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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Nov 08. 2022

내게 너무 멋진 그녀

 터키!!!

짤막한 카톡 하나가 왔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웬 터키? 했을 테지만 그녀라서 역시!!!

라는 말이 나왔다.


20년 전 아주 짤막한 인연을 시작으로 끊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인생지기다.

삶의 활기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서 쇼킹했던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보다 자신이라는 자아에 더 열중했다.

이혼할 때 나누기 힘들게 하기 위해서 아이 셋을 낳았다는 그녀는 아이들을 그야말로 방목으로 키웠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라고 착각을 일으킬 만큼 길을 가다가도 바닥을 뒹굴어서 눈앞에서 보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모습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던 그녀의 태도였다.

이상했다. 친절했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녀!!!

지나치게 밝았다. 그리고 지나치게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모든 것이 긍정적이었다. 짜증 나리만치.....

그녀에겐 맛없는 음식이 없었다.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그런 그녀가 수요일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의 유일한 비밀이었다.

건강한 허벅지로 매일 수영을 하고 테니스를 치던 그녀가 운전을 못해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탔다.

미대 출신답게 나이에 맞지 않는 튀는 의상으로 더욱 활기차게 살았다.

아이 셋 중에 미취학 아동이 있었음에도, 미혼인 나와 12시가 다 되도록 수다를 떨었던 내겐 너무 이상했던 그녀.

그녀의 고향인 원주에 있는  치악산을 가던 중, 치악산 등산로가 막혀 돌아오는 길에  막걸리를 마시고,  둘이 헬렐레하며 두 팔을 벌리고 휘청거리며 치악산을 내려왔던 , 그날의 몽롱함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항상 생각나는 장면이다.


나의 혼식을 끝으로  치열한 결혼생활로 인해 그녀와의 인연도 단절되었다. 종종 나의 불행한 소식만 간간히 전할 뿐 이렇다 할 왕래는 없었다.

다만, 한국에 들어갔을 때 아직 어린 내 아이들을 위해 놀이공원 티켓을 구해 놓고,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등산가방 한가득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 온 무심한듯한 세심함을 가진 그녀였다.


나 아무래도 공황장애 같아요!!!

운전을 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비밀이 풀렸다. 그녀가 운전을 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나를 달래기 위해 그녀의 비밀이 열렸다. 나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이해했던 그녀. 모든 것이 괞챦을거라고 위로해 주는 그녀. 자신이 극복했던 과정을 설명해주는 그녀.


아주 짧은 시기 그녀와 함께 일을 했던 호칭을 여전히 사용하며, 10년의 연배 차이에도 이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나를 부르는 호칭이 여전히 선생님이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서로 존대한다.


나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고해성사하듯 그녀에게 일러바친다. 너무너무 힘들어 글을 쓸 수 없을 때 삶이 지겨워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그녀에게 말했다.


나 아무래도 우울증이 온 거 같아요!!!!


그 말에 한국과 미국 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다섯 시간이라는 시간을 나에게 붙들어 매 주었다. 나의 말을 들어주고 끊임없이 괞챦을거라는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공황장애로 인해 비행기를 탈 수 없어 십 년이 넘도록, 나의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없었다. 그 사실은 나의 향수를 더욱 자극해 한국이 너무 그리워졌다. 어린 시절 그 지긋지긋한 계단이 많아 다리를 붙잡고 걸어야 했던 허름한 동네의 골목길마저도 그리웠다. 모든 것이 그리웠다. 그런 나를 위해서라기 보단 어쨌든 그녀는 유튜브를 만들어 나에게 한국의 그리움을 래주고 있다.


은퇴 후,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그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루하루가 바쁘다. 나와 함께 여행지기가 되기 위해 나의 한가로운 시간을 기다리는 그녀.

그녀의 고향인 원주에서  작은 카페를 열어 사람 해치는 것만 빼고 다해 보자는 그녀의 말이 지금의 나를 견디게 해 준다.

 

나의 가슴속 비밀까지도 유쾌하게 들어줄 수 있는 그녀

삶이란 나로 인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변으로 인해 돌아가는 것이라는 걸 알려준 사람이다.

자신의 복을 타인과 나눌 줄 아는 그녀는 진정 멋쟁이다.

그녀의 화려한 옷만큼이나 말이다.


길거리를 뒹굴던 삼 남매는 누가 봐도 멋지게 자랐다.

엄마의 늦잠으로 인해 자신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늦었던 막내아들이 어엿한 아빠가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글을 통해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의 인생길에 또 하나의 횃불이 되어 가는 길이 더욱 밝아졌다고... 감사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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