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지 않았지만 여유는 없는 아침 출근길. 오늘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간다. 3층에서 숨이 차올라 슬쩍 계단 위를 보고서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려버린다. 헥헥거리며 “안녕하세요~”라고 크게 인사하고 의자에 앉음과 동시에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컴퓨터 모니터에 메모가 와 있다는 알림 숫자가 뜬다. 나는 메일함, 문서함, 카톡이며 문자까지 확인하지 않아 숫자가 떠 있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숨 돌릴 새 없이 메모부터 하나하나 클릭해서 확인한다. 국장님 일정 메모 하나, 회의록 작성 메모 하나, 그리고 오늘 출장 관련한 공지 메모다.
「오늘 15시 예정대로 국회 A위원실 B 비서관에게 20년 입법계획(안) 대면 설명 있습니다. 14시 45분까지 위원실 앞으로 늦지 않게 도착해 주세요.」
이 출장은 이틀 전에 잡혔었다. 재확인차 법안 총괄 사무관이 보낸 메모였다. 읽어보면 다 알 수 있는 간단한 법 개정안인데 무슨 대면 설명까지 하라는 건지. 오후 일정을 다 잡아먹을 그것도 금요일 오후 국회 출장이라 살짝 짜증이 났다. 돌아올 시간이면 퇴근 시간과 겹쳐 차도 많이 막힐 터였다. 그렇게 되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으로 치킨을 배달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충분히 검토되었건만 지난 국회 회기 내 처리되지 않아 폐기된 법안이라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터였다.
점심 먹고 설명자료 출력해서 여유 있게 여의도로 출발했다. 사당역을 통과해야 하는 경로라서 빨라야 1시간 10분이다. 항상 차가 가득한 국회 둔치 주차장에 꾸역꾸역 주차를 하고 의원회관으로 걸어가는 길이 그렇게 멀진 않지만, 가는 길이 그늘이랄 것도 없는 데다 습하고 더워 금세 땀이 가슴골 사이로 주룩 흐르는 게 느껴진다. 위원실 앞으로 가니 전체 법안 총괄 담당자가 먼저 와 있고, 내가 두 번째다. 뒤이어 사람들이 도착해 의원실로 들어가니 C보좌관과 B 비서관은 우리를 맞이했다. 보통 국회의원실에는 4급 보좌관이 1~2명, 5급 비서관 2명, 6~9급 비서 4명이 있다. 법안 관련 업무는 보좌관과 비서관의 업무다.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비서관인 B는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설명은 듣는 동안 질문을 하기도 하는 걸로 봐선 보고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한데, 그 눈빛은 묘하게 살짝 풀린 듯한 느낌이어서 자꾸 눈길이 갔다. 그렇게 나는 다른 법안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그녀를 관찰하게 되었다. 머리도 부스스하고 화장기도 거의 다 지워졌는데, 볼펜을 가볍게 흔들고 있는 손 끝에는 젤 네일이 오로라 빛으로 화려하게 올라와 있었다. 손 끝까지 신경 쓰는 이가 화장이 지워져도 신경 쓰지 않고 안경을 코 끝에 걸친 상태가 상당히 아이러니해 보였다.
지금 저 B 비서관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다 이겠지만, 결코 지금 이 모습이 그녀의 본모습은 아닐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자신에게 영향조차 미치지 않을 법 조항을 가지고 한 줄로 시름하고 있지만, 퇴근 후에는 오로라빛 젤 네일처럼 화려한 취미생활이 있을 수도 있겠지. 아니 주말에는 나처럼 글쓰기 수업에 나가는 그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뜬금없는 호기심으로 누군가가 못 견디게 궁금해지더라도 내가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해서 지금의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끝내 내가 알 수는 없는 것은 미련 없이 끓어내지만 그렇지 않았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의 괴리가 컸던 10대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계에 답이 있다고 믿었다. A+B=C와 같이. 나와 그 애와의 사이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H와는 6학년 때 한 반이었고,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내내 같은 교복을 입었다. 6학년 때 학교와 내가 다니던 음악학원 사이에 H의 집이 있었던 관계로 학원을 안 가는 토요일 빼고 5일 중 3일은 H의 집에서 놀다가 느지막이 학원을 갔다. H의 엄마는 일을 하고 계셔서 낮에 H의 집에는 우리뿐이었다. 간식도 먹고, 브루마블도 했고, H가 꺼내놓은 화투로 고스톱도 그때 처음 배웠다. 추첨제로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아 3년 동안 한 반이 된 적이 없어 아주 가까이는 아니었어도 서로 격 없이 왕래하는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울산은 그 당시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인문계는 같은 그룹이어서 1, 2 지망 학교가 의미가 없었다. 1 지망 학교에 떨어지면 다른 시의 인문계 사립학교를 찾거나 실업계를 가야 하는 시스템이라 우리 모두는 대입만큼 고입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사히 1순위 1 지망인 같은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드디어 1학년 때 우린 한 반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3월의 긴장감은 아직도 기억한다. 낯선 학교와 낯선 아이들 서로 말을 트기 전까지 숨 막히는 자습시간을 지나 쉬는 시간마다 H와 몇몇 안면이 있는 아이들끼리 모여 어색함과 긴장감을 털어내려 애썼다. 