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은 나는 아직도 엄마 집에 얹혀살고 있다. 쉽게 말해 ‘캥거루족’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엔 잠깐 나가 살기도 했었다. 밖에서 채 1년을 못 버텼다. 터무니없이 비싼 보증금으로 얻은 월세 집을 유지하느라 월급은 증발했다. 다이어트 업체에 쏟아부은 천팔백만 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있던 상태였다. 다시 엄마의 둥지 안으로 돌아오기 직전엔 천팔백이던 빚이 삼천으로 늘어나 있었다. 집을 정리할 때 엄마가 한 번에 그 빚을 다 갚아주었다. 한 삼 년은 버는 족족 엄마에게 계좌이체를 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꾸준히 가계부를 썼다. 엄마는 내게 이자 한 푼 받지 않았다. 마이너스가 0이 되고 야금야금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천만 원을 모았을 땐 기쁨에 겨워 글까지 썼다. 서울에 내 집 마련은 꿈같은 소리라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마음은 늘 왔다 갔다 한다. 가끔은 나만의 공간에서 내 살림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내가 아직 덜 자란 느낌이다.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맞부딪혀보고 싶다가도 식구들이 눈에 밟힌다. 내가 없으면 코스트코에서 장은 어찌 보나. 아파트 관리비는 또 누가 내나.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복닥복닥 살다 보면 ‘이게 사람 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갈피를 못 잡겠다. 이제는 대출을 얹어 작은 전셋집 하나 얻을 정도의 돈이 모였는데도 쉽사리 나가고 싶단 말이 나오질 않는다. 혼자 있으면 외롭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건 내가 없으면 집안 경제가 다 무너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살겠지. 살겠지만, 살아지는 대로 사는 건 싫다. 나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도 떨어져 나가거나 뒤처지는 바 없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왜 사는 걸까? 뭐 때문에 사는 걸까?
요즘은 유튜브에서 <월급쟁이 부자들>이라는 채널을 많이 본다. 조급해진다.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투자와 관련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들 한다. 당연한 말인데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하다. 월급이 끊기고 난 후의 대비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트북을 켜고 뭐라도 끄적거린다. 그러나 아무리 알고리즘을 타고 영상을 둘러봐도 큰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생겨나지 않는다. 국민연금에 퇴직연금, 개인연금까지 조금씩 받아 지내면 그럭저럭 살만하지 않을까? 거주 공간 하나만 마련하면 주식이니 코인이니 하는 것들은 다 그냥 적당히 알아도 되는 거 아닐까? 큰 거 바라는 게 아니다. (사실은 엄청 크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그냥 오랫동안 건강하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살고 싶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 기부를 엄청 많이 하거나 사회에 큰 도움이 되어 존경받고 싶은 건 또 아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이길 욕망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엄마를 웃겨주고 싶다. 집 안의 분위기를 밝혀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내가 가족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말 상대이길 바란다. 가족이 내겐 너무 소중하고 나는 내 가족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다. 얼굴을 붉히지 않고도 차분히 제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데 더 유리한 일일 테니깐.
쓰다 보니 알겠다. 아, 독립은 아직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