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한국에 나오고 난 후, 나의 첫 여정은 다행스럽게도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생일을 위한 여행이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를 보살피느라 바깥공기 한 번 제대로 맡지 못한 엄마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바깥바람 쐬고 싶다는 엄마의 희망대로 온천 여행을 계획하고 그 여행에 기꺼이 그녀가 동참하기로 했다.
이곳저곳을 탐색하다 가까운 거리의 강화도에 미네랄 온천인 석모도로 가기로 결정했다.
여행 당일 그녀가 자신의 낡은 차가 아닌 럭셔리하다 못해 먼지 한 톨 없는 남편의 차를 몰고 나타났다.
그녀의 남편 경덕이 아저씨는 먼지 한 톨 용납하지 않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녀는 너무나 털털한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이 편안하고 쾌적한 여행이 되기 위해 럭셔리한 남편의 차를 빌리고 나타난 것이었다.
은퇴 후, 제2의 삶을 요양원에서 많은 노인들과 생활하는 그녀는 능숙하게 엄마를 부축하고 차 안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들여보냈다.
많은 것이 느리고 불편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긍정적인 성격에 드러나듯 입가에는 항상 그녀의 나이답지 않은 싱그러움을 담고 있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렇게 세 여자의 강화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루라도 바깥바람을 쐬지 않으면 안 되는 자유로운 영혼인 그녀의 안내로 우리들의 강화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나면 틈틈이 드라이브로 한 번씩 오고 갔다는 그녀의 익숙한 안내로 엄마와 나는 호강스러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안내한 강화도의 특별한 곳은
조양방직카페!!!
생각보다 큰 규모의 소위 말하는 요새 유행하는 빈티지한 카페다. 규모가 놀랄정도로 거대한 카페라기 보단 문화시설이었다.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눈으로 이것저것 담아내려는 엄마의 담담한 눈빛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허전해하는 쓸쓸함도 함께 담고 있었다. 누구보다 좋아했을 듯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콘셉트가 이 조양방직 안에 다 들어있었다.
엄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기라도 한 듯...
"아버지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다 있네...'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가 아쉬운 모녀의 대화였다.
조양방직을 방문하며 수많은 사진을 남기고 우리는 석모도로 향했다.
말로만 들어봤던 강화도.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한 이곳이 참 많이 궁금했었던 나는 강화도가 처음이다.
사진 속의 석모도 온천은 노천 온천으로 바다와 같이 접해 있어 너무나 멋진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갔던 날은 도청에서 운영하는 석모도 온천이 노천온천은 폐쇄가 되고 실내탕만 운영이 되고 있었다.
우리처럼 모르고 방문했다가 실망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아쉬운 대로 간단하게라도 온천이라도 하기 위해 입장권을 끊고 실내온천탕을 들어가 몸을 씻기로 했다.
온천 안의 물은 그런대로 매끄럽고 깨끗했다. 온천장의 특성상 비누와 모든 샴푸와 같은 용품이 금지되어 있었다.
가볍게 온천욕을 하고 난 후, 그녀가 미리 예약해 놓은 펜션으로 갔다.
석모도 부근의 섬 주변에 바다가 훤하게 보이는 곳에 위치한 펜션은 깔끔하고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걸음이 불편한 엄마를 부축하고 펜션 안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그녀가 준비한 수제비로 저녁을 끓여 먹고 난 후, 바닷가를 바라보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날이 새자 아침부터 일찍 깨워 있던 그녀가 바닷가 바람을 쐬자고 나를 불러 깨웠다.
걸음이 힘든 엄마를 남겨두고 두 사람은 조용히 펜션을 빠져나왔다.
조용한 어촌 마을을 한 바퀴! 돌며 가보지 못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려본다.
넓디넓은 바다만 보고 살다가 조용하고 정적인 서해안의 조용하고 한적한 바다를 보니 탁 트인 느낌이 아닌 한아름 안아주고 싶은 평화로운 바다를 나의 마음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바닷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엄마가 깨어있었다.
엄마의 표정은 전에 없던 편안한 표정이었다.
성격 자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 엄마의 표정에서 행복감이 묻어나 보였다.
너무 편하게 잘 잤다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 이제껏 숨겨져 있던 표정이 나왔다.
차를 타고 바람만 쐬도 좋은 소박한 노인네의 바람이 이렇게나 힘들게 이루어지다니.....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나, 옆에 있지 않은 자식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불효자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죄인이 되어 있었다.
그저 보기 드문 엄마의 평온함에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가방에서 주섬 주섬 무언가를 찾아냈다.
경성시대에나 입었을듯한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모자를 꺼내 들고 엄마 머리 위에 살포시 얹어놓았다.
평상시 같으면 온몸으로 거부했을 듯한 엄마가 왠지 모르게 가만히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는 그녀.. 사진을 엄마에게 내미니 엄마의 얼굴에서 흡족함이 스치고 지나간다.
내 영정사진으로 하면 되겠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구십 인생이 넘도록 변변한 사진 하나가 없었던 그녀의 인생.. 말없이 머리를 내민 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의 마지막 사진을 생각했었으리라!
그렇게 하자 엄마 영정사진하자! 영정사진 미리 찍어놓으면 더 오래 산다던데 그래도 괜찮아?
말없이 웃는 엄마
실없는 소리 하는 딸
일상 속에서 문득 파고드는 슬픈 한 장면이다.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해산물 위주로 그녀가 전화기를 돌리고 있었다.
수많은 횟집들이 바닷가 주변에 즐비했지만 우리가 알아낸 맛집은 강화도 풍물 시장 안에 있는 밴댕이 삼총사 맛집이었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에 정갈한 음식들은 우리 셋 입맛 모두 사로잡았다. 다시 한번 들리고 싶을 정도로...
만족한 음식으로 포만감 가득 채운채, 엄마와 나의 여행은 끝이 났다.
그날 이후로, 엄마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