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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공기가 달랐다

귀향

by kseniya

한국에 나온 김에 쉬어간다고, 형님은 3주간의 긴 휴가를 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아버님과 둘째 형님은 은사와 제자 사이였다. 형님 역시 시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친정을 둔 진주 사람이었다.

부산에서 병원에 근무할 당시 큰 형님과 동료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동서지간이 되었다.

상견례 자리에 나가보니 아버님이 낯이 익더라는 소리를 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시댁을 방문할 때마다 친정에 들르곤 했다. 지금은 친정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오빠를 비롯해 동기간들이 형님이 온다는 소리에, 서울에서부터 맞을 준비를 하고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엄마 같은 친정언니가 형님이 온다는 소식에 진주 근교에 멋들어진 시골집에 내려와,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님을 뵙고 온 그날 저녁, 우리 모두 그곳으로 초대를 받아 다니러 갔다. 형님의 언니와 형부가 너무나 다정하게 우리를 맞았다. 이미 나와도 구면이라 더 반갑게 나를 맞았다.

황토 찜질방까지 구비해 놓은 시골집은 서울에 사는 언니네 내외가 가끔씩 들르는 별장 같은 집이었다


언니는 엄마처럼, 형부는 아빠처럼 형님을 살뜰히 챙겼다. 덩달아 우리까지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식당 부럽지 않게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들을 내왔다. 마치 어린 자식 먹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동생의 입에 고기를 넣어 주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먹는 형님의 표정에서 나는 부러움을 섞어 바라보았다.

멀리서 온 우리들을 위해 전날 밤부터 황토방에 땔감을 가져다 미리 방을 데워놔 바닥이 뜨끈뜨끈했다. 불을 끄고 형님과 이제껏 못했던 얘기를 나누다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이미 나와 있던 조카와 함께 가까운 남해여행을 하고 돌아오고 난 후, 형님은 언니네 내외와 함께 부산에 살고 있는 여동생을 보러 갈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일정이 없던 우리는 남편의 친구와 함께 셋째 아주버님을 데리고 진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날밤 형님이 또다시 호텔 방문을 노크했다.


"동서 부산 갈래?"


"부산이요?"


"여자인 너 혼자만 어머님이랑 두고 갈라니 마음에 걸려서 안 되겠네. 같이 가자!"


와우!! 마음속으로 환호성이 나왔다.

안 그래도 나도 같이 부산에 가고 싶었다. 부산은 나한테도 특별한 곳이었다.


"동서! 보톡스 맞을래? "

"왜요?"

"동생이 가면 보톡스를 놔준단다."


동생네 부부는 산부인과 진료를 하는데, 요즘 애 낳는 사람이 없어 대안으로 보톡스나 필러를 놓아준다고 하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언니 한국 가면 다 하고 와. "

보톡스도 맞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오라는 미국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동서지간의 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형님의 동생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자갈치 시장에 예약을 해 놓고 기다렸다.

미국 살이중 가장 고역이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즐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갈치에서 싱싱하게 팔닥팔닥 뛰는 살아있는 생성을 보니 회를 좋아하는 나는 어린아이처럼 흥분됐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쥐치도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항상 즐겨 먹던 회가 쥐치였다. 양식이 안되어 거의 자연산 어종에 크기도 작아서 양은 많지 않지만,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었다. 더불어 개불까지, 실컷 먹을 수 있겠다.

자갈치 시장에 모여 회포를 푼 후, 형님의 동생 집으로 갔다.

여동생은 나에게도 예외 없이 다정했다. 여동생 남편의 말투는 부드럽다 못해 나긋나긋 졸리기까지 했다.

짐을 풀고, 집 근처 오래된 온천탕인 허심청에 들렀다. 여자 셋이 목욕을 하고 있는 중에 동생이 때를 베껴주겠다고 나를 쫓아다녔다. 여기 온 기념으로 자기가 때를 뺏겨 주겠단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침이 되자, 꽤나 좋은 성능의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부부가 부엌을 차지하고 서로 다른 동선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요구르트를 넣고 간 여주 주스가 한잔씩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나물을 좋아한다는 나의 말을 귀 담아들은 구순 사돈어른이 직접 장에 들러 사 온 미나리무침도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나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아침에 큰 소리 하나 없이 서로의 일을 분담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 손님을 대하는 모습에서 부부의 품격이 느껴졌다.

식사 도중, 내가 한국에 온 이유 중의 하나인 병원 진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병원문을 닫는 일요일에 검사를 해 보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 형님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은 듯, 내 몸 구석구석을 검진을 해 주었다. 자궁암 검사와 유방암 검사 그리고 갑상선까지 온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검진해 나갔다. 다행히도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 이번엔 형님 차례였다. 예정에 없던 진료였지만, 형님도 나와 같은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형님에게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유방에서 살짝 변형된 세포가 발견됐다. 크게 걱정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찝찝하니 다시 한번 검사를 해 보자 했다. 동생은 인맥을 동원해서 월요일에 바로 예약을 잡아 버렸다.

형님과 함께 병원 문이 열자마자, 여성전문 병원에 도착하여 기다림 없이 바로 조직 검사를 받았다.

이상조직이 세 개로 늘어난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형님의 결과는 정상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국에서도 얼굴 보기 힘든 동서지간인 둘이서 부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형님의 팔짱을 끼고 지하철을 타고 서면시장에 들러 칼국수를 사 먹으며 윤 씨 집안의 며느리라는 공통점을 빼면 같은 점이 별로 없는 사이였지만, 그 사실은 잠시 잊은 채 이 자유를 누렸다. 형님 덕분에 나의 부산 여행기는 성공적이었다. 바쁜 스케줄에 보톡스는 맞을 수 없었지만, 그 이상의 빵빵함을 가슴에 품고 간다.


부산 사직구장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펜트하우스, 잡음 하나 없는 청량한 음악소리에 고급스러운 커피머쉰에서 갈려 나오는 신선한 원두커피 향이 온 집안에 퍼져나갔다. 저녁의 메인 메뉴였던 양고기를 먹지 않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 부드러운 목소리로 냄새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내 팔 위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양고기 한 점을 기어이 내 입속에 넣어주는 그녀의 다정함에, 나는 무한한 위로를 받았다.

나 또한 이곳에 살포시 나의 마음을 두고 갔다.


삶의 공기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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