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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Oct 08. 2021

소풍

천고마비의 계절, 소풍을 떠나다.

가을을 두고 하늘은 높아 푸르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 했던가.

맑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초목이 결실을 맺는 풍요의 계절. ‘秋高馬肥(추고마비)’이던 것이 天高馬肥(천고마비)로 변한 것이라 하는데, 이는 당나라 시인인 두보의 할아버지 두심언이 변방에 가 있는 친구에게 보낸 시에 나오는 글귀라고 한다.

무더웠던 여름을 지나 지친 몸과 마음을 말 그대로 힐링해주는 계절.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선물이라도 되는 양 산천이 고운 색으로 물들고 산들바람까지 더해 마음껏 기분 좋은 날씨를 선사한다.


이맘때가 되면 소풍 도시락을 싸느라 분주히 손을 놀리는 엄마와 기껏해야 김밥 꼬다리를 얻어먹겠다고 옹기종기 둘러앉은 삼 남매의 모습이 떠올려지곤 한다.

일 년에 두세 번, 봄소풍과 가을소풍 혹은 가을대운동회 정도에나 먹을 수 있었던 김밥이었다. 요즘처럼 쉽게 사 먹을 전문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자주 해줄 여력도 없을 것이었다.

김 위에 밥을 깔고 차곡차곡 다양한 재료들을 올린 후에 돌돌 말아 척척 쌓아두는 엄마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던 삼 남매의 눈이 칼이 들린 엄마의 손에 집중되면, 위험하다 야단치는 엄마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빠르게 손을 놀려야만 꼬다리나마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다.


소풍 전날 날씨를 걱정하며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순수한 마음이 있었고 막상 소풍지에서의 놀이보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엄마 곁에 쪼그리고 앉아 터진 김밥을 먹는 시간이 더 좋았으며 음료나 과자를 넣어 가방을 챙기던 떨리던 손길이 있었다.

장기자랑 시간이 되면 내 순서가 올 때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보물찾기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있을 법한 곳을 둘러보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선물이라고 해봐야 저렴한 노트나 연필 같은 문구 일색이지만 자칫 한 개도 못 얻고 돌아오는 귀갓길에는 어깨가 축 처지기 일쑤였고 엄마가 동네 문방구에서 사서라도 들려주면 그제야 내민 입을 넣고 얼굴에 웃음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야 그저 노는 것이지만 바쁜 농사일정에 따로 나들이를 간다거나 마땅히 견학할만한 교육적 현장도 전무했던 시골의 그 시절에 소풍은 유일하게 학교를 벗어난 교육 프로그램이었고 아이들뿐 아니라 동반한 부모의 입장에서도 한숨 돌리는 시간이었을 것이며 소박하지만 부모의 마음이 담긴 소풍가방이 꾸려졌을 것이다.


한참이나 나이를 먹은 지금, 그때만큼의 설렘은 없을지라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으로 떠나는 소풍은 긴장된 심신을 풀어놓고 바쁜 삶 속에서 잊고 살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제공해 준다. 이와 더불어 빠질 수 없는 것이 먹거리인데 다양한 음식 중에서도 특히 자연친화적인 한식 메뉴를 준비한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식의 많은 특색 중 하나로 제철 재료를 고루 이용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음식에 담기는 것인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해 다양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지리적 특성과 음식이 곧 약이라는 의식동원 사상에 따라 제 고장에서 난 식재료를 다양한 조리법을 활용하여 발전시켰다는 지리적, 기후적 특성까지 더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다채로운 음식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피되기도 하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다양한 메뉴들로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 또한 한식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식재료를 자랑한다. 그중 뿌리채소는 땅속에서 자라 은의 기운이 많다고 하여 우엉이나 연근 등 뿌리채소를 많이 먹으면 집중력을 높이고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다.

연잎밥은 사찰에서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즐기던 음식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오장을 다스려준다고 하는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하엽은 성질이 치우침이 없으며 맛은 쓴맛이고 독이 없으며 효능은 혈리를 치료하고 태아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나쁜 피를 제거한다’고 한다. 연잎밥은 여름에도 쉬이 상하지 않으며 연잎의 향이 냄새를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우엉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압을 내리는 효과가 있어서 고혈압, 동맥경화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으며 필수 아미노산, 아르기닌 성분을 다량 함유하여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주며 뇌를 튼튼하게 하고 체력을 강화시켜주는데 효과적이다. 이 외에도 생리불순과 생리통, 간 기능을 회복시키고 강화시켜주며 숙취해소에 탁월하고 면역력 강화, 방광염, 습진, 두드러기 등에도 효과가 있다.

