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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Nov 18. 2022

청춘의 웃음소리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유난히 건물의 색이 하얗다.  마치 사방이 온통  눈처럼 하얘서 더 미쳐버릴 것 같은 정신병원을 연상시켰던 나의 학교... 그 옆의 거무죽죽하다 못해 비가 오는 날이면 을씨년스러운  남학교는 철조망 없는 감옥을 연상시켰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묘한 조합으로 인해 그  남학교와 우리 여학교는 찰떡궁합이라고 하였다.


수업시간에 장난기 많은 선생이 아이들을 향해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니들은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옆에 여학교는 내버려 두고 왜 다른 학교 여고생들하고 미팅을 하냐?"


남학생이  우스꽝 스러운 질문에 더 우스꽝스러운 답을 외쳤다.


"선생님! 옆에 학교는 조강지처입니다."


조강지처는 고이 모셔두고 굳이  먼 곳까지 가서 여학생을 만난다는 남학생들의 우문우답으로 교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여학교도 마찬가지로 지척에 이 남학교를 두고 정작 고개 넘어 있는 다른 남학교와 자매학교가 되었다.

우리 학교와 그 학교는 배구 명문으로 배구 시합이 열리면 서로 응원하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계에서는 역시나 서로의 이성친구가 가장 많은 학교는 그래도 이웃학교였다.

감옥과 정신병원.... 상반될 것 같은 이미지지만 묘하게 어우러지는 관계다.


하교시간이 되고 여기저기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여학교와 남학교의 조우 시간이 되면, 그 일대의 거리는 온통 웃음소리와 싱싱한 젊음의 활기로 넘쳐 나있었다.

철도가 지나가는 굴다리를 두고 일직선상으로 위치해 있었던,  도시 속 작은 동네의  거대한 이 두 학교의 아침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은 다른 학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아침이 되면 거대한 물결처럼 몰려드는 젊은 청춘들에 동네는 활기를 뛰고, 이 청춘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밤이 되면 어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주변이 고요해졌다.


평소 자신이 눈여겨보던 남학생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고백하지 못해 가슴앓이만 하던 남학생과 여학생의 심장은, 뽀송뽀송 솜털이 난 작고 뽀얀 얼굴로 모든 피가 모여 발그스름하게 붉어진 굴은   남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쿵쾅됐다. 풋풋한 풋사과 같은 싱그러움이 공기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진행 관계에 있는 친구들 역시, 그들의 연정이 나타나면  여유 있는 눈짓을 지어 보이지만, 여전히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그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눈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외의  사귀는 사람 없는 외로운 청춘들은 허전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아무 이유 없이 거침없는 웃음으로  깔깔거리면서 자신들의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의 한 지점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 역시도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소 짓궂은 장난으로 활기차게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쉬는 시간에 마음에 맞는 친구와의 손을 잡고 화장실을 가는 발걸음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던 우리들의 소녀시대.

그러나, 같은 장소의 같은 시간대라고 해서 같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갔을까?



고등학교 1학년 신입생 반 배정은 이미 겨울 방학을 해 결정이 되어있었다. 통보받은 대로 각자의 반을 찾아들어 가면 되는 것이었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친구들이나 새로운 선생님에 대한 기대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

  어떤 선생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어떤 친구들을 사귀느냐에 대해서 우리들의 학창 시절의 표정이 결정지어지기 때문이다. 학교생활 내내 우울한  얼룩이 지느냐,  아름다운 추억으로 느냐는 결국, 주변의 사람에 따라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좋은 선생을 만나면서 인생의 방향이 정해 질 수 도 있고, 좋은 친구를 만남으로써 학창 시절 내내 학교생활의 표정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픈  시련은 기꺼이 경험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시련도 성숙할 수 있는 계기를 다지만,  그 시련으로 자신의 평생을 암울하고 힘들게 보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이 시련이 될지 달콤한 추억이 될지 알 수 없는 기대감을 가지고 각자의 반을 찾아 들어갔다.  



