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비틀 32년차 밀린 일기 몰아쓰기 그 첫 장, 위대한 시작
메모어를 시작하면 바로 다시 다이어리와 일기를 쓸 줄만 알았다. 퇴사를 하면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줄만 알았다. 미술 재료를 잔뜩 사면 하루종일 그릴줄만 알았다. 환급형 스터디에 가입하면 제때 과제를 낼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만 역시 마음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거울에 뻔한 실망감이 다시 비추었다.
나는 으레 이진법으로 세상을 해석하고자 용썼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고작 2분만 늦어도 강의에 들어가지 않았다. 마지막 퇴고만 남았더라도 제출 버튼을 누르기 싫었다. 스무 살에 도로주행 마지막 연습을 놓친 후 서른두 살인 지금까지도 무면허다. 확 액셀을 밟았다가도 기대한 속도를 찍지 못하면 순식간에 멈췄다. 99도까지 온도가 올라도 끓지 않는 물처럼. 더 쉽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게으른 완벽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혼자 불타올랐다 재만 남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학습된 무기력과 이어지는 자학, 불현듯 솟구치는 의심과 손에 잡힐 듯한 불안… 낙원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발걸음을 질질 끌며 내가 남긴 잔해에서 도망치기 일쑤다. 때로는 그냥 눈을 감고 이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만 싶다. 반복된 회피로 내 영역은 점차 좁아지고 말았다.
가장 무서운건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어느 순간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이어 달리기라고 할 수 있겠다. 희망 - 자만 - 도전 - 권태 - 회피 - 좌절 - 다짐, 순서만 조금씩 바뀔뿐 끝없이 바톤을 넘기며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고야 만다. 니가 그럼 그렇지. 결국 주어는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을 맞딱뜨린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냉정한 시선에 비릿한 웃음기를 더하며 관망하는 그림자. 눈이 감길 때까지 손바닥 안 파-아란 스크린을 꽉 쥔채 그대로 잠을 청하는 나날로 복귀한 것이다.
요즘에는 새로운 연습을 하고 있다. 성장은 선형이 아니라는 걸 되뇐다. 인생은 -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 롤러코스터임을 상기한다. 0과 1 사이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지 않나. 0.1, 0.2, 0.31238230231… 멀게만 느껴지던 임계점을 넘는 순간, 피니시 라인의 리본을 가르는 마지막 날숨… 그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찢기는 성장통을 나날이 견뎌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곱씹고 있다.
2024년은 꽤나 큰 변곡점이다. 상반기에 여러 언덕을 넘는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많다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하반기는 거울 속 상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에 쏟고자 한다. 심리상담, MBTI, 정밀 진단, 회고, 커뮤니티, 사주팔자… 사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상관없다. 데드라인을 2시간 남겨두고 주저리 쓰는 이 토막글도 그 일부다. “브런치에 글 쓸 거야” 심심한 다짐으로 여러 번 내뱉어진 문장에 마침표를 이제야 찍는 이유.
지금도 사실은 이 글을 더 수정하고 싶은 질척이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완료 버튼을 누르려한다. 미숙하고 부끄럽더라도 더럽게 솔직하고 또 인간적인 여정을 날것으로 기록하여 공유하고 싶다. 설령 끝내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그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집중하려 한다. 켜켜이 먼지가 뒤덮힌 나의 수많은 인스타그램 계정의 알림창도 차차 마주할거다. 비록 죽을만큼 두렵지만 정말로 죽진 않을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투라 비문이라고 여겨짐에도 “Nevertheless”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꽂히는 표현이다. 오히려 불필요한 미사여구가 붙어 있는 형국이라 우리네 인생과 어울리기 때문인 건 아닐까? 때론 지저분하고 빙빙 돌아가며 비효율적이기 마련인.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은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