마는 필수 아미노산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여 정력강화 및 원기회복에 효과가 있으며 기억력을 향상하고 두뇌활동이 활발하도록 도와주는 효능이 뛰어나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단백질과 디아스타제 성분이 풍부하여 나빠진 폐 기능을 회복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고 당뇨병 개선 효과도 뛰어나다고 한다.


화창한  가을. 자연과 더불어 지나온 날들을 되짚어보고  나은 삶을 위해  박자 쉬어가는 소풍을 준비하며  연잎밥과 우엉잡채, 서여향병이라는 메뉴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도시락을  보는 것은 어떨까? 담음새만 달리한다면 얼마든지 야외에서도 먹기 좋은 음식들이다.





연잎밥

[재료 및 분량]

- 연잎 4장

- 찹쌀 3½C, 검은콩 20g, 연자육 25g

- 붉은팥 20g, 팥 삶는 물 3C

- 밤 4개, 대추 4개, 은행 8개, 잣 ½T

- 소금물 : 소금 1t, 밥물 ¾C

- 찌는 물 15C


[만드는 법]

1. 연잎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는다.

2. 찹쌀과 검은콩, 연자육은 깨끗이 씻어 2시간 정도 불린 다음 찹쌀과 검은콩의 물기를 빼고 연자육은 껍질을 벗겨 물기를 뺀다.

3. 붉은팥은 씻어 일어 물기를 뺀다.

4. 밤은 껍질을 벗겨 4~6 등분하고 대추는 면포로 닦아서 살만 돌려 깎아 6 등분한다. 은행은 껍질을 벗기고 잣은 고깔을 떼고 면포로 닦는다.

5. 냄비에 붉은팥을 넣고 물을 부어 센 불에서 올려 끓으면 팥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냄비에 붉은팥과 삶는 물을 붓고 센 불에 올려 끓으면 중불에서 30분 정도 삶아 체에 밭친다.

6. 찹쌀과 검은콩, 연자육, 붉은팥, 밤, 대추, 은행, 잣을 한데 넣고 고루 섞어서 연잎에 1인분씩 나누어 넣고 접어 싸서 꼬치로 고정한다.

7. 찜기에 물을 붓고 센 불에 올려 끓으면 연잎에 싼 재료를 넣고 20분 정도 찐 다음 연잎을 펼쳐서 소금물을 고루 뿌리고 주걱으로 섞은 다음 다시 싸서 30분 정도 더 찐다.          



우엉잡채

[재료 및 분량]

- 우엉 300g, 식초물 : 물 3C, 식초 1T

- 물 5C, 소금 ½t

- 우둔 100g

- 양념장 : 간장 ½t, 설탕 ½t, 다진 파 ⅓t, 다진 마늘 ¼t, 참기름 ¼t

- 청고추 1½개, 홍고추 ½개

- 식용유 1½T

- 간장 1T, 설탕 1t, 통깨 ½T, 참기름 ½T


[만드는 법]

1. 우엉은 씻어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길이로 채 썰어 식초물에 10분 정도 담갔다가 물에 헹구어 체에 밭친다.

2. 쇠고기는 핏물을 닦고 우엉채 길이에 맞춰 채 썰고 양념장을 넣고 양념한다.

3. 청·홍고추는 씻어 길이로 반을 갈라서 씨를 빼고 우엉채 길이에 맞춰 채 썬다.

4. 냄비에 물을 붓고 끓으면 우엉을 넣어 데쳐서 체에 밭친다.

5. 팬을 달궈 식용유를 두르고 쇠고기를 넣어 중불에서 볶다가 우엉을 넣고 더 볶은 다음 간장과 설탕을 넣는다.

6. 청·홍고추와 통깨, 참기름을 넣고 살짝 더 볶는다.          



서여향병

[재료 및 분량]

- 마 300g, 찌는 물 10C

- 꿀 4T

- 찹쌀가루 ½C, 소금 약간

- 식용유 3T

- 잣가루 6T


[만드는 법]

1. 마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어슷 썬다.

2. 찹쌀가루는 소금을 넣고 체에 내린다.

3. 찜기에 물을 붓고 센 불에 올려 끓으면 마를 넣고 찐다.

4. 찐 마를 꺼내 한 김 나가면 꿀에 넣어 10분 정도 두었다가 체에 밭친 후 찹쌀가루를 앞뒤로 입힌다.

5. 팬을 달궈 식용유를 두른 후 마를 넣고 약불에서 뒤집어가며 익히고 잣가루를 묻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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