각자의 교실로 찾아들어가는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3월 초.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겨울보다 더 칼칼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는, 새로운 기대와 희망이 시작되는 어린 소녀들의 뜨거운 가슴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지하철 2호선이  개통이 되고 난 첫해부터,  이제까지 각자의 거주지에 위한 학교 배정이, 지하철 2호선 주변의 주소지로 확대되면서 무작위 추첨으로 인해, 이 학교로 배정받은  아이들의 주소지는 각양각색이었다. 심지어는 상왕십리에서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하철 2호선의 한 역을 담당한다는 구역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나와 나의 중학교 시절  단짝 친구들은 다행인지 학교 근처에 살았다. 지하철과는 관계없이 걸어서도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주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중학교부터 다녔던 이 학교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지하철로 다니는 교통비도 부담이 적은 비용은 아니었기에,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안심이 되는 일이기도 하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은 재단인 학교는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과 여유는 조금은 타 지역에서 온 아이들에게 작은 거만함을 유발하기는 했다. 안방마님이라도 된 듯한 근본 없는 거만함이었다. 그렇다고 그 거만함이 공부 성적과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친구들이 바뀌고 중학교 건물에서 고등학교  건물이 달라졌다는 것뿐이지 전혀 낯설 이유는 없었다. 친구 또한 나는 친한 친구들이 다 이 학교로 배정받았기에 기를 쓰고 친구를 만들 유도 없었다. 나의 새로운 고등학교 생활은 이렇게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물 흐르듯 편안한 학교 생활이 다른 학생에게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통로였다는 사실도 잊은 채....




중학교 시절 삼총사였던 보영이와 유진은 각자 1층의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다. 셋 중에 나만 2층 구석 모퉁이에 떨어져 8반에 배정이 되었다. 반 배정이 확정되고 나서  나만 홀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에 조금은 의기소침해졌지만, 나를 포함한 1학년 8반은 그 해의 꼴통반이 될 정도로 명물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똘기 충만한 친구들이 이 반으로 굴러들어 와 또 다른 똘기 충만한 무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홀로 떨어진 나를 위해 보영은 점심시간이 되면 , 밥순이라는 별명답게 길고 호리호리한 자신과는  정반대인 뚱뚱하다 못해 미어터질 것 같던 도시락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와 나와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새로운 나의 친구들도 그런 보영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 누가 보면 보영이는 8반의 아이인 줄 알고 있던 아이들도 생겨났다.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여학교의 밥 먹는 시간은  마치 요조숙녀들처럼 조용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해가 않은 어두운  새벽, 잠이 덜 깬 채  지하철을 타고 등교를 하는 친구들은 아침밥을 거르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자율학습을 견디려면 도시락이 하나로는 모자라 두 개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2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도시락 뚜껑을 여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작한다.

오늘은 무슨 반찬일까 궁금증이 발동하기도 하고,  밥 위에 얹혀 있는 계란 프라이가 보이면,  밥과 계란만 잽싸게 덜어 먹고 반쯤 남아있는 밥 위로 뚜껑을 닫아버린다.

그 나머지 반은 점심시간이 되면 또 삼삼오오 모여서 먹을 일부인 것이다.


점심시간은 감금된 시간에서 해방되는 꿀맛 같은 휴식이다.

하루 종일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일상 중에 단맛 같은 휴식을 가져다주는 일한 시간대인 이 30분의 자유.. 어젯밤에 일어난 시시콜콜한 일들부터 시작해,  누군가에게 일어난 루머까지 모든 수다가 이루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수다의 중심에 있던 나를 포함한 그룹은 쾌활하기로는 우리 반에서 일등이다.

여덟 명이 빙 둘러앉아 그 반의 중심인양 밥을 먹는 우리 안에서도 성향은 나누어졌지만,  그런 걸 따지기에는 아직 우리들은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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