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이주 Feb 05. 2024

김창서

이주의 사람 시리즈

강원도 최전방 이병에게 생일 선물을 받았다. 군인들에게 휴대폰을 사용하게 해 준 덕분에 나는 이병에게 쿠팡 당일배송 택배를 받았다. 책이었다. 이병 김창서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상경해 성실하게 고생하고 맘고생 하면서도 내 생일을 꼬박 챙겨줬다. 어느 해는 딸기 우유, 어느 해는 스타벅스 라떼 한잔을 보내더니 이번 해는 책이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편지에는 ‘료칸에서 바닷소리를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 책 제목과 함께 ‘입대 전에 읽었는데 좋더라고요. 생일 축하드려요’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은 강원도의 냉랭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보초를 서고 있을 군인에게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추위를 싫어하는 나는 이번 겨울을 이 책으로 버텼다. 니시카와 미와의 문장은 좋았다. 그 문장을 읽고 나를 떠올려 선물한 사람의 마음까지 더해져 빛이 났다.


그러고 보니 여러 번 책 선물을 받았다. 사는 게 지난해서 이불속에서 침잠하던 몇 년 전, 혜민이가 나를 수플레집으로 불러냈다. 내가 과일을 크림에 듬뿍 찍어 삼키는 걸 보고 나서야 오프라 윈프리의 자서전을 꺼냈다.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또 아무 일도 아닌 게 인생 같아. 오프라 윈프리가 한 말인데 네가 생각나서 샀어”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을 읽어본 적 없는 나는 그 책만큼은 형광펜을 그으며 읽었다. 혜민이가 오프라 윈프리의 말을 빌려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지언이는 퇴근길에 우리 집 앞에 들렸다. 피곤한 얼굴로 ‘작은 기쁨 채집 생활’이란 책을 꺼내면서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말했다. 분명 고심해서 골랐을 터인데 나에게 무거운 부담을 안기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펴보니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주변의 사소함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면 좋겠다, 친구야. 네가 원래 살던 방식대로”


나는 에세이도, 자서전도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기운이 없을 때마다 괜히 선물 받은 책들을 조몰락거렸다.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고 기운을 얻었다. 책 하나에 두 사람의 정성이 있었다. 작가의 세계와 선물한 사람의 세계가 더해져 두 배로 풍요로웠다. 그래서 선물 받은 책을 읽는다는 건 복 된 일이다.


겨울엔 집에만 있다 보니 책 사치를 부린다. 손 가는 대로 빌리고 눈에 띄는 대로 산다. 소유욕은 많고 집중력은 짧은 덕에 병렬 독서를 한다. 그것도 모자라 책장을 노려보며 잊었던 책을 꺼내 본다. 창서, 혜민, 지언이가 선물한 책들을 만난다. 오랜만에 꺼낸 외투에서 구겨진 지폐를 잡은 듯 간직한 정성을 발견한다. 꽤 괜찮은 겨울 사치에 만족한다.그리고 나도 봄에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