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한약을 처방받았다. 지난 8월에 한 신체검사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공복혈당과 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 결과지에는 간장질환이 의심된다고 쓰여 있었다. 입이 바짝 말라왔다. 혈당과 간 수치 모두 살만 빼면 낮아질 거라고들 했다. 8월이 지나고 나는 한동안 체중을 줄여보려 애썼다. 러닝과 식사량 조절의 효과는 미미했다. 대사가 이미 망가졌는지 살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9월 말에 엄마랑 칭다오 여행을 갔다. 우리는 3일 내내 싸웠다. 그간 속에 담아두었던 말도 다 풀어냈다. “한약이라도 먹어보는 건 어때?” 엄마는 지금이니까 하는 말이라며 이제는 진짜 체중을 줄여야 할 때가 왔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나는 우장산역 앞에 있는 유명 한의원엘 갔다. 의사는 내게 잘 왔다며 몸무게가 빠지면 올라간 수치들도 다시 회복될 거라고 했다.
오랜만에 인바디 기계로 체성분을 쟀다. 결과는 심각한 고도비만이었다. 팔, 다리, 몸통 어느 한 군데도 정상인 곳이 없었다. 지방량은 모두가 표준 이상. 러닝도 한다고 했는데 근육량은 겨우 적정선을 넘는 수준이었다. 본격적인 한약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까지 3일을 굶었다. 빠지지 않던 몸무게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선 밥을 반 공기로 줄이라고 했다. 나는 욕심이 나서 그보다 양을 조금 더 줄였다. 의사와 상담할 때 나는 “이게 저의 의지인지 한약의 효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의사는 살짝 웃었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요요가 덜 온다며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했다. 살이 빠지는 덴 가속이 붙었고 한 달 동안 6킬로가 빠져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1년에 한 번 피검사를 한다. 먹고 있는 정신과 약이 혹시나 부작용을 일으키진 않을까 하여 병원에서 권장하는 것이다. 살을 꽤 뺐으니 상태가 좋아졌을 줄 알았다. 막상 받아보니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몸무게는 빠졌을지 몰라도 간 수치가 올라갔다. 그것도 꽤 많이. 겁이 난 나는 그 길로 한의원에 찾아갔다. 의사는 한약과 간 수치 상승은 연관 관계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챗GPT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당장에 한약을 끊으라고 했다. 내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차 싶어 그대로 약을 버렸다. 한약 복용을 중단하고 올라간 간 수치는 조금 내려왔다. 엄마는 한의원에 병원비까지 청구하라고 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환불로 실랑이를 벌일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왔다. 이미 먹은 양은 빼고 나머지 약에 대한 비용만 돌려받았다. 한 석 달쯤 지나서 다시 피를 뽑아야 할 것 같다. 그땐 부디 정상이어야 할 텐데…….
정상 몸무게에서 한참을 벗어난 몸뚱이로 산 지도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다이어트 한약을 먹고 간이나 신장이 망가졌다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래도 무시했던 건 몸에 해롭더라도 일단은 살을 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이어트에 쏟은 에너지를 다른 데로 돌렸다면 나는 뭐라도 됐을 것이다.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모았을 테고 어쩌면 더 나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을 테다. 캐럴라인 냅은 그의 저서 『욕구들』에서 “식욕과 관련된 세세한 사항들―칼로리, 먹는 분량, 몸으로 들어가는 것 대비 소비되는 것, 구두, 헤어스타일, 강철 같은 복근―에 심히 치우친 불안한 집중은 욕망과 관련한 더 크고 공포스러운 질문들을 흐릿하고 초점에서 벗어난 상태로 유지해준다”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우리가 육체의 이미지에 관해 다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놈의 다이어트. 이것만 아니었다면 나는 더 선명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나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알고리즘은 건강 관련 팁으로 도배되어 있다. 말이 좋아 건강 관련 팁이지 그냥 ‘당신이 살을 못 빼는 10가지 이유’, ‘몸무게가 빨리 빠지는 5가지 방법’ 따위의 게시글이나 쇼츠다.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건 그만큼 내게 살을 빼고자 하는 욕망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탓일 것이다. 핸드폰은 내게 여전히 날씬한 몸을 가지지 못했다는 묘한 패배감을 안긴다. 정말이지 그만하고 싶지만 내게 다이어트를 포기한다는 말은 인생을 포기한다는 말과 동치된다. 나는 내 삶을 내팽개치고 싶지 않다. 내 몸 또한 마찬가지다.
다이어트의 목표는 건강이라는 거짓말도 이젠 그만하고 싶다. 하, 그놈의 다이어트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