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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Nov 05. 2021

입동

겨울의 시작

한식은 시절식이라 하여 계절과 절기에 맞는 다양한 음식들을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에 맞춰 자연에 순응하는 우리 민족의 삶이 음식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인데, 먹는 것이 그대로 약이 되는 약식동원 사상과도 연결되어 최상의 조건일 때 그 식재료가 가진 맛과 영양을 그대로 흡수하도록 하는 현명함을 보인다.

시대가 많이 바뀐 지금,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식재료를 만나볼 수 있고 편리함과 간편함에 따라 식문화도 많이 달라졌지만 나는 옛날 우리 조상들의 현명한 삶의 모습을 좇고자 노력한다. 투박하고 느리지만 익숙한 자연의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소중하게 삶에 적용할 줄 알았던 그 순박함이 숨 가쁘게 돌아가며 빠르게 변하는 일상에 지쳐가던 내 마음에 큰 충격과 울림을 주었고 천천히 중요한 것들을 챙기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덕분에 격동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살짝 비켜나 옛 전통들이 깃들여진 모습을 보며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시기나 절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오래도록 전통을 이어갔으리라 짐작하지만 절기가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준비들을 하고 음식을 나누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이름도 낯설고 중요한 명절도 아닌 무슨 날이 달력의 월마다 표기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여 여쭤보면 엄마는 속 시원한 대답 대신 그날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며 바삐 손을 놀리셨다. 짐작컨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대대로 그리해왔기 때문에 엄마에게도 으레 그리해야 하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인 입동(立冬)은 특별히 명절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겨울로 들어서는 날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겨울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입동 무렵 김장을 시작하고 농가에서 고사를 많이 지냈다.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해 고사를 지내고 나면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며 이웃들 간에도 나누어 먹었다. 입동 무렵의 미꾸라지들은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나눠 먹기도 했다.

다른 찬들이 풍성하지 않은 탓이었는지 그때는 집집마다 김장을 참 많이도 했었다. 마당에 가득 쌓인 배추며 무를 대체 언제 다 먹나 해도 그 이듬해 김장 전에는 동이 나곤 했다. 오늘은 누구네 김장, 내일은 누구네 김장하며 서로 손을 보태는 엄마들의 품앗이도 기억나고 그런 날에는 꼭 수육을 삶아 남은 배추 속이나 새로 담금 김치와 함께 탁주 한 사발 하시던 아빠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김장철 동안 밥상에는 온갖 김치의 향연이 벌어진다. 엄마들의 품앗이 덕분에 동네 집집마다의 김치가 올라 누구네 김치가 잘 됐더라, 누구네 김치는 짜더라 하며 품평도 하고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김장이라 해도 워낙 포기수가 많이 줄어 예전만큼 큰 일은 아니지만 그때는 며칠에 걸쳐 치러내던 큰 집안 행사였던 것이다.

수확이 끝나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삼촌들을 따라 논두렁을 다니며 미꾸라지 잡기를 했었는데 이제와 보니 그게 입동 무렵이었던가 보다. 빨간 대야에 잡아온 미꾸라지를 넣고 소금을 한 바가지 뿌리면 대야를 탈출하려는 양 난리법석이 일어나는데 몇 번 물을 갈아 씻어내서 마당 한켠에 걸린 큰 솥단지에 장작불을 태워 추어탕을 끓였다. 동네 어르신들이 오셔서 같이 드시곤 했는데 이것도 아마 전해 내려오던 풍습 중 하나인 모양이다.


문헌들을 찾아보면 사라져 가는 우리의 미풍양속들과 그 안에 얽힌 음식문화들이 많이 있다. 바쁘게 돌아가며 많이 달라져버린 시대에서 그것들을 다 지켜내며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찬란한 문화들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삶의 길을 걸어간 어르신들을 대접할 줄 알며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천천히 자연과 인생을 즐길 줄 알았던 그 넉넉함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주변 돌볼 새 없이 내 것 하나 더 취하는 것이 중요한 삶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행복들이 곳곳에 배어있는 것이다.


