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이르는 삶을 오롯이 걸어가신
올해 초 나의 1월을 연 첫 책은 지난해 여름 작고하신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 <사소한 부탁>이었다. 독서모임에서의 평들도 '인품이 좋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라는 소감이 대부분이었고, 개인적으로는 2013년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소회를 쭉 따라 읽으면서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들, 기억들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불문학과 교수로 오래 지내며 번역 작업도 많이 하시다 보니 외래어나 외국어, 그리고 우리말 사용 전반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갖고 계셨는데 특히 인간의 의식 밑바닥으로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언어는 그 인간의 모국어라는 말에 대한 공감이 컸다. 영어, 중국어 조기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열의를 이미 무엇으로도 꺾을 순 없겠지만 외국어는 보다 다채로운 삶을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 우리의 인식, 사고 체계 자체를 구성하는 모국어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착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어차피 제 1국어를 선택하게 되어 있고, 내 아이에게 둘 중 하나를 골라줘야 한다면 당연히 탁월한 우리말 구사 능력을 우선적으로 갖추게끔 하고 싶은 게 평소의 내 바람이기 때문에. 고작 영어 유치원, 어학원 다닌다고 바이링구얼 되면 걔는 뭐가 돼도 될 기적의 아이가 아닐까.
이외에 특별히 즐겁게 읽은 부분은 주로 4, 5부에 수록된 평론 글들인데, 시나 소설은 물론이고 '곡성'과 같은 영화평도 있다. 그중에서 나도 인상 깊게 본 '컨택트'에 관련된 글이 있어 2편 마지막 부분을 일부 옮겨 본다.
"인간이 인간에게 바치는 사랑은 변덕스럽고 불완전하지만 스러지는 인간은 그 사랑을 가장 완전하고 가장 영원한 '형상으로 간직'해 둘 수 있다. 삶은 덧없어도 그 형상과 형식은 영원하다. 그래서 한번 살았던 삶은 그것이 길건 짧건 영원한 삶이 된다. 그래서 <컨택트>의 루이스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날 딸이 20년도 채 살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딸을 낳기 위해 이안과의 결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벌써 한 낱말로 삼라만상 전체를 말하고 들을 줄 아는 루이스에게는 짧은 생명과 긴 생명이 따로 없다. 한 사람의 삶은 우주 전체의 삶이며,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짧아도 영원에 이르는 시간이다. 이 삶이, 영화의 저본이 된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에 적힌 바로 그 삶이다. (2017.7)"
영화 '컨택트'와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둘 다 강력 추천하고 싶은데, 뛰어난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종종 망작이 되곤 하지만 이 경우엔 그렇지 않다. 원작이 (가상의 언어인) 헵타포드어에 대한 개념을 쌓고 설명하는 데에 좀 더 집중한다면 영화는 주인공 루이스의 감정을 따라가며 그 선택의 과정을 천천히 그려내는 데에 포인트를 둔다. 조금 결이 다른 의미에서 영화와 원작 소설 모두 매혹적이고 그래서 각자 몫의 여운을 남긴다.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지난 감상을 떠올릴 수 있어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감탄을 했던 글들은 '여성 혐오에 대하여', '풍속에 관해 글쓰기', '희생자의 서사' 등으로 이어지는 페미니즘 관련 글들이다. 45년생 할아버지가 쓰셨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고 깨어 있으며, 여전히 온화하고 정갈한 문체로 매우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젊은 남성 중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는 샤이 페미니스트의 비율이 10% 정도 된다는 작년의 설문 조사 결과도 그렇고, 노교수님이 남기신 이런 글들을 읽을 때 나는 우리 사회가 비록 느리더라도 진보를 향해 매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고 있음을 본다.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고 독선과 아집이 켜켜이 쌓인 후에도 내가 이만큼 넓은 상상력과 포용력을 보일 수 있을까. 매 순간을 의식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미 알기에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는 서문의 말이 더 이상 가볍게 들리지 않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