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빨대를 주문했다. 그날도 나는 근무 중 몰래 네이버를 켜놓고 있었다. 항공기는 사고 치는 놈 하나 없이 멀쩡히들 날아다니고 있었다. 멍하니 앉아있는데 텀블러 안에 꽂힌 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내가 일회용 빨대를 부쩍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다시 차가운 음료의 계절이 돌아왔다.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에 빨대를 꽂아 쭉 들이켜면 새삼 기분이 좋았다. 실내에서도 마스크 없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되어 한창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던 참이었다. 텀블러에 립스틱 자국을 내지 않으려고 의식 없이 일회용 빨대를 써댔다. 갑작스럽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인터넷에 ‘스테인리스 빨대’를 검색했다. 가격은 비싸지 않았다. 각인을 새겨준다는 곳도 있었다. 옆에 앉아있던 선배에게 다회용 빨대를 써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선배는 집에 하나 있긴 한데 세척하기가 번거로워 잘 쓰지 않게 된다고 했다. 사이트에 보니 세척 솔과 파우치도 있었다. 나는 선배에게 내 거 시키는 김에 솔이며 파우치며 같이 시키자고 말했다. 선배가 머뭇거리자 나는 “각인까지 새겨준대요.” 하며 빨대에 뭐라고 새길지 빨리 말해달라고 다그쳤다. 선배는 얼결에 나와 비슷하게 문구를 새겨달라고 했고 나는 선배 마음이 바뀔까 빠르게 결제까지 마쳐버렸다. 둘이 합쳐봐야 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선배가 계속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선배를 일회용 빨대 사용 줄이기에 동참시켰다는 만족감에 됐다고 했다.
한때 쓰레기 줄이기에 꽂혔던 적이 있다. <플라스틱 인류> 같은 EBS 다큐멘터리 몇 편을 보고 썩지 않는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는 한 사람이 일주일 동안 배출해 내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몸에 달아보는 실험을 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문득 집안을 둘러보니 일회용품이 너무나 많았다. 생수통이며 청소용 면포, 칫솔과 치약, 생리대까지 다 썩지 않을 쓰레기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 생리컵을 주문했다. 집에선 두루마리 휴지도 쓰지 않았다. 알맹이만 판다는 상점에 가서 세제류를 받아왔다. 고기는 유리그릇에, 흙이 묻은 감자나 당근은 면 주머니에 담아왔다. 유리병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장을 보는 건 품이 드는 일이었다. 갈 때도 올 때도 팔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무거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씻을 거리는 비누로 대체하고 삼베로 된 샤워 타월을 썼다. 종이에 든 화장품을 쓰고 수돗물을 팔팔 끓여 마셨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려는 나의 삶은 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고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본가로 들어왔다. 가족들과 함께 살다 보니 일반 가정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없는 삶을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재활용 쓰레기를 매주 목요일마다 배출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각 가정은 일주일 치 쓰레기를 모아놓는다. 목요일이 되면 아파트 주차장에 임시로 설치된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모인다. 승용차 4대를 주차하고도 남을 크기다. 주차장에 모이는 모두가 양손 한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오는 걸 보면 우리 가족이 특별히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 같진 않다. 택배 박스엔 테이프가 붙어 온다. 배달 음식이라도 한 번 시켜 먹으면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온다. 요리는 물론 반찬이며 밥까지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온다. 시중에 나오는 거의 모든 제품은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 있다. 껍질을 까먹는 바나나마저도 비닐랩에 둘둘 싸여 있다. 샴푸나 린스 정도는 통에 받아와 써도 될 일이지만 마트는 가깝고 제로웨이스트 상점은 멀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신경 써서 장을 보자고 다짐하지만,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트에 막상 가면 눈에 보이는 상품을 쓸어 담기 바쁘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 통에 버리며 우리는 이 쓰레기가 다시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할 거라는 환상을 가진다. 그러나 정작 반도 재활용되지 않는다. 눈만 딱 감으면 버리기는 너무 쉬운 세상이다.
“너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어?”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것이다. 언젠가 내가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녔을 때 내 친구는 내 신념은 존중하지만 나 하나의 힘은 너무나 미미해 세상이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내가 부딪힐 세상의 벽과 거기서 받을 좌절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어떤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한 사람이 일주일 동안 만들어 내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며 내 노력이 결코 작은 건 아닐 것이라고 답하고 말았다. 소비자가 플라스틱 사용을 점점 줄여나가면 생산자도 플라스틱 생산을 줄여야 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공급을 줄여주면 좋겠지만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속도를 맞추어 같이 줄여나가야 우리가 뱉어내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줄어들 수 있다.
빨대를 잘근잘근 씹는 게 버릇인 사람들에겐 스테인리스 빨대는 분명 불편할 것이다. 다행히 내겐 그런 습관이 없다. 며칠 동안 써봤더니 시원한 음료엔 스테인리스 빨대가 차가워 오히려 좋았다. 이제 대중교통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나는 바로 마스크를 벗었다. 코로나에 걸리는 게 무섭긴 하지만 일회용 마스크 쓰레기를 더 이상 배출해내고 싶진 않다. 당분간은 스테인리스 빨대 홍보대사가 되어 여기저기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는 내 모습을 전시할 참이다. 내가 바뀌면 내 주변이 바뀌고 그렇게 세상도 조금씩 변화할지 모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