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단식일이다. 적어도 24시간 동안은 칼로리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커피나 허브차는 마셔도 괜찮다. 소금물을 섭취해 주는 것도 좋다. 처음 단식을 시작했을 때보다 7킬로나 빠졌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이루어낸 성과다. 예상했던 것보다 강력한 효과에 만족하면서 오늘도 단식을 다짐한다. 이번엔 먹지 않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 보려 한다. 요즘 통 체중이 줄어들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정체기를 극복하고 싶다.
저번 주엔 체성분 검사를 했다. 근육량은 28킬로, 표준 이상이었다. 나같이 근육이 많은 몸은 보이는 것보다 무게가 많이 나간다. 몸무게를 들으면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근육이 많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몸무게를 재고 나면 그런 생각이 달아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에 집착하게 되고 남들보다 많이 나가는 체중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근육을 줄여서라도 몸무게를 낮추고 싶어 진다. 건강함을 잃고서라도 마른 몸을 가지고 싶어지는 것이다. “숫자에 집착할 필요 없어, 보이는 게 중요한 거지”라는 말을 들으면 수긍하는 척하면서도 반발심이 든다. 나도 숫자가 다가 아니라고 자기 암시를 건다. ‘눈바디’가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되뇐다. 물론 나 자신을 설득하는 데 매번 실패하지만 말이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보이는 나’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쏟을 시간을 다이어트에 쏟아붓고 있다는 생각이다.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시간에 나는 다이어트를 한다. 그 시간이 아깝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살 빼는 걸 포기할 순 없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나와 진짜 나를 분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릴 때부터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류의 가스라이팅을 당한 결과라기엔 누구도 나에게 예뻐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예쁘게 보이도록 노력하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늘 나를 꾸미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 했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본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미’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까.
‘탈코르셋’이 여성들 간의 화두였을 때 나는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치마나 블라우스 같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옷도 모조리 버려 버렸다. 그때는 짧은 머리카락과 성을 구분할 수 없는 옷차림을 평생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속이 쓰리다. 버린 옷 중 값이 나가는 것이 꽤 있었다. 마음에 쏙 들었던 겨자색 블라우스는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탈코르셋을 향한 불타오르던 의지는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직장에선 여전히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진 않는다. 제주에도, 북경이나 홍콩에도 나는 발령 나지 않겠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진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어쩌면 바뀌지 않을 현실과 타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여성으로 태어나 다행이라고까지 느낀다. 월경의 불편함과 출산의 두려움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여성인 게 좋다.
언젠가 나는 화장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다. 과연 그럴까. 요즘엔 화장을 꼭 하고 다닌다. 파운데이션은 바르지 않지만, 아이라인을 그리고 뷰러로 눈썹을 집는다. 마스카라와 립스틱을 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하고 다녔던 화장에 비해 단출해졌지만 할 건 다 한다. 예전에 비해선 화장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다. 꾸미는 걸 싫어한다고 외치던 나는 어쩌면 나를 부정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조금 더 의식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싶었던 건 아닐까.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을 때 나는 행복했을까. 옳다고 느끼긴 했지만 자유롭다거나 행복하다고 느끼진 않았다. 과연 남자들은 이런 고민을 할까. 내가 추구하는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적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은 억울해진다.
여전히 꾸밀 자유보단 꾸미지 않을 자유를 응원한다. 꾸밀 자유보다 꾸미지 않을 자유가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탈코르셋에 대한 부채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꾸미지 않을 자유를 전제하기 위하여 나도 탈코르셋에 동참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다시금 머리카락을 짧게 자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예쁠 자유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은 치마도 입고 싶고 진하게 화장도 하고 싶다. 그냥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고 싶다. 예쁘지 않을 용기가 아직 내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