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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 Dec 07. 2019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영원에 이르는 삶을 오롯이 걸어가신







 올해  나의 1월을   책은 지난해 여름 작고하신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 <사소한 부탁>이었다. 독서모임에서의 평들도 '인품이 좋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라는 소감이 대부분이었고, 개인적으로는 2013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소회를  따라 읽으면서  당시에 내가 했던 생각들, 기억들을 다시금 되새겨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불문학과 교수로 오래 지내며 번역 작업도 많이 하시다 보니 외래어나 외국어, 그리고 우리말 사용 전반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갖고 계셨는데 특히 인간의 의식 밑바닥으로 가장 깊이 내려갈  있는 언어는  인간의 모국어라는 말에 대한 공감이 컸다. 영어, 중국어 조기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열의를 이미 무엇으로도 꺾을  없겠지만 외국어는 보다 다채로운 삶을 위한 도구에 불과할  우리의 인식, 사고 체계 자체를 구성하는 모국어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착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뇌는 어차피  1국어를 선택하게 되어 있고,  아이에게   하나를 골라줘야 한다면 당연히 탁월한 우리말 구사 능력을 우선적으로 갖추게끔 하고 싶은  평소의  바람이기 때문에. 고작 영어 유치원, 어학원 다닌다고 바이링구얼 되면 걔는 뭐가 돼도  기적의 아이가 아닐까.

 이외에 특별히 즐겁게 읽은 부분은 주로 4, 5부에 수록된 평론 글들인데, 시나 소설은 물론이고 '곡성' 같은 영화평도 있다. 그중에서 나도 인상 깊게  '컨택트' 관련된 글이 있어 2 마지막 부분을 일부 옮겨 본다



"인간이 인간에게 바치는 사랑은 변덕스럽고 불완전하지만 스러지는 인간은  사랑을 가장 완전하고 가장 영원한 '형상으로 간직'   있다. 삶은 덧없어도  형상과 형식은 영원하다. 그래서 한번 살았던 삶은 그것이 길건 짧건 영원한 삶이 된다. 그래서 <컨택트> 루이스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날 딸이 20년도  살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딸을 낳기 위해 이안과의 결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벌써  낱말로 삼라만상 전체를 말하고 들을  아는 루이스에게는 짧은 생명과  생명이 따로 없다.  사람의 삶은 우주 전체의 삶이며,  사람이  세상에서 누리는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짧아도 영원에 이르는 시간이다.  삶이, 영화의 저본이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적힌 바로  삶이다. (2017.7)"




 영화 '컨택트'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강력 추천하고 싶은데, 뛰어난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종종 망작이 되곤 하지만  경우엔 그렇지 않다. 원작이 (가상의 언어인) 헵타포드어에 대한 개념을 쌓고 설명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영화는 주인공 루이스의 감정을 따라가며  선택의 과정을 천천히 그려내는 데에 포인트를 둔다. 조금 결이 다른 의미에서 영화와 원작 소설 모두 매혹적이고 그래서 각자 몫의 여운을 남긴다. 황현산 선생님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지난 감상을 떠올릴  있어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감탄을 했던 글들은 '여성 혐오에 대하여', '풍속에 관해 글쓰기', '희생자의 서사' 등으로 이어지는 페미니즘 관련 글들이다. 45년생 할아버지가 쓰셨다고 믿을  없을 정도로 유연하고 깨어 있으며, 여전히 온화하고 정갈한 문체로 매우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젊은 남성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는 샤이 페미니스트의 비율이 10% 정도 된다는 작년의 설문 조사 결과도 그렇고, 노교수님이 남기신 이런 글들을 읽을  나는 우리 사회가 비록 느리더라도 진보를 향해 매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고 있음을 본다

 나이를 훨씬  많이 먹고 독선과 아집이 켜켜이 쌓인 후에도 내가 이만큼 넓은 상상력과 포용력을 보일  있을까.  순간을 의식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미 알기에  세상에서 문학으로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는 서문의 말이  이상 가볍게 들리지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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