알려주기를 나와의 대화중에도 그 아줌마가 나에게 인종차별적인 말을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 그래? 난 못 알아들었었어"라고 말하니 그녀가 "차라리 못 알아듣는게 나아 그런 말들 들어봤자 기분만 나쁘잖아"하고 말해주었고, 나도 그 아줌마가 했을 그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솔직히 더 알고 싶지도 않아 더 물어보지 않았다. 

그 아줌마가 빨리 객실로 올라갔으면 하는 모두의 염원을 담아 체크인을 서둘러 끝내고, 그 후로도 그녀의 헛소리를 한 15분가량 더 들어주다 그녀가 객실에 올라간 뒤, 중간조 근무였던 나는 9시쯤에 퇴근을 했다. 그리고 나는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L양한테 온 문자를 보고 빵 터지고 말았다. 문자 내용은 "This lady is making me suicidal (이 아줌마 나를 자살충동 느끼게 해)" 아이고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내가 퇴근한 후 이 아줌마가 술에 취해 로비에 내려와 L양한테 자기가 본 포르노 영화의 줄거리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는 것이다. 하아.... 불쌍한 L양.... 그리고 제대로 걸면 그 아줌마를 인종차별에 성희롱에 다 걸 수 있는데, 그녀는 손님이고 우리는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이유로 이런 일쯤은 그냥 참아 넘겨야하는 불쌍한 우리....




우리 부부를 비롯해 해외에 살아가며 온갖 인종차별을 겪고, 때로는 참으며 때로는 저항해가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삶은 응원한다. 참을 수 없는 조롱과 모욕에 부아가 치밀다가도, 그래도 신변에 큰 위협은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렇게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오늘도 꾹 참아가며 살아가는 우리네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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