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스탄불의 인연

귀향

by kseniya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나의 비행시간은 평화로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11시간의 비행을 견뎌내고 드디어 이스탄불에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이 들렸다. 시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어렵고도 고난도의 수학문제가 풀렸을 때의 성취감과 같은 쾌감이 스며들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나의 여정에 대한 자신감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 이스탄불!!!

그곳에 지금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하면 나는 티르키에 항공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이스탐불을 투어 할 것이다. 너무너무 설레었다. 시간이 밤이라서 조금은 걱정스러웠지만, 밤이나 낮이나 설레는 감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야경 또한 얼마나 황홀한 경험일까!


비행기는 연착 없이 안전하게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경유하는 사람들과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사람들과의 경로가 갈라졌다.


아뿔싸!!!


너무 오랜만인가? 경유하는 곳이 아닌 이스탄불을 나가는 통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환승하는 곳을 따라나가 버렸다.

인천 공항을 벤치마킹한 공항답게 이스탄불의 공항은 넓고 화려했다.

공항 관계자들이 보일 때마다 물어보니 4시 30분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은 4시까지 도착하여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공항을 너무 돌아버린 탓인지 이미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등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는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필사적으로 공항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4시 3분이 지난 데스크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이스탄불 관광이 마감이 되어 버렸단다. 아무리 통사정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겨우 3분 늦었을 뿐인데....


허탈한 마음을 다 털어버리지 못하고 아쉬움으로 한숨 쉬고 있을 때, 여러 명의 일행이 나와 같은 모습으로 뛰어 오고 있었다. 그들 역시 안타깝게도 늦게 도착하여 나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다.

같은 아쉬움으로 대화를 하고 난 후, 서로의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에 계속 그곳을 두리번거리다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내가 가고자 했던 프로그램의 설명이 시작되자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가까운 빈자리에 앉아 계속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조금 전 헤어졌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들이 개인 투어를 하려고 하는데 버스 한 대당 300불인데 혹시 원한다면 각자 50불씩 나눠 내고 같이 투어를 하겠냐고 제안을 해 왔다.

와이낫!!!!

50불의 가치는 하겠지 싶어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공항에서 죽 치고 있기도 난감하던 차였다.

그렇게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해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그들은 고등학교 동창들이었는지 각자 사는 곳이 달랐다. 그중 한 사람만이 나와 같은 곳에 살고 있었다.

이스탄불을 경유해서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일행들이었다. 그렇게 길 위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터키인 가이드가 우리를 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가 공항을 빠져나가자마자 시작된 터키의 일상적인 운전은 너무나도 위험해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불숙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일행들의 무분별한 운전은 미국에 사는 우리들에겐 낯선 일들이며 가슴을 한 번씩 쓸어내려야 하는 광경들이었다.

그렇게 트래픽을 뚫고 나온 후.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동네 골목의 언덕길이었다.

왜 이런 곳으로 데려다 놓은 지 의아한 것도 잠시, 높은 곳에서 펼쳐진 곳에서 이스탄불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공짜 투어에서는 불가능한 경로였다.

그 시원한 광경을 뒤로하고 다시 우리들을 태우고 이스탄불에서 가장 핫한 곳인 블루 모스크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가장 가고 싶었던 곳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와 바닷물의 환상적인 조합이 궁금했던 나는... 바다가 아닌 골목골목 차가운 봄바람을 맞으며 일행을 따라 올라갔다.

그곳에 웅장하고 호려한 블루 모스크를 중심으로 많은 유적들이 즐비했다.

내가 책으로만 보고 알고 있었던 그 익숙한 이름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밤이 되자 화려한 야경이 블루모스크 사이로 휘황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영어가 되지 않는 가이드는 번역기를 돌려 열심히 트루키에 역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일행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걸음을 같이 하였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인 12시가 되도록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고,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 덕에 이스탄불의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뒷골목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이스탄불의 이름 모를 골목길을 걸어가는 중간중간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지가 않았다. 우연하게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우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기대하지 않았던 그림이 나올 때. 여행의 다른 경험이 주는 환상이 아닐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헤어져야 했지만, 각자가 찍은 사진들을 후에 교환하기로 하고 서로의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아쉬움보다는 기대이상의 만족감과 뿌듯함으로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 이어지는 인연은 아니겠지만 순간의 인연으로 삶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행복하다!!!

십수 년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이스탄불의 차가운 바람이 내 몸속의 갈증을 씻겨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