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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도착하다

귀향

by kseniya

드디어 한국이다. 도합 30시간을 걸려 대서양을 건너 산 넘고 물 건너 15년 만에 돌아온 나의 고향!

나의 이 감개무량한 귀국길을 마중 나온 사람은 가족이 아닌 내겐 너무 멋진 그녀였다.

내가 두려움에 망설이던 나의 귀국길에 공황장애로 결코 죽지는 않는다는 말로 마음을 다잡고 한국행을 부추겼던 그녀였다.

많이 힘들 것 같으면 계속 카톡으로 쉴 새 없이 말을 걸어 줄 테니, 걱정 말고 시도해 보라는 그녀의 진심 어린 격려에 나는 더욱 힘을 받았다. 아! 사람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세월이 흘렀지만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녀의 실루엣이 다가오자, 그녀 역시 나에게로 한숨에 달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외향이 변했어도, 사람의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 나의 부모님들은 내가 한국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계신다.

늙은 부모님들 심장마비로 돌아가시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부득부득 공항에 나오겠다는 구순이 훌쩍 지난 노모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자세한 날짜를 알리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그녀의 집 가까운 바닷가 근처 호텔이었다.

30시간이 넘는 여행의 여독을 잠시나마 풀고 가라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소식과 동시에 호텔을 예약해 버렸단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바닷가 근처 식당에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해물찜.. 향긋한 미나리 내음과 살이 오른 싱싱한 가리비의 쫄깃함이 입안에 가득 퍼지자 그제야 내가 한국에 있다는 실감이 났다. 바다가 바로 코 앞에 있고, 아무렇지 않게 나와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어놓은 식당에서의 자유로운 식사. 여기가 한국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로만 갈증을 해소하던 그 그리운 나의 고향이었다.

한국에서의 첫날밤은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창 밖의 익숙한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바다를 보며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 들었다.

날이 새자, 조용히 짐을 꾸려 바다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나의 보모님이 있는 곳으로 차를 돌렸다.





"딩동딩동!!!!"


현관문의 벨이 여러 번 울리고 나서야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다소 신경질적인듯한 목소리의 엄마가 불청객을 대하듯이 문을 열었다.


"엄마!!!!

나야!!!"


"누구세요?"


나를 보자마자 문을 다시 닫으려 하는 엄마를 붙잡고 다시 한번 엄마라고 불렀다.


"딸도 못 알아봐? "


전혀 예기치 못했다는 듯한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엄마는 그제야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울음과 웃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짐을 들고 현관을 들어서자, 전혀 다른 노인이 되어 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참았던 울음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으며 장난스럽게 아버지를 안았다.

그제야 찬찬히 나를 쳐다보는 두 노인네의 복받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간신히 진정시키고 나자, 엄마는 여자 둘이 뭐 팔러 다니는 사람들인 줄 알았단다.

흐르는 눈물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아구 어떻게 딸을 못 알아봐.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딸을...."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나의 일상은 이렇듯 아닌 듯 눈물을 가슴에 묻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이어 나갈 것이다.




뒤늦은 아침을 먹고 난 후, 그녀와는 다음날을 약속하고 온전히 엄마 아버지와 나의 시간이 되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모님들의 늙음!!

누구나 겪여야 할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라지만, 늙어가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늙은 사자의 힘없는 눈동자와,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이젠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두려움을 담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머금고 있었다.

보내야 하는 시간과 남아야 할 시간이 마주한 것이다.


그러나 늙은 부모에게도 자식은 활력이고 희망인가 보다.

좀 전의 눈물을 거두고 나니 엄마는 신이 나 보였다. 8년간 전화로만 안부를 물었던 딸을 눈앞에서 직접 보니 신이 나 보였다.

한국에 들어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라고, 다 해 줄 거라고 말하는 엄마! 부모다!!

그걸 날름 받아먹는 나! 자식이다!


이제 늙은 부모와 늙어가는 자식의 특별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부모를 위해 초라한 아침밥을 같이 먹을 것이고, 부모는 나를 위해 아침상을 차리고 나를 깨울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오십을 훌쩍 넘긴 막내딸의 응석이 시작되었다.

다만, 아침마다 커피냄새로 나를 깨웠던 아버지의 모닝커피 대신 나의 달달한 커피가 아버지의 늦은 잠을 깨우는 것만 달라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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