그렇게 3월이 다 가기 전 우리는 다 같이 교실 안에 있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H와 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여기서 자연스럽게라는 의미는 유에서 무로,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그러데이션 되어 색이 변해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 변화과정이 적어도 나에게는 인지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서로 어울리는 친구들도 달라져 있었고 한 교실에 있지만 다른 그룹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늦봄의 어느 날, 왁자지껄 도시락 까먹느라 정신없는 2교시 쉬는 시간이었다. 무엇인가에 대해서 실없이 말하고 깔깔대며 웃다가 뒤쪽에 앉아있던 H를 쳐다보며 내가 동의를 구하듯 말을 걸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심지어 H는 웃음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다. ‘뭐지? 내 말을 못 들은 건가?’ H 주변을 빠르게 훑었지만, H가 대화하고 있던 상대도 없었고 내가 다른 애에게 이야기했다고 착각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분명 나를 피한 것이었지만 나도 못 모르는 척 딴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 순간 갑자기 파란색인 줄 알았던 것이 빨간색으로 변해있었다는 것을 알아챘고 난 몹시 당황했다. 그 날 이후 그동안 신경 쓰이지 않았던 H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생각해보면 H와 말 한마디 안 하고 집에 가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시도해 보았지만 결론은 H가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무슨 일이지? 우리에게 나도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왜?’ 예상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관계에 있어서 특히 참을성이 없었던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H에게 내 마음과 기분을 알리고 이유도 물으려 편지를 썼다. ‘우리 오래된 친구잖아. 나는 네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요즘 나를 피하는 것 같이 느꼈다. 서운하다. 혹시 내가 너에게 실수한 게 있느냐. 있다면 알려주면 사과하고 고쳐보겠다....’식으로 썼으리라. 꾹꾹 눌러쓴 편지를 H 책상에 올려놓고 난 이제 H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다고, 적어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이 더딘 때였기에 하루하루 인내의 시간을 보내며 3일째 되던 날 책상 서랍에 들어있는 얇은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나는 2~3장의 편지지를 접어 두툼한 편지를 보냈는데, 딱 봐도 편지지 한 장이었다. 이미 내 기대와는 다른 답장 이리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편지를 읽었다. 역시나 편지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답장의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뉘앙스는 기억한다. ‘그랬니? 딱히 문제인 줄 모르겠고 서운한 것도 없다. 네가 실수한 것도 고칠 것도 없다. 해결할 일은 없다.’ 단순했던 나는 정말 H가 지금 우리의 어색함을 인식하지 못하나 보다 생각했고 그 후로 몇 번을 설득하려고 노력해보다 제풀에 지쳤고, 그냥 그렇게 우리는 원래대로 각자의 그룹에서 잘 지냈다.
지금 와서 H의 답장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나와 관계를 회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니 자기를 가만히 놔두라는 말이었다. 분명 나에게서 마음 상하고 서운했을 지점이 있었을 테지만 그 당시의 H는 나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보다는 버리기로 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악의를 가지고 대한 적도 없었고, 적을 만들기 싫어했던 나라고 생각했는데. H는 나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2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답답하고 억울한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H가 나를 친구로 포기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지금의 나라면 H에 대해서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저 B 비서관에 대해 생각한 것처럼 내가 먼저 끓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질문을 해도 응답이 없지만, 그래도 17살의 나는 A+B=C가 된 이유를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등식으로 정리될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B 비서관은 오늘 왜 저리 피곤한 걸까, 결혼을 했을까, 화장은 원해 안 하는 사람일까, 네일은 어디서 했을까, 원래 성격도 보기만큼 까칠할까,.. 1년 이내 다시 볼 확률이 1%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저 B 비서관에게 잠시 들었던 나의 궁금증들은 생각함과 동시에 증발해 사라진다. 내가 끝내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결코 알 필요도 없는 것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