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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Oct 02. 2021

추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지금이야 일상적으로 먹을 것이 널린 풍요의 시대이지만 명절이나 제사, 집안 어른의 생신날에나 고기며 푸짐한 음식들을 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과일이며 전이며 어린아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풍성했던 추석은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날이었고, 며칠 전부터 장을 오가며 짐보따리를 나르는 엄마를 보면서 잔뜩 기대감에 부풀곤 했었다.

8남매를 둔 시부모의 맏며느리로 집안의 큰 행사들을 척척 해내는 엄마가 시집오기 전에는 손수 밥 한번 안 하던 귀염 받는 막내딸이었다는 사실은 철이 들고 난 후 안 사실이고 타지로 나가 살던 아빠의 형제들이 명절을 맞아 속속 모여들기 전에 딸린 식구들 수에 맞춰 많은 양의 어지간한 음식들은 다 장만해놔야 하는 수고 또한 그때는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맛있는 음식이 많고 친척들이 오시면 용돈이 생기고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새 옷이 생기는 날이라 나에게는 마냥 신나는 날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의 형제분들과 사촌들까지 옹기종기 모여서 송편을 빚는 재미 또한 각별했다. 부엌에는 얼씬도 않는 남자 어른들이 왜 송편은 꼭 같이 빚는 것인지 의아했지만 으레 그러는 것이라 했고 출신지역이 서로 다른 작은 엄마들의 다양한 송편 모양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나중에 예쁜 딸 낳겠다는 칭찬이 좋아서 꼭꼭 눌러가며 모양 잡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었다.


추석은 말 그대로 가을 저녁, 즉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으로 가을의 한가운데 달,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의미에서 연중 으뜸으로 꼽히는 명절이다. 그만큼 이름도 다양하여 순수한 우리말인 한가위, 가위가 있고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중추(中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로 불리기도 한다.

예로부터 농경사회였던 우리 민족에게 수확 이후 맞게 되는 추석은 풍요의 상징 그 자체였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버텨내고 농사를 시작하는 봄과 농작물이 자라나는 여름을 거쳐 익어가는 가을이 오면 곧 있을 추석을 지낼 곡식이며 과실들이 넉넉하게 마련되고 제일 먼저 신과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과 내년의 풍작을 기원하는 간절함을 예로서 나타냈던 것이다.     


추석과 관련된 속담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농사가 마무리된 이후로 일이 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먹거리도 풍성하니 늘 이날 같기를 기원하는 의미이겠으나 어린 날의 나에게는 억지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사촌들과 어울려 뛰어다니고 먹을 것이 많았던 이유로 특히나 공감되는 이야기였지 싶다. 이제 명절을 간절히 기다리던 순수한 마음은 사라졌지만 사시사철, 인생의 통과의례 속에서 피어난 우리의 식문화에 대한 자긍심 내지는 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사명감이 더해져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처럼 풍족한 먹거리 속에서 살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 다양한 산업의 발달은 농작물의 대량생산과 원거리 배송, 편리한 식생활 등의 변화를 가져다주었지만 제대로 된 건강한 먹거리의 부족이라는 부정적 현상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직거래나 협동조합 같은 대안적 형식의 식재료 유통이 시도되고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업화의 흐름에 맞추어진 먹거리 홍수 속에서 풍족하지만 예전보다 못한 음식들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처럼 제 땅에서 난 식재료만 먹고 살기는 무리라 하더라도 되도록 자연에 가깝게 키워지는 값진 것들을 제대로 대우해주는 소비자의 인식들이 번져갈 때 우리의 식생활 또한 더 건강해지게 될 것이며, 잠시나마 요리를 공부했던 나 또한 그 흐름에 힘을 보태려 애쓰고 있다.


한식의 경우 그 어떤 나라의 음식보다 다양한 곡류와 채소를 사용하며, 균형 잡힌 영양섭취를 가능하게 하므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들이야 늘 먹는 음식이라 특별할 것 없이 생각되기도 하지만 음식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조상 대대로 먹어오던 식생활, 나아가 식문화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다양한 음식의 가짓수만큼이나 그에 얽힌 이야기들도 무궁무진하여 때로 놀라기도 하고 감탄하고 공감하고 많이 변해버린 환경에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작게나마 우리 한식의 우수성을 지키고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족했기에 더 감사할 줄 알았던 그 시절, 추석 즈음에는 제철 맞은 귀한 식재료들 덕분에 어느 때보다 풍성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다양한 곡류와 견과류, 과실을 이용해 짓는 영양밥, 땅이 품은 알이라 할 만큼 영영이 뛰어난 토란으로 탕을 끓이고 한방에서 사삼이라 부르는 더덕구이와 함께 건강한 우리 밥상을 차려내 보자.





영양밥

[재료 및 분량]

- 멥쌀 2C, 찹쌀 ½C, 밤 6개 대추 5개, 호두 10알, 은행 10알, 물 3C

- 양념장 : 간장 3T, 고춧가루 ½t, 다진 파 1T, 다진 마늘 1t, 깨소금 1T, 후춧가루 ⅛t, 참기름 2t


[만드는 법]

1. 은행은 달궈 식용유를 두른 팬에서 껍질을 벗기고 호두는 뜨거운 물에 불려 속껍질을 벗긴다.

2. 밤은 4등분, 대추는 돌려 깎아 도톰하게 채 썬다.

3. 멥쌀과 찹쌀은 깨끗이 씻어 30분 정도 불렸다가 물과 준비한 재료를 모두 넣고 밥을 짓는다.

4. 양념장을 만든다.



토란탕

[재료 및 분량]

- 쇠고기(양지머리) 200g, 물 8C

- 양념장 : 청장 1T, 다진 마늘 1T, 후춧가루 ⅛t, 참기름 1t

- 토란 500g, 물 5C, 다시마 10g, 파 20g, 청장 1T, 소금 1t


[만드는 법]

1. 핏물을 뺀 쇠고기는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인 후 걸러서 육수를 내고 쇠고기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양념한다.

2. 토란은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삶아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3. 냄비에 육수를 넣고 끓으면 토란과 쇠고기, 면포로 닦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시마를 넣고 끓인다.

4. 청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어슷 썬 파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더덕구이     

[재료 및 분량]

- 더덕 300g, 소금물(물 2C, 소금 1T)

- 유장 : 간장 1T, 참기름 1½T

- 양념장 : 고추장 2T, 고춧가루 1t, 설탕 1T, 다진 파 2t, 다진 마늘 1t, 깨소금 ½T, 참기름 1T, 물 ½T

- 식용유 1T


[만드는 법]

1. 더덕은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어 길이로 반을 갈라 펴고 두꺼운 것은 저민다.

2. 준비된 더덕은 20분 정도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빼고 물기를 닦은 후 방망이로 두드려 편다.

3. 더덕에 유장을 바르고 20분 정도 재운다.

4. 달궈진 석쇠에 식용유를 바르고 더덕을 얹어 양념장을 덧발라가며 앞뒷면을 고루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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