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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Nov 26. 2024

살이 쪄서 슬픈 짐승이여

이건 산재다. 80(정확하게는 80.7) 킬로라니. 믿을 수 없는 수치다. 나는 주식은 닭가슴살에 마실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 설탕 대신 살이 찌지 않는다는 알룰로스를 넣어 요리하는 사람이다. 그뿐인가. 돈 내고 받는 유격훈련이라는 크로스핏과 만 보씩 걷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80이라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샐러드를 먹으려던 나는 전날 참았던 김치찌개를 냄비째 들고 앉았다. 식탁 위에 있던 빵 두 개를 욱여넣었다. 배가 고프거나 맛을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화가 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먹는 행위로 눌러 참은 거였다. 찢어질 듯한 배를 움켜쥐며 모로 누웠다. 유튜브에 '고도비만 다이어트'를 검색했다. 먹은 걸 게워 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핸드폰 화면을 왔다 갔다 했다. 그다지 끌리는 영상이 없었다(이미 다 본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다 회사 탓이다. 곱씹을수록 열통이 터졌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긴 밤이었다.  

   

다이어트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라고들 한다. 나 같은 3교대 근무자에겐 꿈같은 소리다. 나는 새벽에 출근할 때도 있고 밤늦게 집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근무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면 그나마 어떻게 해보겠는데 오전, 오후, 야간 근무가 무작위로 배정되다 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도 일정한 시간에 먹고 자고 움직이고 싶다(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당장 내일에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도 근무표를 봐야 안다. 새벽 댓바람부터 회사에 가면 배가 고프다. 6시가 되자마자 숭늉 한 그릇을 포함한 조식을 거하게 먹는다. 집에서 자고 있었더라면 건너뛰었을 한 끼다. 어떤 날은 밤 10시가 넘어 퇴근한다. 지독히도 야식이 당긴다. 뭐라도 입에 쑤셔 넣지 않으면 잠들지 못할 것 같다. 결국에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 냉장고를 뒤진다. 일찍 퇴근했으면 일찍 배가 고팠을 것이다. 그러면 밤늦게 먹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살은 덜 쪘겠지. 이러고도 내가 살찐 게 산재가 아니란 말인가?     


원래부터 뚱뚱한 건 아니었다. 나도 I형 인바디를 가지던 시절이 있었다. 표준 체중에 표준 근육량, 표준 체지방량까지. 기억도 희미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긴 있었다. 20킬로가 불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먹었겠지), 운동을 안 한 것도 아닌데(덜했겠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살이 쪘다. 입사하고 나서다. 조급한 마음에 굶는 건 기본이었다. 각종 식이요법과 한약, 양약까지 두루 섭렵했다. 빠지는 것은 잠깐이었고 매번 더 큰 요요가 왔다. '이럴 거면 애초에 다이어트를 시작하지 말 걸 그랬어.' 후회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은 도저히 살찐 내 모습을 견디기가 힘들어 밤새도록 다이어트 업체 검색만 했다. 날이 밝자마자 나는 연예인 다이어트로도 이름을 날렸던 J 업체를 찾아갔다. 그곳에선 내게 18주짜리 프로그램을 추천했는데 총 1800만 원 정도였으니 딱 일주일에 100만 원꼴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겁도 없이 카드를 긁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J 업체에서의 하루는 이러했다. 센터에 가면 거기서 주는 반바지와 브래지어 차림으로 먼저 인바디 기계에 올라간다. 가끔은 더 복잡한 체성분 검사를 하기도 한다. 인바디를 재고 나면 본격적인 기기 관리가 시작된다. 뜨끈하게 몸을 지질 수 있는 통에 들어가 머리만 빼놓고 있는다. 그냥 있으면 시간이 잘 가지 않으니 다이어트 관련 영상을 시청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몸이 노곤해져도 절대 잠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잠과의 사투를 벌이고 나면 통에서 나와 잠깐 시원한 바람을 쐰다. 땀이 식기 전 마사지 의자 같은 데 누워서 몸에 패치를 붙이고 저주파 관리를 받는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근육을 움직여 주는 원리라고 홍보하는 영상을 시청한다. 이때도 잠들어선 안 된다. 관리를 다 받고 나면 다시 인바디를 잰다. 체중이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한다. 체중이 충분히 줄지 않았으면 샤워하고 다시 인바디를 잰다. '오늘도 500그램이 줄었군.' 만족하고 집에 간다.    


헐벗고 무게를 다는 내 몸뚱이는 소나 돼지가 된 것 같았다. 단순한 피해의식일까?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덩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컸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이것 역시 피해의식일까? 친구들은 내게 조금만 빼면 더 예쁠 것 같다면서 '먹는 걸 줄이고 운동해라'라는 류의 조언을 늘어놓았다(나도 알아 얘들아). 술자리에서 어떤 상사는 내게 "넌 남들보다 (몸집이) 크니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살찐 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먹보여서, 게을러서 살이 쪘다고 생각했다.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나는 내가 보기에도 한심했다. 나에 대한 혐오감은 나날이 심해졌다. '나를 미워하는 일 따위 그만두어야지' 속으로 되뇌어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살찐 건 정말이지, 서러운 일이다.     


우리는 건강해지려고 살을 빼는 게 아니다. '용모가 단정한 사람'이 되려고 살을 뺀다. 물론, 그건 사회와 내가 동시에 요구하는 바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정함'을 예쁘고 잘생기고 적당한 근육량과 모자란 체지방량을 가진 것의 동의어로 사용하곤 한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단정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자기관리에 실패한 것에 더불어 멀끔하지 못하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한다. 억울하다. 그냥 좀 생긴 대로 살면 안 되나?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서 살면 안 되나? 생각하면서도 나는 인터넷에 '간헐적 단식'을 검색한다. 살이 빠지는 탄단지 비율과 공복 유산소 방법을 찾아 본다. 차라리 이게 누구의 잘못이어서 실컷 탓할 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잠깐, 살찐 게 잘못인가? 선뜻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현실에 서글퍼진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받아들이고 싶다. 받아들여지고 싶다. 아, 살이 쪄서 슬픈 짐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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