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런콩 Jan 21. 2024

얼마나 많은 생명에 빚지며 살아가는가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를 보고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라는 책을 읽던 중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저자는 비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씨스피라시>를 언급했다. 제목에서 추측 가능한 대로 '씨스피라시'는 씨(sea)와 컨스피라시(conspiracy)의 합성어다. 바다에 얽힌 음모를 뜻한다.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어업이라는 것이다. 영상에선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 중 미세 플라스틱의 비율은 사실상 미미하고, 어업 쓰레기가 46%를 차지한다고 밝힌다.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물고기 역시 문제다. 일본 타이지에서는 참치잡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고래를 대량 학살한다. 고래는 상어와 더불어 최상위 포식자다. 그 개체 수가 줄어들면 하위 포식자의 수가 처음엔 증가하다가 한정된 먹이 때문에 결국엔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점차로 아주 작은 어종까지 영향을 받는다. 프랑스에서는 타이지에서보다 훨씬 많은 고래가 죽어나가지만 아무도 이 사실을 파고들려 하지 않는다. 환경 단체나 정부 기관에서 입을 다무는 이유를 감독 알리 타브리지는 관련 업계의 후원을 받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돈이 얽히지 않은 비리가 어디 있겠는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참담한 심정이었다.


지난 사촌 오빠 결혼식에 대구를 다녀왔다. 우리 가족은 회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대구에 있는 큰 이모집에 가면 이모부가 한 보따리씩 회를 떠다 오신다. 우리가 내려갔을 땐 방어 철이었다. 방어를 2킬로 넘게 회 쳐 오셨는데 우리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라며 그 많은 걸 앉은자리에서 다 먹었다. 나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식탁에서 어쩌다 비건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은 내가 꺼냈다.) 이모부는 "너거는 물고기 불쌍하다 하지 마라, 너거 먹는 거 보면 그런 말 할 자격 없데이" 말씀하셨다. 나무라는 게 아닌 농담이었는데도 뼈가 아팠다. 살아있었던 것의 죽은 살을 먹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모순으로 가끔은 자기혐오에 빠진다. 동물 학대에 가담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견디기가 힘들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물고기 역시 똑같이 고통과 감정을 느끼고 동료가 죽어갈 때 동요한다고 한다. 그들이라고 왜 안 그러겠는가. 나는 그동안 얼마나 무심하게 그들의 고통을 넘겨왔던가.


<씨스피라시>를 보고 비슷한 결의 <카우스피라시>까지 보았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두 번째라 그런지 <씨스피라시>만큼의 충격을 받진 않았다. 영상 속 전문가들은 '나 한 사람 안 먹는다고 되겠어?'라는 생각을 '나 하나라도 안 먹어야 해'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주일에 한 번 '고기 없는 날' 정도론 턱도 없어서 아예 동물 섭취를 중단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다시 한번 더 이상 죽은 동물의 살을 먹지 말아야겠고 다짐했다. 동물의 고통이 전가되는 듯한 것도 있지만 범지구적 측면에서도 좋지 않아서다. 가축을 기르는 데 필요한 곡물과 물을 대기 위하여 산림은 파괴된다. 미국 기준으로 나라의 전체 땅을 갈아엎어도 소에게 먹일 곡물을 충당할 수 없다. 미국인의 육류 섭취량을 충족하기 위해선 소를 더 길러야 하는데 기를 땅이 모자라다. 브라질 같은 나라에선 축산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간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측면에서 동물을 먹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명에 빚지며 살아가는가.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이다. 찰나의 즐거움을 위하여 다른 생명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게 되는 건 말이다. 동물의 고통에 무감각해질까 봐 무서워진다.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시중에 판매되는 동물의 살은 그가 미처 살아내지 못한 삶과 고통스러웠던 생애를 지운다. 밥상에 올려진 먹음직한 고기를 보면서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불어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 자연을 해치지 않고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구에 사는 다양한 생명체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선 말이다.


<씨스피라시>를 추천한다. 아주 볼 만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지 않을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