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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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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Nov 16. 2022

프롤로그

  바쁜 일상 속에 마치 필름 하나가 딱 박혀 죄수의 낙인처럼  불현듯 기억나는 장면이 생각나  소름이 쫙  돋을  때가 있다.

잊으려고 한 것도 생각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생각나는 서늘한  기억의 한 조각. 삼십 년이 훌쩍  지났건만, 흐려지기는커녕 더욱더 선명하게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 기억의  조각 안에서   항상 울부짖고 있는  가엾은 한 녀가 있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소녀의 입에서는 연신 잘못했다는 소리만 나오고 있었다. 비단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절규뿐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자신의 잘못을 빌고 있었다.

아무잘못도   없었던 억세게 재수없는  억울한 소녀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었던  억울하지 않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눈 감고 그 시간을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기억만은 그날을 너무나도 또렷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그 소녀에게는 치욕적인 시간이 끝나고 그 시간을 외면했던 우리들의 눈이 떠졌을 때,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녀의 수치를 정면으로 바라 볼 자신이 없어 곁눈질로 살짝 가느다랗게 훔쳐본 그녀의 얼굴. 그 얼굴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상처의 흔적으로 가슴이 탁 막혔을 뿐,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눈물로 범벅이 되었던 그 소녀의 퉁퉁 불어 터진 얼굴. 우리가 눈감고 애써 외면했던 그 시간을 온몸으로 받아낸 증거였다. 평생 그녀를 따라다닐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드러나있었다. 그 불어 터진 얼굴에 덮인  타인의 손자국은 분명 상처였다.


갓 청춘이 시작된 열여섯 살의 소녀.

가장 빛나야 할 아름다운 시절에 그 상처는 열여섯 살 소녀들인 우리 모두의 상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류의 흐름 속에 이끌려 할 수 없이 방관자가 됐다 헌들,  사회가 정한 규칙에선 무죄라 하더라도 도덕적인 시선에선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이익을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던 자들이 어떻게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육체의 터치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시대적 불편함에 익숙해져서 살았다. 그 익숙함은 동등하지 못한 수직의 관계에서 더더욱 두드러져,  그럴듯한 규칙으로 둔갑해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억울한  폭력이 묵인되었다. 그러나 묵인되었다 해서 불편함이 덜어지는 건 아니었다. 육체적인 익숙함이 정신적인 불편함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그 불편한 찌꺼기는 정신적인 아픔을 주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평생을 괴롭히며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였다.

그녀의 거대한 트라우마를 목격한 우리들 역시 그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트라우마의 극복 방법은 사랑과 치유에 있다.

그때, 외롭고 수치스러웠을 그 소녀에게 누구 하나 손하나 내밀어 주지 않았다. 그 외면이 나에게는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늦어버려 그날의 고사리처럼 싱싱한 손이 물기 마른 주름진 손으로 변해 버렸지만,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나의 초라하고 민망한 손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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