추어탕은 뼈와 내장을 버리지 않고 통째로 삶아 그 국물에 건지를 넣고 끓이므로 영양 손실이 전혀 없고 우수한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이 풍부하여 초가을에 먹으면 여름내 더위로 잃은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미꾸라지를 완전히 삶아서 보이지 않도록 으깨서 만드는 법과 산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이는 법 두 가지가 있는데 옛 문헌에는 날두부와 산 미꾸라지를 함께 끓이면 미꾸라지가 뜨거워서 찬 두부 속으로 기어들어가 약이 오른 채 죽어버리는데 이를 ‘두부추탕(豆腐鰍湯)’이라 한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겨울철 무는 인삼에 비할 만큼 그 영양이 우수하며 맛 또한 최상에 이른다. 음식의 소화 흡수를 촉진하고 풍부한 식물성 섬유소가 장내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역할을 하며 해열 효과와 기침이나 목이 아플 때도 효과가 있어 한방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이처럼 제 철을 맞은 무를 이용해 간단하면서도 목 넘김이 좋은 무나물을 준비해보았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떡은 철마다 또는 각종 경조사 때마다 이웃과 정을 나누는 매개체였고 그중에서도 시루떡은 가장 많이 해 먹는 친근한 떡이었는데 붉은팥 시루떡은 지금까지도 이사한 다음 이웃에 두루 돌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멥쌀가루에 삶은 팥을 켜켜로 얹어서 쪄서 고사나 이사 등 액막이 때 쓰이는 우리나라 대표 떡이자 입동에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요란스레 무슨 날이라 챙기지는 않더라도 때에 맞춰 최상의 조건을 갖춘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해 먹는 것은 입맛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적절한 때에 몸에 좋은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의 전통도 작게나마 지켜가는 것이므로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온 가족이 행복한 밥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추어탕

[재료 및 분량]

- 미꾸라지 800g, 소금 2T, 물 14C

- 향채 : 양파 1개, 파 40g, 마늘 40g, 생강 30g

- 양념장 : 된장 3T, 고추장 2T, 다진 파 1T, 다진 마늘 ½T

- 삶은 우거지 200g, 들깻가루 ½C, 후춧가루 ¼t. 소금 ½T, 산초가루 ½t


[만드는 법]

1.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서 뚜껑을 덮고 해감을 시킨 후 깨끗이 씻어 체에 밭친다.

2. 향채는 손질해 깨끗이 씻고 양념장을 만들고 우거지는 깨끗이 씻어 적당한 길이로 자른다.

3. 냄비에 미꾸라지와 물을 넣고 센 불에서 끓으면 중불로 낮춰 1시간 정도 삶다가 향채를 넣고 약불에서 더 삶은 후 체에 내려 미꾸라지 국물을 만든다.

4. 미꾸라지 국물에 양념장을 넣고 센 불에서 끓으면 삶은 우거지를 넣고 중불에서 더 끓이다가 들깻가루와 산초가루, 후춧가루, 소금을 넣고 조금 더 끓인다.

* 부추와 깻잎을 곁들여도 좋다.



무나물

[재료 및 분량]

- 무 ⅓개

- 양념 : 소금 1t, 다진 파 ½T, 다진 마늘 ¼t, 생강즙 ½t

- 통깨 ½t, 참기름 ½T


[만드는 법]

1. 무는 손질 하여 깨끗이 씻어 채 썬다.

2. 양념을 넣고 고루 무쳐 잠시 둔다.

3. 팬을 달궈 무를 넣고 뚜껑을 덮은 후 가끔 저어가며 중불에서 볶다가 약불로 낮춰 조금 더 볶는다.

4. 통깨와 참기름을 넣고 잠시 더 볶는다.



팥시루떡

[재료 및 분량]

- 멥쌀가루 1½C

- 소금 1.5g, 물 2T

- 붉은팥 ½C, 데치는 물 1C

- 삶는 물 3C, 소금 1.2g

- 찌는 물 10C


[만드는 법]

1. 멥쌀가루에 소금을 넣고 체에 내린 다음 물을 붓고 고루 비벼 다시 체에 내린다.

2. 붉은팥은 깨끗이 씻어 일어서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3. 냄비에 붉은팥과 데치는 물을 넣고 센 불에서 끓으면 팥물을 버리고 다시 삶는 물을 부어 센 불에서 25분 정도 삶다가 중불로 낮춰 25분 정도 더 삶아 붉은팥이 익으면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4. 냄비를 달궈 삶은 붉은팥을 넣고 중불에서 볶아 수분을 날린다. 팥이 따뜻할 때 소금을 넣고 팥알이 반 정도 으깨지도록 방망이로 찧어 팥고물을 만든다.

5. 찜틀에 젖은 면포를 깔고 떡틀을 올린 후 팥고물 반을 펴서 깔고 그 위에 멥쌀가루를 넣고 수평으로 한 다음 나머지 팥고물을 고루 펴서 덮는다.

6. 찜기에 물을 붓고 센 불에서 끓으면 찜 틀을 올려 김이 오르고 15분간 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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