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에 대한 것이면서 고래에 대한 것이 아닌
어쩐지 내가 읽었을 거라고 주변에서 짐작하고 있기에 항상 마음속 부채와도 같던 책, 벼르고 벼르던 모비딕을 드디어 읽었다. 생각만 하던 완역본을 독서모임 통해서 읽은 건 돈키호테 이후 모비딕이 두 번째.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멜빌이 왜 당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했는지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겠다는 것. 일단 말이 지나치게 많고, 서술 형식이 파격적인 데다 지금 읽어 봐도 작품이 상당히 현대적인 동시에 난해한데 1850년대에 이게 먹혔을 리가..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일수록 외로운 생을 견뎌야 하는 게 숙명인가 싶기도 하다. 결과적으로는 그래서 이 괴물 같은 작품 모비딕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으니 생전에 못 얻은 명성을 역사 속에 새기고 작가로서는 영원히 살게 되었구나.
워낙에 해석이 다양하게 뻗어 나올 수 있는 작품인 데다 아무말대잔치로 난 이렇게 물구나무서기 하며 읽었다고 주장해도 누가 맞다 틀리다 가려줄 수도 없고, 그런 면에서 독자의 특권을 마음껏 즐기기 좋은 책인데.. 모임에서는 다소 안전하고 평이한 이야기들이 오가서 그 부분이 살짝 아쉽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모비딕은 읽는 독자의 심리나 마음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부분이 와 닿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광기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인간의 자유 의지로, 아니면 집착으로, 혹은 운명에 대한 도전으로, 무모함으로, 진리에의 추구로도, 미지를 향한 맹목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자연과의 갈등이었다고 말하거나 권위에의 순응으로 보더라도, 또는 19세기 미국 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자체의 작은 축소판이라고 설명하더라도, 그저 무덤과도 같은 신념과 철학을 그린 거라고 느꼈다고 해도 모두 일리가 있는 해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포용력은 실로 탁월하다.
그러나 결국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소설이 인간의 심연으로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 그것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했다가 다시 짜 맞추고 또 풀고 엮는 작업을 반복했던 멜빌의 내면을 그대로 쏟아부은, 일종의 아름다운 모자이크였다고 생각한다. 또 작품의 수백 페이지에 걸쳐 고래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늘어놓고 있지만 그것은 마지막에야 비로소 맞닥뜨리게 되는 '모비딕'에 대해서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잘 안다고 믿고, 가끔은 그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대상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 그 모든 정보들이 한 줌 공허한 파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작품을 내내 관통하는 고래에 대한 어마어마한 서술, 지루할 정도로 많은 그 내용들은 정말 모비딕에 대한 것인가? 오히려 모비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수없이 많은 그 페이지의 말들을 아무리 열심히 모으더라도, 그것이 모비딕이라는 존재 자체를 구성하는 일부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말과 서술과 실체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